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새벽에 계속해서 잠을 깨우는 생활이 반복되던 와중에 나는 식사를 하며 또 다른 어려움을 발견했다. 처음에 식사 준비를 할 때는 할머니와 둘이서 밥을 먹으니 메인 메뉴를 한 그릇에 담아 나눠 먹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좋아하는 반찬이 있으면 그것을 다 먹을 때까지 밥 한술 뜨지 않았다. 예를 들면 녹두전을 좋아하는 할머니는 녹두전이 한 그릇에 수북이 담겨 있으면 그것을 다 먹을 때까지 밥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배가 부를 때까지 반복하다 결국 밥 반 공기를 비우지 못한 채 숟가락을 내려놓으셨다.
이렇게 먹고 싶은 것만 동이 날 때까지 드시니 함께 음식을 먹지 못하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할머니가 왜 이렇게 식탐이 많아졌는지 생각해봤다. 물론 젊으실 때부터 많이 드시는 편이었다는 삼촌들의 말씀도 있었지만 그때는 골고루 많은 양의 음식을 드셨지 지금처럼 편식하는 건 아니라 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며 상상해 봤다. 당장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나의 첫 번째 생각은 노인정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우리 할머니에게 반찬을 적게 줬을 수 있다고 의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내 의심을 걷어 내고 노인정의 식사 시간에 할머니들께서 오손도손 모여드시니 큰 그릇에 음식을 두고 먹는 시스템일 가능성이 있다면 경쟁해서 하나라도 더 먹으려 하는 습관이 생긴 것일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해봤다. 그것도 아니면 치매에 걸려 어린아이 모습처럼 편식적이게 되면서 이전의 습관인 식탐이 합쳐진 것일 수도 있겠다. 뭐 어찌 되었건 나만의 상상일 뿐,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상황을 고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침 둘째 외숙모께서 둘이 사는 집에 딱 맞는다며 4구짜리 그릇을 사주셨고 나는 그 그릇을 할머니 전용 그릇으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는 식사 때마다 할머니 반찬과 나의 반찬을 따로 두고 먹기 시작했다. 평생 동안 음식을 한 곳에 두고 먹는 생활을 하던 할머니라 개인접시를 두고 먹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할머니 : 이게 뭐냐?
나 : 할머니 그릇 하나, 내 그릇 하나. 이거 영양 생각해서 담은 거니까 여기 있는 건 할머니가 다 먹어야 돼요.
할머니 : 아 이게 네 것 하나, 내 것 하나 그런 거냐? 우습다. 여기 있는 것은 내가 다 먹어야 하냐?
나 : 맞아요. 할머니 것 하나, 내 것 하나. 나도 이 그릇에 있는 건 다 먹고, 할머니도 할머니 그릇에 있는 건 다 먹고.
처음 본 식탁의 모습에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대화만 5분째 이어갔다. 몇 분이 흘렀을까. 자연스레 할머니는 자리에 앉으셨고 따로 먹는 것이 재밌고 우습다며 즐겁게 식사하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전과 같이 자신의 그릇에 담겨 있는 좋아하는 반찬을 다 먹을 때까지 밥을 안 드셨다. 좋아하는 반찬을 더 주지 않고 내 것만 먹으니 이내 포기하고 그제야 밥과 다른 반찬을 드시기 시작했다. 이렇게 식사량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나도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