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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특강 따라하(가)기

'글쓰기는 생각의 배설이자 마음의 비움이다.'

'아무말 대잔치'라는 예능프로그램의 자막을 본 일이 있다.

유명 예능 PD가 하는 말이 예능프로그램 자막 작성에 많은 공을 들이는데 몇몇 자막은 일주일이나 걸려 만들기도 한단다. '아무말 대잔치'라는 말도 그렇게 탄생한 걸까? 보면 볼수록 단순한 말장난에서 나온 조합어라고 하기에는 오묘한 맛이 있다.


일련의 서점 베스트셀러에 잊을만 하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책 제목이 있다.

나의 기억엔 유명 논객에서 정치인, 그리고 작가로 귀향(?)한 유시민으로부터 확산된 저서 제목이 시발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최근 평상시엔 잘 몰랐던 직업인 대통령 연설비서관 출신인 강원국의 저서까지, 상당수의 출판사들이 글쓰기 특강 열기가 한동안 계속 이어지리라 예측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가?

나역시도 한동안 잊고 있던 글쓰기 매력에 최근 다시금 빠져들고 있기에 그 원인을 찾아보고자 근래에 천착한 나의 결론을 이 글에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에 있어 '글쓰기'까지 인공지능 AI가 상당부분 대체 역할을 하리라 예상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다. 이미 몇몇 신문사는 AI가 뉴스 기사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비록 아직은 기상예보나 스포츠 경기결과에 관한 단순화되고 정형화된 기사 수준이기는 하지만 AI 글쓰기 수준은 현재 소설까지 써서 튜링테스트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거둘 정도이니 머지않아 AI가 사설이나 논평을 쓸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이런 소식에 놀람과 우려 그리고 호기심을 갖는 세상에서 우리나라는 왜 글쓰기에 관심갖고 글을 잘 쓰기 위해 책을 사서 보는지 궁금하다.

연애편지나 펜팔을 하던 과거 아날로그 정서의 복고 바람이라도 부는 것일까?

4차 산업혁명은 어찌보면, 지능혁명이며 자기표현과 자아실현의 욕망이 두드러지는 시대이다.

기술과 욕망이 공진화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때문에 외현적(overt-공공연한) 자기표현과 자아실현의 도구로 글쓰기를 택한 것일 수 있다면 상당히 쉽게 출판계 글쓰기 특강 트렌드를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글쓰기를 한다는 원론적 측면에서의 원인분석은 너무나도 원초적이다.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이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다. 좀 더 깊은 정서적 내면의 가장 안쪽의(innermost) 내현적(covert-은밀한) 관점에서 보고 싶다.


우선 글 잘 쓰는 법을 배우려는 이유는 각자 목적별로 다양할 수 있다.

특히 입시와 구직을 앞둔 수험생, 취준생은 더욱 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 역시 외현적 발로다.

그 외 다수 독자의 호기심 발로를 추적해보자!

1차적으로 가장 글쓰고 싶어하는 밑바닥 정서에 집중해보자!

의식적, 무의식적, 잠재의식 속에서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는 숨은 인자 말이다.

가장 보편적인 가설을 설정하면,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로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다.

때론 일기쓰기나 수필, 에세이 같은 글쓰기로 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는 욕망, 누군가에게 은밀히 나의 마음을 고백하거나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말이다.


욕구는 필요에 의해 채우지만, 육망은 관계를 통해 들어내고 실현함에 완성된다.

일종의 욕구는 공급인자이고, 욕망은 소비 수요인자라 볼 수 있다.


자기표현과 자아실현이라는 4차 산업혁명(지능혁명)이라는 외현적 관점에서 보면, SNS 등과 같은 곳에서 자기 의사표시를 잘 하고자 하는 욕망은 소비적이고 수요적인 요소가 있다.

때문에 그 욕망의 저변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과 공진화되는 작금의 정서가 있을 것이다.

이를 추리해보면 우리가 찾고자하는 글쓰기 욕망의 저 깊은 내면의 은밀한 정서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대제목에 '글쓰기 특강 따라하기'라고 한 이유는 나도 언젠가는 여러 책을 집필해보고픈 욕망에서 대세 작가 유시민의 베스트셀러 제목을 흉내낸 치기어린 발상에서 지은 것이고, 사실 소제목이 내가 최근 글쓰기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 동안 고찰하며 느낀 소회를 하나의 문장으로 멋스럽게 만들어보려 한 것이다.


'글쓰기란, 생각의 배설이자 마음의 비움이다.'


팔자에도 없을 서드잡 포잡 연구인의 삶을 살면서 나의 고전분투에서 다시 내 IQ를 측정해보고 싶을 정도로 머리가 더디 돌아가는 것에, 심지어 눈까지 침침해져 의기소침해 있던 찰라에, 본 글의 소제목 탄생은 '역시 난 연구계의 개척자야!'라고 으슥할 만큼 처음 그 문장이 떠오른 지하철 속에선 행복했다. 훗날 다시보면 이불킥을 할지언정 말이다. 누가보면 40대 아저씨의 유치한 생각놀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난 요즘 이렇게 내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맞다! 글쓰기란 이렇게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쏟아내고, 상처받은 내 마음을 위로하고, 또 다른 감정을 수용할 자리를 만들어주는 아주 좋은 놀이라고 생각한다. 어릴적 작곡을 하고 작사를 할때는 내 음악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기를 바라고, 함께 공감해 주기를 기대하며 멋지게 만드려고 노력했으나, 최근 나의 창작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절반이상이다.


