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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라 May 15. 2020

빗소리가 좋아서 쓰는 글.

툭, 툭, 투둑, 툭.

지금 사는 집은 비가 오면 투둑, 툭, 소리가 난다.

비가 오는데 빗소리가 나는 거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쏴아아-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리도 아니고 타닥타닥, 전 굽는 소리 비슷한 그런 소리도 아니다. 규칙적이고 간헐적으로 툭, 툭, 툭, 투둑 하는 소리가 난다. 거실에서만.


이 집으로 이사를 온 건 지난가을이었다.

비가 많이, 길게 오지는 않지만 짧게, 그러나 자주, 일주일에 두어 번은 오는 계절이었다.

이사 오고 2-3일째에 처음 비가 왔다. 그날도 짧은 비가 왔고 비가 오는 줄도 몰랐던 나는 내내 윗집에선 대체 뭘 하길래 이렇게 규칙적으로 탁, 탁, 탁, 절구에 마늘 찧는 소리가 나나 싶었다. 

그다음 비가 오던 날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 날은 내가 비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을 뿐.

3일 정도 연달아 비가 오던 때는 정말 궁금했다. 대체 윗집은 뭘 먹길래 매일 30분에서 1시간씩 마늘을 찧는 걸까. 마늘 찧기 부업이라도 하는 걸까.

이사 오고 열흘 정도 지난 어느 날, 온종일 비가 왔다. 멈추지 않고 비슷한 강도로 계속.

아침부터 하루 종일 탁, 탁, 타닥, 탁, 탁... '아니 도대체...!'하고 화가 나려던 순간, 갑자기 깨달았다.

아냐, 사람이 이렇게 하루 종일 10시간 넘게 규칙적으로 마늘을 찧을 순 없어. 

...설마, 빗소리인가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꼭대기층이 아닌데. 윗집이 꼭대기층인데. 윗집이 비만 오면 온종일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게 아니라면 빗소리가 날 수는 없는 것 같은데.

그 다음날 밖에 나가보고 알았다. 우리 거실의 윗부분은 윗집의 베란다였다. 지붕 없는 베란다. 그러니까 끝없이 이어지던 툭툭 소리는 마늘을 찧는 소리가 아니라 베란다에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던 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규칙적으로 계속 나는 소리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처음엔 층간 소음인 줄 알아서 화가 났고, 빗소리인 걸 알고 난 뒤에도 한동안은 '다른 데로 이사 가야 하나? 나 이 집 좋은데.' 고민할 만큼 그 소리가 너무 싫었다.

원래 빗소리와 비 오는 날을 좋아했는데도 작년 가을 한동안은 비 오는 날이 무서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일을 쉬고 있었고 집순이인 탓에 거의 매일 집에 있었다. 그런데 비가 오면 그 툭툭 거리는 소리가 싫어서 자꾸 밖에 나가야 하는 거다. 난 집에 있고 싶은데.

다행히도 언젠가부터 툭, 툭, 투둑, 툭, 규칙적인 우리 집 빗소리도 좋아졌다. 계속 듣다 보니 그런 건지, 아니면 이 집이 좋아서 그 빗소리마저 좋아진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나서 반쯤 깬 상태로 거실에 나왔는데 툭툭 소리가 들리면 '아, 비가 오는구나, 좋네.' 하며 슬며시 웃게 된다.


오늘도 비가 오고, 우리 집 거실엔 툭, 툭,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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