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Death)’
숫자 13.
검은 갑옷의 기사가 흰 말을 타고 온다.
그 발아래엔 왕이 쓰러져 있고,
멀리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모든 생명은 그 앞에서 멈춘다.
하지만 그 기사의 얼굴엔 공포가 없다.
그는 파괴자가 아니라, 전달자다.
끝의 문턱에서 “이제 지나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존재.
죽음은 잔인할 만큼 정직하다.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지나간 계절을 애도하지도,
붙잡는 손을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냉정함 속에서 삶은 다시 시작된다.
매달린 사람이 세상을 거꾸로 보며 시선을 바꿨다면,
죽음은 이제 그 낡은 시선을 완전히 태워버린다.
그는 묻는다.
“너는 지금의 너로 계속 살고 싶은가?”
“아니면, 한 번 완전히 끝내고 다시 태어날 용기가 있는가?”
죽음은 ‘상실’을 데리고 오지만,
그 상실은 늘 새로운 여백의 시작이다.
무너지는 건 고통스럽다.
관계가 끝나고, 익숙한 일상이 사라지고,
오랫동안 믿어온 나 자신마저 무너질 때,
우리는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밑바닥에는
살고자 하는 강렬한 생의 본능이 숨어 있다.
그 모든 것이 무너진 후,
새벽빛처럼 희미하게 다시 피어오르는 감각.
그게 바로 이 카드의 진짜 얼굴이다.
죽음의 상징들은 모두 ‘소멸 속의 탄생’을 노래한다.
검은 갑옷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죽음의 불가피함,
흰 말은 순수하고 완전한 변화를,
깃발의 흰 장미는 죽음 이후 피어나는 희망을 의미한다.
그 뒤편의 붉은 태양은 절망의 밤이 끝난 뒤 다시 떠오르는 생명의 불빛이다.
이 카드의 풍경은 결코 어둡지 않다.
그 안에는 끝의 잿더미에서 태어나는 빛의 언어가 숨어 있다.
나에게도 한때 그런 ‘죽음의 계절’이 있었다.
모든 게 무너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꼈던 시간.
그때 나는 끝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가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러자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음속 오래된 욕망들이 사라지고,
나를 붙잡던 관계들이 흩어지고,
비로소 진짜 나로 돌아올 자리가 생겼다.
죽음은 그렇게 나를 비워 새로 태어나게 하는 힘이었다.
죽음은 삶의 적이 아니다.
삶의 또 다른 얼굴이다.
죽음이 있기에 변화가 있고,
끝이 있기에 새 출발이 가능하다.
누군가에게는 절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활의 신호가 된다.
무너짐 속에서 피어나는 생의 광채,
그건 오직 어떤, '죽음'을 통과한 자만이 알 수 있는 빛이다.
은둔자가 멈춤 속에서 길의 본질을 보았고,
수레바퀴가 움직임 속에서 리듬을 배웠으며,
정의가 중심을 세우고,
매달린 사람이 시선을 바꾸었다면,
죽음은 이제 그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죽음은 끝의 이름을 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부활'이다.
무너진 자리에 피는 첫 꽃,
꺼진 불 위에서 다시 피어나는 불꽃,
그것이 바로 이 카드가 보여주는 진짜 생명의 얼굴이다.
이제는 두려워하지 마세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 보여도,
그건 새로운 삶이 싹트기 위한 진통입니다.
익숙한 것을 놓아야만
진짜 당신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죽음의 카드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이제, 무엇을 끝내겠는가?”
그리고 조용히 대답합니다.
“그 끝에서, 네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