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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Jun 30. 2019

할머니가 신(神)을 집착하는 이유

    할머니 집에서의 규칙은 단 세 가지. '안전, 청소, 식사'이었다. 쉽게 생각하면 쉽고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웠다. 안전과 같은 경우는 부엌에서 갑자기 요리하겠다고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린다던가, 차가 지나다니는 길에 주위를 살피지 않고 걷는다던가 등의 문제에 대한 관리였다. 안전, 청소, 식사를 다 종합하면 결국 할머니 옆에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이자 취업준비 하는 나에게 조금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혼자 살 때보다 안전하고 따뜻한 집이니 마음의 위안을 삼기로 했다.  

 

    할머니네 집에서 한 달을 지내고 나니 특징 세 가지를 찾았을 수 있었다. 첫째 집에 십자가나 성모상이 많다는 것, 둘째 어둠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집착처럼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평화방송만 본다는 것이었다. 빠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이 세 가지를 발견한 나는, "할머니가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두려움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십자가. 할머니 집은 방 3개에 거실 1개인 35평짜리 아파트이다. 방마다 십자가가 걸려 있었고 거실에도, 부엌에도 있었다. 할머니 방에만 해도 십자가 3개와 탁상 십자가 2개 성모상 1개 등 텔레비전과 침대, 단상 위에 성물이 가득했다. 그리고 할머니 손엔 항상 묵주가 들려 있었다. 기도를 하고 구슬 하나를 옮겨 짚어야 하는 묵주기도의 방식을 지키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늘 구슬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숟가락과 묵주를 함께 쥐고 먹고, 옷을 갈아입을 때도 묵주를 쥐고 입었다. 소매 폭이 좁은 옷을 입을 때 묵주를 쥐고 있어 손이 나오지 않아도 묵주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자다 말고 내 방으로 뛰어와 “자기 전에 주모경이랑 성모송 꼭 하고자!!”하며 날 깨웠다. 


    어둠. 내가 오기 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을 잘 때 불을 켜고 주무셨다. 조용히 방문을 열어 보면 할머니는 늘 잠들어 있었다. 잠든 것을 확인 후 불을 끄면 무조건 반사로 텔레비전을 켰다. 약한 불빛이라도 있길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텔레비전의 시끄러운 소리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 걱정이 되어 텔레비전을 끄고 은은한 화장대 불만 켜봤다. 내가 “할머니, 깜깜한 게 무서우면 이거 작은 불 켜놓을게요.” 그랬더니 잘 때는 불을 꺼야 한다며 전기세를 아껴야 한다고 역정을 내셨다. 불을 다 끄고 문을 닫자마자 텔레비전을 틀었다. 상황은 똑같았다.      


    평화방송.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를 보고 있을 적이면 스릴러든 추리든 장르에 상관없이 “평화방송이냐?” 하셨다. 아니라 하면 “평화방송을 봐야지. 난 신부님 강의를 들어. 너도 평화방송 봐.”라고 계속 말을 하셨다. 그러다 3분 후면 다시 평화방송을 보고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그저 “그렇다.”라고 했다.     



    무의식 속에 계속해서 신의 존재를 찾고 계신 것 같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른, 아이 상관없이 죽음은 누구나 다 무서우니까. 내가 어렸을 적 할머니한테 “할머니 죽는 건 뭐야?”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할머니는 “나이 들고 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죽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땐 나처럼 죽음이 머나먼 일이라 생각되어 무덤덤하셨을까. 지금의 나는 꼭 죽지 않을 것만 같은데 할머니도 그땐 그랬을까. 자다가도 수십 번 기도문을 외우고 애절한 눈빛으로 가만히 십자가를 보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죽음이란 무엇이길래 사람을 이리도 약하게 만들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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