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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동 Sep 16. 2021

좀 달랐던 그 아이

고향 친구 A와 친구였던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여느 또래 남자들과 좀 달라 보였다. 그리 가볍지 않았고, 진중했다. 그렇다고 과하게 폼 잡는 기색도 없었다.


그 당시 난 A의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내가 A의 오래된 친구라서 그런지 그들은 날 허물없이 대했고, 우린 금세 친해졌다.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고향 친구 A처럼 그들 역시 날 그저 편안한 친구로만 대했고, 특별히 여자로 보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여긴 데에는 그들은 나한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는 낌새도 없었고, 그들의 미팅 얘기를 거리낌 없이 잘도 들려주면서 폭탄(?)에 대한 얘기를 아주 대놓고 했다. 그런 이유로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높지 않았던 난 미팅을 몹시 꺼렸다. 내가 어떤 이들의 폭탄이 되어 술자리에서 씹히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과 달리 그는 그런 얘기들에 잘 동참하지도 않았고, 그런 걸 즐겨 하지도 않은 듯 보였다. 그는 ‘노동의 새벽’과 ‘껍데기는 가라’ 같은 내가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책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내가 즐겨 읽는다는 유안진 에세이 같은 글에 대해 ‘배부른 이들이 세상에 대한 얄팍한 생각을 그저 예쁘게 꾸며놓은 글들’로 폄하했다. 그 때문에 난 갑자기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쯤에서 가증스럽게 포장된 말장난이나 읽는 정도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난 그의 그런 혹평에 대해서 불쾌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가 말했던 그런 종류의 책들을 다 사고야 말았다. 난 그에 대해 참으로 호의적이었고, 그를 크게 보았던 게 분명했다.      




그가 데리고 갔던 커피숍 역시 좀 특별했다. 우리가 흔히 가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빈센트라는 이름을 가진 그곳은 그 당시 유행했던 시끌벅적한 커피숍과는 달리 아주 고요했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벽에 걸려 있던 묘한 표정의 인물이 고흐라는 유명한 화가라는 것도 몰랐고, 그때 흘러나왔던 음악이 “Stary stary night”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난 참 무식(?)했다. 뭔지 알 수 없는 그곳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멍하니 그의 얘기에 온정신을 기울였을 뿐이었다.


우리가 헤어질 무렵은 늦은 밤이었고, 비까지 내렸다. 우산이 없었던 우린 비를 맞으면서 각자의 집으로 갔다. 다음 날 그는 고향 친구를 통해 감기약을 보내왔다. 처음엔 난 고향 친구가 어쩐 일로 감기약을 다 사 왔나 했는데, 뒤늦게 그가 보냈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좀 묘했다.     


우르르 몰려갔던 선술집에선 메인 안주보다 기본으로 나오는 안주가 상을 채우고도 남았고, 그것들은 계속 리필 되었기 때문에 주문하는 안주는 늘 하나였다. (그렇게 넘치도록 기본안주를 주면서 어떻게 장사가 됐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의문이 든다.)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그는 가끔 내 손에서 멀리 떨어진 안주를 슬며시 내 쪽으로 밀어주기도 했다. 그런 그의 배려에 마음이 설렜다.


그가 데려간 곳은 다 특별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좁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정말 작고 아담한 찻집이 나왔다. 서너 개의 탁자가 전부인 그곳은 작지만 아주 정갈했고, “우정은 산길과 같아서 서로 오가지 않으면 그 길은 사라지고 만다네!” 같은 글귀가 수묵화와 함께 벽을 장식했다. 예쁜 찻잔과 앙증맞은 주전자 같은 소품들이 다 내 마음에 들었다. 작은 공간이라 그곳은 언제나 짙은 차향으로 가득했다.


그 후로도 우린 얼마간 더 어울렸다. 비록 단둘이는 아니었지만, 난 그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들이 참 좋았다. 난 그의 이야기에 늘 잘 빠져들었다.      




난 다니던 곳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 휴학하고, 다시 공부했다. 가끔 들려오는 그들의 소식을 모르는 체했다. 그들 또한 각자의 생활에 바빠서 서로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번갈아 가면서 군대에 간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려왔다. 그의 소식은 한동안 뜸했다.


뒤늦게 그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의 결혼식 무렵이었다. 어떻게 해서 내가 그의 결혼식에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아직도 그가 입은 하얀 턱시도를 기억한다. 그가 내게 노동의 새벽을 얘기하던 진지한 모습과 그 하얀 턱시도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설핏했다.


그 후로는 한동안 바람으로도 그의 소식을 접하지 못하다가, 그가 아주 잘나가는 금융인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그가 크게 다쳐서 몸이 안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변호사가 되어 바닷가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동안 모두와 소식을 끊고 살았는데, 그동안 하던 일을 다 접고 다시 공부해서 변호사가 됐다고, 참 대단한 놈이라며 내게 그의 소식을 전했던 친구는 그를 ‘고무신 신고 다니는 시골 변호사’로 칭했다. 그 말이 참 좋았다. 내가 오래전에 알고 있던 그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 출처: 크라우드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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