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손보미, 천쓰홍, 한소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때인데요. 창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네요. 가을이 오긴 오려나 봅니다. 가을은 또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하죠. 축제는 끝이 났지만, 독서는 이제 시작인 거죠.
행사 참여 후기를 들고 왔습니다. 원래 강연을 듣고 난 후에 바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요. 게으름을 피우다 늦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메로를 따로 하지 않은 탓에 기억의 많은 부분이 날아갔지만, 흥미로웠던 부분들 몇몇을 적어 전해드리려고 해요.
해가 저물어가는 즈음에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자리는 거의 만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축제를 다니다 보면 종종 놀라고는 합니다.
사회는 한소범 기자님이 보셨습니다. 편안하고 매끄러운 진행이었어요. 적절한 질문과 깔끔한 정리, 무엇보다 차분한 목소리가 문학과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이장욱, 손보미, 천쓰홍 작가님은 모두 작품으로 먼저 만나 뵌 적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이렇게 실제로 뵙게 되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뭔가 소설 속 인물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작가님들이 말했듯, 작가와 소설의 화자는 다른 존재이니까, 너무 큰 몰입은 금물입니다.
각 작가님 별로 인상 깊었던 점들을 남겨보도록 할게요.
비관적인 사람이 더 나은 점도 있어요.
올해로 글을 쓴 지 30년이 되셨다는 이장욱 작가님, 그럼에도 여전히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또, 그렇게 느끼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일에 무뎌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니까요.
문학이란 낮보다는 밤에 어울리는 장르, 여기서 밤은 물리적인 시간일 수도 있지만, 비주류를 포괄하는 어두운 세계를 나타내는 단어에 더 가깝다고 하셨어요. 그러게요. 인물들이 주류 세상에 잘 적응했다면, 따로 이야기를 만들 필요가 없었겠죠. 그리고 주류 세상에 잘 스며든 사람이라면, 문학에 관심을 가질 일이 별로 없겠죠. 그러니 문학이란 어두운 세계에 모인 음침한 이들의 수다가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스로 비관적인 사람이라 생각하신다고. 그래서인지 딱히 크게 바라는 게 없어서 큰 좌절도 없는 편이라 하셨어요. 이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더랬죠. 비관은 좋은 창작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좋은 삶을 위해서는 명랑함이 중요하죠. 그 중간의 적당함을 맞추기란... 어렵습니다.
소설은 타자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매력적인 것 같다,고도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장욱 작가님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취향도 작가님의 말과 비슷하거든요. 저도 작가와 소설이 너무 밀접하면 몰입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소설 속에 명확히 드러나면, 그건 더 이상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개인적으로요.
삶의 전부가 운이라면, 지금 내가 살아있는 건 어떤 의미일지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손보미 작가님은 '모든 일들, 심지어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대한 일조차 모두 운에 달라지는 것이라면, 지금 나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 말에 무척이나 공감했어요. 저 또한 그런 사건, 사고를 접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삶과 죽음이 그저 운명에 불과하다면,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요.
손보미 작가님은 그래서 소설을 계속해서 쓰는 거라고 하셨어요. 삶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저는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발버둥 치지는 않아요. 그 일에 몰두하느라 놓친 순간들이 많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다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을 찾는 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제게는 그게 쓰기인 것 같아요. 이게 삶의 의미를 찾아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의 뇌가 생각하고 있고,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것이죠.
실패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귀신들의 땅' 소설의 분위기와는 달리, 천쓰홍 작가는 무척이나 명랑하신 분이셨습니다. 말투도 몸짓도 유쾌해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많은 고통의 시간이 있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머란 자기반성과 고뇌를 초월한 최고의 지적 능력이자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천쓰홍작가님에 대한 첫인상은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짤막한 여러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셨습니다. 대만에서는 어딜 가든 문을 두드려 방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귀신을 쫓아낸다든가, 소설에 누님 이야기를 썼는데 누님이 그 부분을 읽고도 눈치를 못 채셨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덕분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강연에 빠져들었습니다.
실패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에 대해 천쓰홍 작가님은 영화와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어요. 어떤 이야기는 정말 사람을 구하기도 하나 봅니다. 귀신들의 땅을 읽은 독자 세 명이 편지를 보내왔다고 하셨어요. 이 책 덕분에 다시 살 희망을 얻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만나는 기적이 제게도 찾아올까요? 어쩌면 이미 찾아왔었는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일 수도.
이렇게 2024서울국제작가축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축제는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이어질 테니까요. 꾸준한 관심 부탁드릴게요.
문학은 무용하지만, 그렇기에 가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도 바랄 것이 없잖아요. 그럼에도 어떤 것을 주긴 하잖아요.
다시 봅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