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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Jan 27. 2019

따뜻한 밤

수술 후 최소 한두 달은 충격과 과도한 움직임을 조심해야 한다. 이제 막 키가 내 가슴팍쯤 오는 파이팅 넘치는 두 아들이 달려와 안길 때마다 심장 쫄깃한 스릴을 느낀다. 그래도 지금은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잘 알려줘서 그런지 안기거나 장난을 칠 때 상당히 조심해주고 있다.     


지난밤, 현태를 재우는 중이었다. 수많은 뽀뽀와 작별인사와 긴 포옹을 마치고 현태 옆에 누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잠든 줄 알았던 현태가 갑자기 조용히 내게 물었다.

“엄마는 마음이 아파?”


“…음? 아니 엄마 마음 안 아픈데~ 왜요?”

“그런데 왜 거기에 수술했어?”

“아~ 엄마 마음이 아픈 건 아니고, 가슴이 아파서 한 거야.”


마음과 가슴이 뭐가 다른 건지 혼란스러운 이 국어 신동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작은 손을 내 가슴에 조심스럽게 얹으며 말했다.     


“내가 지켜줄게.”    



2012년, 회사 근처 산부인과에서 현태(당시 태명 햇님이)를 낳았다. 길 하나 두고 진통실에서 회사 내 자리 창문이 보일 정도의 거리였다. 팀원들은 커다란 햇님 그림을 프린트해 창문 밖에 붙여두고 분만실에 누운 날 응원해줬다.


첫째와 비교하면 둘째는 정말 수월했다. 진통 중에 세금계산서 발행 관련 통화를 할 만큼 여유가 있었다. 출산 직후에는 햇님이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고 직접 지인들에게 연락할 정도였다. 이래서 다들 경력자 타령을 하는 거라는 농담도 있지 않은가! 햇님이와 함께할 새로운 일상을 기대하며 쏟아지는 축하 속에 기분 좋은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의사 선생님들이 우르르 병실에 들이닥쳤다. 햇님이를 지금 당장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햇님이 핏속의 무슨 수치가 매우 낮아 당장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처 강남 성모병원의 신생아 응급실에 빈자리를 확인해두었고 지금 구급차가 오고 있다고 했다.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햇님이를 먼저 구급차에 태워 대학병원으로 보냈다. 여전히 지인들의 축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서 있었다. 구름 위에서 땅바닥으로 추락한 기분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출산 직후 몸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의 부축을 받아 대학병원에 갔다. 나에게 신생아 응급실은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곳이다. 팔뚝보다도 작은, 이제 갓 세상을 만난 여린 생명이 온몸에 주삿바늘과 전극을 달고 차가운 인큐베이터 속에 누워 있다. 따뜻하게 안아줄 수도 손을 잡아줄 수도 없는 아이를 보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는 무기력한 부모만큼 슬픈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햇님이가 누워 있는 인큐베이터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던 순간이 생각난다. 손발의 후들거림이 지금도 느껴진다. 햇님이를 보는 순간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혈관이 너무 얇아서 채혈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발목에 주삿바늘을 꽂아 한 방울 한 방울 피를 모으고 있었다. 이렇게나 몸이 작은데 저렇게 많은 피를 모아도 되는 건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부러질 것 같은 가는 팔뚝엔 이미 바늘을 몇 번 찔렀던 것인지 커다란 테이프가 덕지덕지 감겨 있었다. 내 아이는 그 천진한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채 그 작은 유리 벽 안에서 바둥거리고 있었다. 마음과 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았다.


구체적인 검사 결과는 아직 모른다 했지만, 헤모글로빈 문제인 건 확실했다. 임신 시절에 속이 울렁거려서 철분제를 잘 먹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나 때문이라고 자학하면서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햇님이를 보러 갈 때마다 앞으로 이런 힘든 일은 절대 겪지 않게 해주겠다고 피 같은 다짐을 했다.

그리고 햇님이가 지금 내 말을 듣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늘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지켜줄게”라고.     


지옥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고 일주일 뒤, 담당 선생님께서 남편과 나를 불렀다. 남편에게 출산 때 탯줄을 직접 잘랐냐고 물었다. 첫째 때와 달리 둘째는 의사 선생님께서 그냥 직접 처리를 했다고 답했다.


잠시 숨을 고른 후에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지켜본 결과 햇님이는 정상이다. 다만 분만 직후에 아이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지극히 낮았던 것은 문제가 있다. 원래는 아이를 낳고 산모의 태반에 있는 피가 충분히 아이에게 흘러 들어간 뒤에 탯줄을 잘라야 하는데, 아마 그 병원에서 급하게 그냥 처치한 것 같다. 의료과실 같다는 견해였다.


순간 유난히 서두르던 의사 선생님이 생각났다. 첫째 때 보다 진통시간도 짧았고 수월했는데도 제왕절개를 언급하고, 분만실에서도 급하게 바로 자리를 떴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그때 분명히 했었다.

화가 났다. 우리 가족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고통을 받아야만 했나. 그 병원을 고소해서 더 긴 싸움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이 모든 고통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동안 못 준 사랑을 햇님이에게 쏟아주고만 싶었다. 따뜻한 집으로 빨리 데려가고 싶었다. 그렇게 태어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햇님이를 품에 안고 함께 돌아갈 수 있었다.    


“내가 지켜줄게”라는 현태의 말에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매일 내가 속삭였던 그 말을 현태는 무의식중에 기억하는 걸까.


인큐베이터 속에서 그렇게나 여렸던 햇님이는 지금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통통한 볼과 엄마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건강한 아이가 되었다. 잠든 현태의 볼을 쓰다듬으며 새삼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따뜻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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