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9살이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기억나? 고등학생 때 네 꿈이 '현숙한 여인'이었던 거
가까운 친구가 얼마 전에 묻더라고요. 어렴풋이 기억나긴 해요. 고등학교 1학년에 대통령이 꿈이라고 했다가 담임 선생님께 불려갔던 건 또렷이 기억나는데. 저는 올해 29세를 맞이한 93년생 여자입니다. '처음'인 것들 앞에서 우왕좌왕하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었'네요. 말 그대로 29세가 되었습니다. 가능하면 글쓰기에서 수동태를 쓰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나이는 제가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라서요, 수동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고 보면 나이만큼 공평한 일이 또 있을까요. 돈과 명예, 심지어 정신승리로도 나이를 팔거나 살 수 없잖아요. '자연의 순리야'라는 말을 꺼내면 너무 진부할까요. 그 부드럽고 원초적인 현실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나의 이십 대 보고서'를 남겨봅니다. 현숙한 여인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싶어서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제 이야기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으실 거예요. 우리가 삶의 모양은 달라도, 아프고 기쁜 방식은 비슷하잖아요. 아, 저는 최근에 스물아홉 저에게 선물을 했어요. 가장 건강한 이십 대를 보내자고, 필라테스 지도자 과정 수강권을요. 꽤 비싸요. 630만 원. 가격도 문제지만, 1년 과정이라 그만큼의 시간도 사야 했거든요. 그러니까 돈과 시간으로 산 값비싼 선물이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30대를 맞이할 거예요. 아무튼 처음 어른으로 살아낸, 근 십 년. 나도 내가 낯설고, 세상도 내가 낯설었던 그 시간을 찬찬히 한번 보고해 볼게요. 미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고요.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