왜 그런지 고민해보니 '우린 살아가면서 격려, 칭찬보다 상처를 많이 받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이건 격려, 칭찬하면 나태해질 수 있다라는 되먹지 못한 생각에서 출발한다고 오래전 부터 느꼈으나, 나 조차도 가끔 타인에게 격려, 칭찬에 인색해지려할 때는 스스로 자아비판을 하며 그런 발상을 처음 주입한 누군가를 찾아 소리 안나는 총이 있으면 쏴 죽이고 싶은 심정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거늘 우리는 왜 그렇게 여유롭지 못할까? 누가 이런 생각을 주입한 걸까?!


잘 먹고 잘사는 나라들 중에서도 가장 일을 많이하는 나라에 사는 우리들인데 나태가 왠말인가?!

전쟁나서 국가를 리셋한지 30여년 남짓에 세계인의 축제~올림픽을 치른 대단한 민족이 아닌던가?!

컴퓨터도 바이러스가 침투해 작살나면, OS재설치, 업뎃에 재부팅까지 하는데 족히 3시간은 걸릴텐데...

심지어 한 나라가 풍비박산이 나고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까지 다 박살이나, 새로 PC부품을 사서 조립, 시스텀 재설치까지 해야 할 판의 국가를 글로벌 잔치 올림픽까지 치를 수 있는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은, 뻥 좀 보태서 새로 PC조립하고 윈도우 설치 후 동네애들 다 불러다 놓고 배틀그라운드 한판하기까지 30분도 안걸린 수준이랄까? 아무말 대잔치 수준의 비유지만 그렇다. 그만큼 고생한 우리가 왜 그 올림픽까지 치르고, 그 후로도 20년 훌쩍 지난 지금은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 인터넷 디지털 강국으로 거듭난 상황에서, 갈수록 아버지도 모잘라 엄마, 누나, 형, 나 그리고 동생까지 알바하며 죽어라 일하면서 살아야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격려나 칭찬받기에 나태할까 우려해야할 대상으로 전락했을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건 시스템 설치를 잘못해서 여타 프로그램 설치시 충돌나는 엿같은 상황에 직면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업데이트를 하든 다시 윈도우 재설치를 하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임은 분명하다.


앞선 이유로 '이제는 우리 모두 지쳐 더 이상 이러다간 다 죽겠구나' 싶는 생각에 지금은 죽어라 일해서 채울때가 아니라 모두가 삶을 즐기면서 그 동안 채운 것(Need, 욕구)을 배설하고 비우는 것(Desire, 욕망)이 필요 할 때라고 다 같이 공통분모로 느낀 것이 아닌지 추론해 본다.

그런데 더욱 더 슬픈 현실은 배설할 무엇이 없다. 죽어라 온 가족이 무한경쟁 자유자본시장에 다 나서서 열심히 일 했으나, 갈수록 누군가는 배불러가는데 우리들의 배는 홀쭉해진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기에 닥치는대로 먹었다. 몸에 좋은지 안좋은지도 모르고... 그랬더니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뭔가 쏟아내기는 해야할 판이다. 오바이트를 하든, 설사를 하든... 그래서 가장 돈 안들고 그 뭔가를 배출하고, 배설할 도구를 찾다가 글쓰기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오바이트, 설사도 자주하면 또다른 아픔이 따른다. 그래서 그것조차도 잘 하기 위해, 아프지 않기 위해 글쓰기 특강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또다른 근거로 최근 유행하는 말, '소확행'이라는 신조어를 들고 싶다. 소확행은 다들 알겠지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의 줄임말로, 그 행간의 숨은 뜻은 모두가 보편적으로 그리던 행복한 삶-대학 졸업하고 직장가서 연애하다 결혼하고 집사서 나 닮은 아이 낳고 오손도손 사는 삶-이것이 그림의 떡이 된 현실-사실 지금 우리는 행복한 삶이라 표현하지만 이것 조차도 20년 전에는 평범한 삶이었다-그런 우리가 그 소확행을 찾는 것은, 어둑하고 비좁은 월세 방한칸에 편히 몸 뉠 곳 없는 막막한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삶 속에서, 그나마 깔끔한 디자인의 카페에 앉아 최신 유행하는 음악을 들으며 커피한잔의 여유와 노트북에 휘갈기는 나의 생각과 마음의 흔적들이 날 위로할 수 있다고 믿기에 우리는 무의식, 잠재의식 속에서 꿈틀되는 글쓰기의 욕망에 의식이 가는 대로 스스로를 자극한 것이 아닌지, 우리가 글쓰기 특강에 관심갖는 이유를 다소 주관적이고 억지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난 지금까지 이렇게 최총 유추, 추론, 추정, 결론을 내렸다.


지금 여기 글에도 세어보니 생각이라는 단어가 20번이나 들어갔다.

나의 소장, 대장이 비워진 느낌이다.

나의 소제목 '글쓰기란 생각의 배설이자 마음의 비움이다'라는 가설이 정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명언으로는 재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수학적 근거가 마련되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평소 객관적·과학적·보편적·합리적 논리 논증을 강조하는 나의 지론에는 아주 조금 부족하지만 말이다.

아무쪼록 끝없는 나의 생각의 배설은 글쓰기를 통해 계속 되어야 할 것 같다.

무척 시원하다.


비록 우리는 '글쓰기'로,

뇌의 땀과 심장의 피 눈물을 쏟아내며,

생각을 배설한 만큼, 마음을 비운 만큼,

희망과 우려의 폭식을 할 수도 있겠으나,

더 이상 아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몇 자의 글쓰기로 또 다시 마음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워진 허한 마음은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질 수도 있기에...

우리들의 욕망은 또다시 그렇게 글쓰기와 함께 공진(共振)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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