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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Jun 30. 2019

할머니의 발자국이 된 휴지조각

    할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요실금이 심해졌다. 할머니는 휴지를 돌돌 말아 팬티 밑면에 깔아 놓고 팬티를 입으셨다. 생리대, 요실금 패드 등 휴지보다 뒤처리가 간편한 물건들을 사서 드렸지만 “아깝다”며 그대로 쌓아두셨다. 샤워를 시켜드린 후 패드를 팬티에 붙여 드리면 며칠이고 팬티에서 패드를 떼지 않았다. 80년 묵은 고집은 아무도 꺾지 못한다며 가족들은 손 사레를 쳤다. 휴지가 패드를 대신할 만큼 방수가 좋지 않아 축축한 팬티를 오래 입고 있는 것도 문제였지만, 다리 사이로 마찰이 생기면서 휴지가 작은 가루 조각이 되어 온 집안에 굴러다니니 하루에 2~3번 청소를 해야 하는 게 더 큰 문제로 느껴졌다. 할머니가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휴지 가루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청소와 할머니 식사 챙기는 등의 매일 같은 일상을 사는 것이 힘에 부쳐 간간히 친구와 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저녁을 먹고서 9시 30분쯤 집에 들어간 어느 날, 집안 곳곳에는 다른 날에 비해 휴지조각들이 월등히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해가 지고부터 무서웠는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발을 동동 굴렀나 보다. 내 방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데 그날은 내방에도 휴지조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아마도 내 방에 들어와 언제 오나 창을 내다봤을 거야.’ 하며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했다.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내 방에 들어와 크게 화를 내었다.     


    할머니 : 왜 이렇게 늦게 와! 나 지금까지 혼자 있었잖아. 왜 나 혼자 있게 해!

    나 : 친구 만나느라 늦었어요.

    할머니 : 컴컴한데 혼자 있었잖아! 나 혼자 있기 싫은데 왜 혼자 있게 해!

  

    할 말이 없었다. 그리 늦은 시각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화를 내시니 나의 생활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할머니 : 네가 하도 예쁘니까, 누가 너 채간 줄 알았어.


    다음번엔 일찍 오라는 말보다는 내 걱정을 했다고 하셨다. 한순간에 바뀌는 말의 온도 차이에 당황했다. 그냥 할머니를 향해 싱긋 웃었다. 혼자 있기 싫으니 일찍 오라는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잔꾀를 부리시는 것이겠지.     


    할머니 : 앞으로는 좀 일찍 와!    


    내가 대답을 하기 전에 할머니는 방문을 쾅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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