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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 생각하다.

과연 인간이 어디까지 밝혀낼 수 있을까?

얼마 전 장모님께 있었던 사건이다.

새벽 3시에 잠이 안 와서 거실 베란다 창문을 닦으셨단다.

(최근 아파트 내부 전체 인테리어를 하셔서... 기분이 UP 되신 상태^^;)

그러다 외벽 안전 난간 펜스까지 기대어 바깥쪽 창문을 닦으시려고 창문을 닫았는데

그 순간 베란다 창문과 난간 펜스 사이에 갇히게 된 사건이다.

이 창문이 완전히 닫히면 안에서 레버를 움직여야만 열리고, 밖에서는 안 열리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예시 사진: 노란색 표시 공간이 장모님께서 갇히신 곳>

졸지에 아파트 외벽 거실 베란다 창문과 좁은 안전 난간 펜스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장모님은 새벽 3시에 소리를 질러 이웃을 깨워 구조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119 출동과 이웃의 방문으로 방안에 있던 장인어른은 깜짝 놀라 그제야 이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아무런 외상없이 무사히 구출되신 장모님을 119 대원과 이웃은 이상한 눈빛으로 보셨단다.

처음에는 당연히 새벽 3시에 외벽 베란다 창 쪽을 닦는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시선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장모님을 앞뒤로 유심히 관찰하며, 괜찮냐고 묻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모님이 장인어른에게 폭행 혹은 학대 피해를 받다가 이를 피해 아파트 외벽에 매달린 것이 아닌지

의심했던 것이었다.

듣고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아니 그게 더 자연스러운 생각일 수 있겠다 싶다.

다행히 장모님의 해명으로 오해는 해소되었으나

이 얘기를 듣고 집에 오는 길에 아내와 이런 얘기를 했다.


만약 생각하기도 싫지만,

장모님이 그런 상황에서 난간 펜스가 부실해서 떨어져 추락해서 사망 사고가 발생되었다면,

혹은 한 겨울이어서 소리를 질러도 다들 듣지 못했고 추위에 동사를 하셨다면,

경찰은 새벽 3시에 장모님이 잠이 안 와서 베란다 창문 바깥쪽을 닦다가 발생한 사고로

과연 인지할 수 있을까?!


자칫 장인어른이 장모님을 폭행하거나 학대하던 상황에서 장모님이 이를 피하다가 추락한 사건으로

인지하였다면, 상황은 불 보듯 뻔했다.

내가 형사라도 그렇게 먼저 의심했을 것이다.

새벽 3시에 창문 닦기보다 더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인어른은 장모님이 창문을 닦고 있었다는 사실 조차 몰랐기 때문에...

그 어떤 해명도 할 수 없다.

그러다 이웃 누군가가 부부 싸움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한다면...

의심이 확증으로 변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사실 소리는 어디서 나는지 막힌 공간 밖에서 발생된다면, *양이 효과로 판단하기에는 사실상 힘드나

  이미 사건을 의심하는 상황에서는 *아포페니아로 본 사건과 연관 지어 충분히 추정하게 됨)

* 양이 효과(Binaural effect)

인간의 귀는 두 개이므로 음원의 발생 위치를 그 시간과 위상차에 의해 구분할 수 있는 능력.

예) 스테레오와 모노.

* 아포페니아(Apophenia)

서로 연관성이 없는 현상과 정보 속에서 규칙성이나 연관성을 추출하려는 인지 작용을 칭하는 심리학 용어.

예) 세월호 리본 모양 구름. (속담)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쓰지 말고, 오이 밭에서 신발끈 고쳐 매지 말라.

이렇듯 실체적 진실은 경험이나 통계, 확률만으로는 알 수 없다.

내가 경험하지 않고 특이하다고 해서, 경우의 수가 희박하다고 해서

결코 발생되지 않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상을 하면, 나도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에 일조를 하는 직업인으로서 두려워졌다.

인간이 밝혀낸 진실이라는 것이 사실,

엉뚱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드는 일이 적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백한 증거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만약 위와 같은 상황을 접한다면,

뛰어난 수사관은 여러 가설을 세웠을 것이다.

사건인지, 아니면 사고인지...

사건이라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부간에 발생된 것으로 의심할 수 있을 테고,

사고라면... 상상이 쉽지 않다.

하지만 관찰력을 발휘하면, 새로 인테리어 한 것을 알아차렸을 테고,,,

이때 장모님의 정서 상태, 기분 등을 유추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창문 상태를 살피고 이때 닦은 흔적을 찾았을 수 있었으리라...

이렇듯...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현장 관찰 및 탐문 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필자는 진술분석을 할 때 늘 '정서적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심리'라는 말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심리는 통계적, 확률적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해석하고 그 원인을 방법론적으로

학문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수한 사건 사고에서 심리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앞서 언급한 장모님의 사례는 도망치다 난간에 매달린 피해자가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서는 말 그대로 정(情-끌리는 마음), 서(緖-실마리 ex-단서, 두서) 

즉 감정의 전후 사정 순서대로 대상자의 상태를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


세상을 살면 살수록 우리에게는 경험이 쌓인다.

그 경험은 좀 더 쉽고 빠르게 판단토록 나를 이끌기도 하지만,,,

그 경험이 자칫 편향된 사고로, 통계적 확률적 근거로

스스로를 예단 속단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늘 의심하고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비록 더디고 지루한 검증일 지라도,

오히려 실체적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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