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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수 Apr 20. 2019

RB Leipzig, 그리고 역사가 중요한 독일

분데스리가

옆자리에 앉아 있던 3대 부녀지간

“Sie haben keine Geschichte, deshalb mögen die meisten Leute sie nicht.” (그들은 역사가 없어요, 정말로. 그래서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그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독일 축구팬들은 RB 라이프치히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팀 역사가 짧은 라이프치히가 50+1 룰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50+1 룰이란 의도적으로 모 클럽(Mutterverein)이 50%의 지분과 1주 이상을 소유하고, 결국엔 클럽 회원들이 이사회에서 의사 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분데스리가 고유의 규정이다.


  내가 살았던 쾰른은 팀 지분 100%가 FC Köln 팀 클럽 회원들에게 있다. 회원수도 독일 축구팀 내 6번째 큰 규모로 무려 10만여 명에 달한다. 그만큼 팬심이 크고 팬에 의해 운영되는 클럽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50+1 룰의 존재 목적이 그렇다. 과도한 투자 경쟁을 억제하고 팬들에 의한 건강한 자생 문화를 추구한다. 라이프치히 상황은 조금 다르다. 51% 최소 지분만 모 클럽(Mutterverein)이 소유하고, 49%는 모기업인 Redbull이 투자한다. FC 쾰른과 비교해 기업 소유 클럽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분데스리가에선 한국의 전북 현대, 수원 삼성과 같이 기업을 간판에 내걸지 못한다. 개인 소유가 불가해 이 같은 명칭의 팀이 없는 게 정상이지만, 20년 이상 팀에 투자해 예외를 인정받은 팀들이 있다. 바이어 레버쿠젠(바이엘, 독일 제약회사 지분 100%)이 대표적인 예다. Vfl 볼프스부르크(폭스바겐 지분 100%)와 TSG 1899 호펜하임(SAP 독일 소프트웨어 회사 회장 디트마르 지분 96%)은 기업명을 달진 않았지만 팀 지분 50% 이상이 외부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라이프치히는 이들과 달리 회사 홍보 목적이란 이유로 독일 축구협회에 저지당하며 팀 이름에 기업명(Redbull)을 넣지 못했다. 대신 Rasenballsport(잔디 공)의 줄임말 RB Leipzig로 바꿔 자연스레 모기업 Redbull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교묘한 편법으로 분데스리가에 안착한 눈엣가시 같은 팀이 바로 라이프치히다.

  라이프치히에게 가해지는 비난이 특히 거세다. 사실은 자본주의에 의해 그들의 ‘역사’까지 빠르게 잠식당해서다. 앞서 얘기했던 팀들과 비교해 라이프치히에게 너무 가혹한 이중잣대가 아니냐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세 팀은 1900년대 초에 창단된 역사 깊은 팀(체육클럽 기반)이면서 연고지에 위치한 기업(폭스바겐은 볼프스부르크, 바이엘은 레버쿠젠에 SAP SE는 같은 주 바르템뷔르크에 위치) 들에 의해 투자를 받아온 팀들이다. 그와 달리 라이프치히는 독일 북동부 지역의 5부 리그 팀을 인수해 2009년부터 레드불의 투자로 8년 만에 분데스리가까지 진출한 경우이다. 역사가 중요한 독일에서 말 그대로 ‘삼일천하’를 성공한 셈이다.

  독일에선 각자의 ‘역사’가 소중하다. 라이프치히는 역사가 없다며 얘기하던 한 중년 남성은 딸, 할아버지와 함께 3대가 레드불 아레나 경기장을 찾았다. 자연스레 축구 규칙을 물어보던 딸은 아버지와 경기 내내 축구로 소통했다. 언제부터 9살 딸과 함께 경기장에 찾아왔냐고 묻자 1년 전부터 함께 했지만 아버지와는 어릴 적부터 자주 동행했다고 말했다. 칼스루헤의 한 클럽에서 축구 코치로 일했던 그의 아버지와 어린 시절 축구 선수였다던 그는 한 가정에서 장차 100년에 달할 자신들의 역사를 축구장에서 3대가 만들어 가고 있었다.



  각각의 역사가 소중한 이면에는 독일이 걸어온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프랑스, 영국처럼 중앙집권화의 길을 걸어온 나라는 단일한 국가 서사로 제시할 수 있지만 독일은 자율적인 국가들로 나뉘어 분권화 기간이 상당히 긴 나라였다. 독일 역사의 대부분을 하나의 국가 서사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50+1 룰을 지지하는 각 연방주들의 입장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지역 뿌리 기반, 자본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각각의 역사를 소중히 생각하며 자신들이 참여하고 지지하고자 한다.

  이날 라이프치히는 베를린에 5:0 대승을 거두며 자본의 힘을 보여줬다. 바깥으론 독일 축구의 몰락을 보고 있는 실정이지만, 아직까지도 50+1 룰의 유지 의견이 우세하다. 그들은 아직 돈보다는 ‘역사’의 힘을 믿고 있다. 나 역시 그리 빠르게 무너질 거라 생각은 않는다. 언젠간 흐름을 따라야 하겠지만, 중국의 예만 보더라도 근본 없는 무분별한 투자는 미래는커녕 현실도 직시하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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