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tori Oct 27. 2021

국경을 빨리 지나가고 싶으면 팁을 내세요

동남아 배낭여행 - 캄보디아, 씨엠립(1)


몸을 뒤척이며 휴대폰을 봤다.

성격상 알람을 맞춰 놓는 날에는 꼭 알람보다 10분 전에 눈이 떠진다.

그래도 다행히 같은 방 친구들을 깨우지 않고 일어나서 다행이다 싶다.

불도 없는 캄캄한 방 안에서 화면 밝기를 최대치로 낮춘 휴대폰 불 빛에 의존해서 전 날 챙겨 놓은 짐을 숙소 밖으로 끄집어낸다.

다시 한번 들어가서 빼놓은 것이 없는지 조심조심 살펴보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전 날 카오산로드에서 다들 신나게 놀았는지, 호스텔은 고요하다.

방 밖이 바로 로비라 (그것도 야외) 대충 로비에 있는 긴 탁자에 모든 짐을 올려놓고 세안 용품만 대충 챙겨서 세수하고 이만 닦았다.

대충 모자를 둘러쓰고 다시 짐을 챙겼다. 가방을 한 세 번씩 체크해야지 맘이 놓이는 터라, 진짜 빼놓은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체크한다.

짐을 챙기고 있는데, 저 멀리서 P가 내려온다. 눈인사를 하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P를 뒤로 한 채, 버스 픽업 장소로 향했다.


빵빵 거리는 뚝뚝 소리만 요란할 뿐, 전 날밤에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건지, 사람 없이 고요한 카오산 거리는 괜히 어색하다.


그렇게 약속 시간 15분 전에 도착해서 무거운 배낭을 던져놓고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흐른다. 한 낮보다는 시원한 태국의 아침이지만, 10kg가 넘는 배낭에 짐이 가득 찬 보조 가방까지 앞 뒤로 매고 걸으면 내가 걷고 있는 한걸음 한걸음이 바로 사막이다 싶다.


문자가 온다. P다.


-벌써 버스 타러 떠났어?

-응 버스 기다리는데 아무도 없네? 너무 일찍 왔나 봐

-태국 시간 몰라? 8시에 보기로 했으면 8시 30분 가지까지 가면 되는 거?

-맞네 하하하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고 있는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서 한 남자가 나를 데리러 왔다.


따라가니 또 다른 기다림의 장소다. 이미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30분이 더 지나서야 우리가 탈 버스가 왔다.

다행히 다리를 쭉 필 수 있는 뒷 문 바로 앞에 그것도 혼자 앉게 되었다.

장거리 버스에서 자리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긴 여정을 모르는 사람과 부대끼면서 가는 것만큼 힘든 게 없는데 예감이 좋다.


그렇게 버스는 태국을 떠나 캄보디아로 향했다.


저 위에 발 올리고 아주 편하게 갔더라지



포장도로를 지나서 울퉁불퉁한 길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이드 아닌 가이드가 버스에서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며 모두를 깨운다.


-이제 캄보디아 국경을 지나갈 건데, 너희가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우리가 비자 수속을 다 진행해줄게. 금액은 $40이야.


심지어 돈을 더 지불하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비자 수속을 진행해준다고 한다.

배낭여행자인 나한테 돈이 어디에 있어? 몇몇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고 배낭여행자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다시 이어폰을 꽂거나 잠을 청했다.


캄보디아 이미그레이션 가는 길, 발걸음이 빨라지는 만큼 긴장되는 나의 마음


드디어 국경에 도착했다.


대놓고 팁을 요구하는 국경이라는 악명 높은 소문이 자자해 얼른 짐을 챙기고 먼저 내렸다.

사람들을 따라서 이정표 방향대로 가면 이미그레이션 사무실이 나온다.

사무실에는 거의 3번째로 도착해서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했는데, 여권 사이에 $1 팁을 안 넣었더니 여권을 돌려주지 않는다.

내 뒤로 우리 버스에서 온 사람들과 다른 큰 버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와중에도 내 이름은 불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거의 다 사라질 때쯤 내 이름을 부른다. 툭 던지는 여권을 받아 들고 비자가 제대로 붙어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행히 비자를 받았다. 우리 버스를 찾아 돌아오니 다행히 아직 3명이 통과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다. 민폐는 아니라서


우리의 빨간 버스


그 $1이 뭐라고 그냥 주고 빨리 받으면 될 걸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냐고 묻는다면, 성격상 당연히 잔돈을 요구하고 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주기 싫어한다.

동남아에서 택시를 탈 때, 당연하게 잔돈을 거슬러주지 않는 택시 기사에게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잔돈을 달라고 한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렇게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은 얄밉다.


캄보디아의 이미그레이션은 내가 캄보디아에 첫 발을 내딛는 장소이다. 캄보디아에서 내가 처음으로 만나는 캄보디아 사람이고, 첫인상이다.


그런데 캄보디아 첫인상 참 별로다.


창 밖을 보니 비가 온다. 몇 시간째 버스에 앉아 있는 건지 엉덩이가 다 아파 온다.


갑자기 머리에 물이 떨어진다.

뭐야? 버스 안에도 비가 오나 싶어 천장을 보니 에어컨이 고장 나서 내 자리에만 물이 떨어진다.

차가 급정거를 하면 비가 내리듯 후두두둑 떨어지는 물방울에 내 옆자리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그냥 같이 웃었다.

버스 안에 비가 내리는 풍경

해가 지고 어둑해질 때쯤 캄보디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짐을 내리니 뚝뚝 기사들과 승객들이 한데 뒤엉켜 정신이 없다.

그중 한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앙코르와트?


캄보디아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앙코르와트 때문이다. 인상 좋아 보이는 뚝뚝 기사와 흥정을 했다.

$16에 아침 일출부터 시작해서 스몰 투어를 하기로 했다. 서비스로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단다.

걸어도 될 거리이지만 서비스라고 하니 고맙다고 하고 뚝뚝 에 올랐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와, 야시장을 돌아다녔다. 이미 카오산에서 야시장이 뭔지를 보고 온 나에게 씨엠립 야시장인 특별하지 않아 보였다.

하루 종일 한 거라고는 버스에 앉아 있는 거였지만, 이미그레이션을 넘을 생각에 긴장을 했는지,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P와의 첫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