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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번역가 Oct 09. 2023

제6년

한영 번역을 주로 할 때니 오래전 일이지만, 뇌리에 꽤 강하게 남은 일이 있었다. 과학 분야의 작은 번역이었다. 적당한 용어를 찾느라 구글에서 검색하다가 의뢰받은 원문의 단락과 똑같은 글들을 발견했다. 이게 웬일인가 싶어 좀 더 찾아보니 의뢰받은 원문이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의 짜깁기 같았다. 수준이나 분량으로 봐서는 중고등학교 과정쯤 되어 보여서 학생의 숙제라고 판단되었다. 번역회사에 표절로 보이는 글을 번역하기는 어렵다고 했더니 담당자도 수긍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으로 유학 간 아이가 영어로 숙제하는 게 어려워서 엄마에게 번역을 부탁한 거라고 했다. 도대체 몇 명을 속인 건지 알 수 없었다. 몰랐다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나는 표절한 글을 번역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내게는 딱 한 번 일어난 일이라서 이 사례는 극단적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표절은 아니라도 학생의 숙제를 무료든, 유료든 번역해 주는 것은 어떤가?


번역을 부탁해 오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는데 영어 자막을 넣고 싶다는 사촌 언니, 한인회 회장직을 맡았다며 회칙을 영어로 번역해 줄 수 있냐는 친척분, 행사용 자막을 만들고 싶다는 교회의 부탁 등 말이다. 내 재능을 좋은 일에 쓰는 건 나로서도 보람이 있으니 선한 일이라면 시간이 허락하는 선에서 대개 부탁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거절해야 하는데 인간관계 때문에 거절이 어려운 때도 있다. 지인의 직장인 자녀에게 통관문서를 번역하는 업무가 맡겨졌다고 했다. 그 자녀가 외국에서 학위를 받았던 터라 회사에서는 그 정도 번역쯤은 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번역을 부탁하는 지인과의 관계상 거절하기는 어려워서 부탁을 들어주었고, 앞으로는 이런 부탁은 들어줄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내가 너무 빡빡한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또 한 번은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른 이의 부탁을 받았는데 혹시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성당 신부님을 상대로 교구청에 불만을 제기하는 내용이란다. 지인도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 다른 이와의 관계 때문에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중간에서 곤란해했다. 회사 업무나 숙제를 대신해 주는 것도 꺼려하는 내가 아닌가. 피해자의 호소라면 기꺼이 해드리겠으나 음해성 편지를 번역하기는 어렵다며 완곡히 거절했다. 거절은 역시 불편했다.


표절을 모른 채 할 수 없는 것, 누구의 것이든 선하지 않은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것, 동의하지 않는 원문을 맘 편히 번역할 수 없는 것, 하다못해 회사 업무나 숙제를 대신해 주지 않는 것 등 나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의 기준이 결벽에 가깝다. 그래서 가족을 괴롭히기도 하고 사적으로나 업무적으로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렇게 태어나 자랐는데 어쩌란 말인가. 남을 돕는 일뿐만 아니라 돈을 버는 일을 할 때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때가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돈 버는 일이 1순위가 아닐 수는 없더라도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번역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첫 직장이었던 페이팔에 근무할 때 처음으로 직장 윤리교육을 받았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관해서 지루하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짤막한 강의를 듣게 했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을까만은 학창 시절 윤리 시간 이후로 '윤리'라는 것을 의식하고 살지 않았던 터라 직장에서 받은 그 윤리교육이 꽤나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또 한참을 잊고 살았는데 프리랜서 6년 차에 기업의 윤리강령 따위의 직장윤리에 관한 작업이 유독 많았음을 이 꼭지를 쓰려고 기록을 살펴보다가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런 쪽으로 결벽증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편이라 따로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지만, 6년 차에 유독 관련 작업을 많이 했다는 우연의 일치라도 억지로 갖다 붙이면서 양심을 잘 간직한 번역가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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