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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생 Aug 05. 2020

내 피부에 신경 쓰지 말고 본인 가던 길이나 가세요.

내가 언제 관심달래요?

내가 언제부터 남의 눈치를 퍼먹게 되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면 나아질 병이었는데, 가만히 있는 나에게 "어머나, 애 너 진짜 안됐다."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남들 보기에 안된 일이란 것을 알았다.


그렇게 안돼 보였으면 돈이라도 주지. 달랑 말 한마디 해놓고, 그게 무슨 위로라고 말하는지. 본인의 그 하찮은 위로가 나에게는 칼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생각 없는 욕이 차라리 낫다. 그 사람의 잘못이라는 게 너무나 명백하니까. 더러운 오물은 씻어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가벼운 생각이 담긴 말은 누구의 잘못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저 말은 너무 성의 없다, 근데 정말 진심으로 걱정한 거 일 수도 있잖아, 정말 내가
안돼 보이나, 내가 이상한가.

아, 나 진짜 이상하구나!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할 만큼 연약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토피가 심했고, 20살까지 심한 여드름을 앓았다. 발 전체와 팔, 다리, 엉덩이가 접히는 부분은 언제나 벌겋고, 진물이 가득했다. 몸에만 있던 것들이 점점 위로 상륙해, 얼굴과 목까지 번졌다. 눈꺼풀과 목은 크림을 발라도 발라도 건조했고, 긁어도 긁어도 간지러웠고, 숱한 손톱질은 검붉은 흔적을 남겼다. 이 흔적들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는지, 하나 둘, 하찮은 위로를 던지기 시작했다. 어린애가 얼굴이 그래서 어떡하니, 긁지 말고 좀 참아라, 보습을 잘하면 낫다더라, 얼굴을 햇볕에 말려보는 게 어떠니, 소금을 뿌리면 괜찮아진다더라. 진료비도 안 줬는데, 알아서 치료법을 술술 말해줬다. 나는 어설프게 웃었다. 갈라진 입술이 아파올 정도로, 그저 웃고만 있었다. 처음 보는 어른들은 모두 내 피부 이야기로 말문을 텄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자기 자식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넌 그 애에 비하면 축복받은 거야.”


어른들은 쓸 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면서도 나쁜 말은 안하는 배려는 보였는데, 또래들은 그 눈곱만큼의 배려심도 없었다. 한 아이가 아토피가 징그럽다고, 만지면 옮길 것 같다고 했다. 일 년을 함께 놀았던 친구였다. 내 눈을 보더니 나를 ‘너구리’라고 부르더라. 나는 또 어설프게 웃으며, 앵무새처럼 "아토피는 옮는 거 아니야."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어느 날은 안 친한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너 괜찮냐”는 말을 건넸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그 아이는 내 목을 가리켰다. 나는 목을 다급히 가리며 심하게 긁어서 그렇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 그 애는 "아, 난 또 네가 나쁜 생각이라도 한 줄 알고." 하며 가더라. 내가 스스로 목이라도 매달았다고 생각했던 모양새였다. 허, 덕분에 잠시동안 그런 마음이 들 뻔 했다.


나이가 들어 아토피가 조금 잠잠해지니, 여드름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아토피와 여드름이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냈고, 아침마다 거울 보고 울다가 학교에 갔다. 학교 교문에서 학생들과 인사를 주고받던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너 얼굴 좀 어떻게 해야겠다"고 하시더라. 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나는 그 날 하루 종일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가벼운 말들은 가족이란 이름 아래에서 더 쉽게 나돈다. 친척들이 모이면 품평회가 열린다. 친척들은 내 여드름을 걱정한답시고, 연락이 뜸한 사촌 언니의 근황과 친구 딸의 피부의 역사와 온갖 음식의 효능을 줄줄 읊었다. 다시 하하 호호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썩은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사람들은 도움을 준다는 명목 하에 자기 멋대로 사람을 평가한다. 화장품 가게에서 점원이 가만히 서 있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고객님 같은 피부에는 이런 게 좋아요.” 묻지도 않았는데, 이것 저것을 가리키며 이건 이렇게 좋고, 저건 저렇게 좋다며 홍보했다. "선생님, 죄송한데 궁금하지도 않고, 그런 건 제가 더 잘 알아요. "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그냥 가게를 나왔다.


너는 피부만 좋으면 예쁠 텐데. 너는 다 예쁜데, 여기만 좀 별로다.

좀 안 좋으면 어떻고, 좀 별로면 어떠냐. 예쁘지 않음을 문제 삼고,
예쁠 것을 강요하는 말들에 지쳤다.


이 말들은 소모적이다. 한번 내뱉어지면 그걸로 끝이다. 한 시간만 지나면 그 사람들은 내 얼굴을, 자신이 한 말을 다 잊을 것이다. 그런 성의 없고, 게으른 말들에 내 감정을 쏟아 붓고 싶지는 않다. 내 아픔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이고,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제 멋대로 상대방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라 평가하고, 자신을 우위에 두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일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괜히 걱정한답시고 다른 사람 슬쩍 훑는게 아니라 앞 똑바로 보고 본인 가던 길이나 제대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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