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아침 햇볕에 눈을 떴다. 조금 더 자고 싶었다. 그러나 정신은 깨어버렸다. 어젯밤 일을 생각했다. 나는 죽으러 한강에 갔다. 그곳에서 늘 하던 슬픈 생각을 했다. 결국 뛰어들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뻔하다.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때 누가 나를 깨웠다. 처음 보는 노인이. 꿈이었을까? 명함을 받았었는데, 어디 있더라?
명함이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이제 어쩐다..
나는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이미 포기해버린 삶을 더 부여잡을 힘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수많은 지푸라기를 잡아온 삶이었다. 그 지푸라기들은 내 구질구질한 삶 속으로 함께 잠수해버렸다.
명함에는 전화번호가 있었다.
나는 전화를 싫어한다. 전화 공포증 같은 것이다.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너무 어렵다. 전화를 받는 일도 어렵다. 언젠가부터 모든 종류의 전화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몇 없는 인맥도 서서히 끊겨 갔다.
노인에게 전화를 한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명함을 구겨버릴까? 그냥 버릴까? 오늘도 한강에 갈까? 이제 어쩐다?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여보세요?”
“네 어디십니까.”
“네.. 저는.. 어제 마포대교에서 명함을 받은.. 000입니다.”
작은 직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썼던 사무용 전화 어법이 내가 가진 화술의 전부였다.
“아.. 그래요.. 음...”
노인의 대답에는 정적이 길었다.
“메모지 있지요? 주소를 받아 적어요.”
“네?”
“00구 00동 00번지..”
노인은 나의 의아함에도 할 말을 이어갔다.
“이번 주말 0일, 0시에. 괜찮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대뜸 주소를 알려주고 찾아오라는 말에 직장 상사를 대하듯 나도 모르게 복종해버렸다.
“그럼 그때 봅시다.”
....
지금이고 그때고 나는 삶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고, 계획할 수 없다는 것이며, 때로는 한강물에 던진 자갈돌이 만드는 소박한 파문 같은 것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다는 것이다. 삶은 딱지 같아서 때로 단순하게 뒤집혀버린다. 그걸 누군가는 기적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 전날 밤, 한강물에 내 무엇인가를 내던져버린 것일까? 내 안의 무언가가 죽어버린 것일까? 어떤 운명이 나를 침수시켰을까?
삶은 정말이지 하나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