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잘 보살펴줘서 고마워
잘 지내셨나요? 저는 벌인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친구도 한 명 생겼어요. 이름은 '안락한 직장 관두고 지금 뭐 하는 짓이지'이에요. 그 친구랑 올해 잘 지내보려고요. 불안이 제 집에 가끔씩 찾아오면 너무 놀라지 않고 물 한 잔 주고 배웅해요. 제 손이 자주 찾는 물 한 잔은 '음악'입니다. 제가 서너 살쯤이었을 거예요. 엄마는 매주 합창단 연습을 가셨어요. 저는 엄마 다리 밑에 방석을 깔고 앉아 연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죠. 캐러멜을 까먹고, 그림을 그리고, 잠도 잤어요. 엄마의 노래는 안전한 공간 그 자체였지요. 엄마의 노랫소리, 그 숨결과 음색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편안해져요. 집 거실에 있던 전축 앞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 시절 갤러리아 백화점 로고가 그려진 시디가 있었어요. 백화점 증정품이었겠죠. 시디 트랙은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 처비 체커의 'Let's Twist Again'를 비롯한 명곡이었어요. 일곱 살 꼬마에게 그야말로 신세계의 음악! 초등학교 합창단에서 선물 받은 시디 앨범 세 장도 어린 시절의 배경음악이었어요. 소년 아카펠라 합창단 St. Philips Boy's Choir의 <Angel VOIES>. 이 시디가 전축에 들어가는 소리, 재생 버튼을 누르면 전축 안에서 시디가 돌아가며 내는 진동, 기다렸던 음악이 흘러나오면 마음이 안도하는 감각... 천사들의 합창을 들으며 카펫 위에 가만히 누워있던 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가끔은 향초도 켜놓았던 걸로 기억해요. 참 다행이에요. 어린아이가 불안한 마음을 다독일 줄도 알고, 즐거운 마음을 찾아 나설 줄도 알았던 게요. 고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날, <Angel VOIES> 음반을 빨간색 소니 시디플레이어에 넣어 챙겨갔어요. 낯설고 어색한 공간과 밤을 그 음악을 꺼내 다독였습니다. 음악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스무 살에 음악치료학 전공을 택했지요. 지금도 여전히 음악의 힘을 믿어요. 아, 요즘은 애프터스쿨의 '뱅!'이 그렇게 당기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