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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동 Jul 17. 2021

산꼭대기 소나무 한 그루

이미지출처: 네이버블로그

내 고향 마을 뒷산에는 독특한 모양의 산봉우리가 하나 있다. 산등성이 중 가장 높은 그 봉우리에는 소나무 하나가 홀로 덩그러니 서 있다. 멀리서 보면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 중앙에 넓게 퍼진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일부러 심어 놓은 듯한 형상이었다. 특이한 이 봉우리는 누구든 보면 시선이 머무는 그런 자태였다. 가끔 산을 에워싼 비구름이 그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영험하고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by 탱동


그 산자락은 초등학교 시절 해마다 가는 봄가을 소풍 장소로 자주 택해져서 여러 번 갔지만, 그 산봉우리까지는 올라 가보지 못했다. 그 산 어느 골에서 여우한테 홀렸다는 이웃의 소문이 있는 그곳을 어찌 감히 가볼 생각을 하겠는가?


소문이 힘을 잃었는지, 아니면 그런 것쯤은 무시해도 될 만큼 머리가 커졌는지 마을 친구들 하나둘 그곳을 다녀왔다. 난 한 번도 동행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찍어온 사진 속에서 그 소나무의 실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작은 나뭇가지처럼 보이던 그 소나무는 친구들이 올라타고 앉아 있을 정도로 컸다.     


내가 그 산봉우리를 마침내 올라간 건 스무서너 살쯤 되어서였다. 고향 마을 바로 뒷산인데도 여태 가보지 못했다는 내 얘기에 이미 여러 번 다녀온 동창 친구 둘이 기꺼이 동참해줬다.

소나무는 생각 이상으로 크고 우람했다. 이 산꼭대기에 어떻게 뿌리 내려 이다지 크고 웅장하게 자랐을까, 자못 신비하고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그 후로 한동안 가보지 못하다가 십여 년이 훌쩍 지나고서 신랑과 다시 찾았다. 산 아래 터를 잡은 마을에서나 알고 가는 그 산이 그새 여기저기 알려졌는지, 등산로도 제법 자리 잡았고, 산행길 곳곳 나뭇가지에 산악회에서 매단 듯한 리본이 있어 길을 잃거나 헤맬 염려가 없었다.

십여 년 전 동창들과 처음 왔을 때는 등산로라기보다는 풀이 우거진 산길이었다. 멋대로 늘어진 나뭇가지가 얼굴도 할퀴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았다. 또 마른 솔잎들은 언제 달라붙었는지, 산행을 끝낸 내 머리와 옷자락 이곳저곳에 엉켜 산행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다.     


소나무 옆에 세워진 입간판에는 소나무의 이력이 설명됐다. 막연히 오래됐을 거라 여긴 소나무가 350년도 더 됐다는 소리에 입이 벌어졌다. 신랑도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보이는 이 산등성이의 소나무를 몹시 궁금해하다가, 실제로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그 앞에서 난 아주 살짝 으쓱했다. 아마, 우린 이 정도야! 우린 저 영험한 소나무의 기운을 받고 자랐어! 치기 어린 감정이 발동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고향 집에 갈 때마다 그 봉우리에 올랐다. 그곳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입구에 등산 안내도가 생기고 경사진 등산로에는 멍석이 깔렸고, 어느 바윗길엔 난간을 만들어 한차례 쉬면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 덕분인지 멀리서도 찾아오는 이들도 생기고, 주말엔 등산로 입구에 차들이 많아져서 주차장도 완비했다. 얼마 전엔 그곳이 멸종위기의 붉은점모시나비의 서식지로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지는 듯했다.  

이미지출처: 네이버블로그

   

그 유명세와 달리 나의 산행은 멈췄다. 어느 해 가을날 고향에 가면 늘 하던 대로 산행길에 올랐다. 산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길을 이리저리 살피느라 진땀을 뺐다. 왜냐면 그날 산행에서 을 수차례나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 전엔 산길에서 한 번도 뱀을 맞닥뜨린 적이 없었는데, 휙휙 산 아래로 내려가는 뱀부터, 바위틈에 똬리 튼 뱀까지 오르내리면서 몇 번 보고 났더니, 진저리쳐졌다. 그날 이후로 뱀이 겨울잠에 들지 않을 땐 절대 가지 않기로 맘먹었다.


등산로가 새롭게 단장 되고, 찾는 발길이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뱀이 여기저기 그렇게 출몰하는 걸 봐서는 여전히 야생의 기운을 가진 살아 있는 산이구나 싶었다     


그 산봉우리 이름은 곤지봉이다.

곤지봉으로 등산계획 어떠세요?     

 

이미지출처: 다음블로그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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