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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Jan 25. 2019

수술 후 결과

1월 24일


수술 후 결과를 듣는 날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날을 기다렸던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교수님께서 조직검사 결과지에 하나하나 채점하듯 써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종 소견은 1.3cm(상피내암 4cm)의 크기로 루미날 A 병기다. 감사하게도 최종 검사로도 림프절 전이는 없었다고 한다. 만세! 다만 림프관 침범이 있었다고 한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으면 전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그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그래도 타이밍이 좋았다. 다행이다.


향후 치료 계획을 써주었다. 이때가 제일 긴장되었다.

내게 수술보다 무서운 건 항암이었다.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정상 세포까지도 공격하는 독극물을 핏속에 넣는 게 항암이다. 혈관과 피부가 타고 입안이 다 헐며, 열에 아홉은 머리와 눈썹, 속눈썹까지 빠진다. 매일 토하고 울렁거리는 몇 개월을 버텨야 한다. 초기라고 항암을 안 하는 건 아니므로 늘 내 마음속 한구석에 묵직하게 존재하던 두려움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암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항암은…… 음……”


고민하는 교수님 표정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 몇 초가 왜 이리도 긴 걸까. 제발 제발 제발.

“안 해도 되겠네요.”


꺅!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돌고래 탄성을 질렀다. 그 경건한 교수님 방에서 박수까지 쳤다. 100억짜리 경쟁 PT 재비딩까지 갔다가 최종 수주 결과를 들은 순간의 기분이었다. 세상에 너무 기쁘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남편도 나도 마음이 확 풀어진 그때, 갑자기 또 반전이 일어났다.

항암은 아니지만, 항호르몬 치료를 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내 암은 호르몬 수용체 양성의 성질을 가졌다.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이라는 여성호르몬에 강한 반응을 보이는 세포라는 의미인데, 이 때문에 내 몸속의 여성호르몬을 억제시키는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년 동안 ‘졸라덱스’라는 주사를 매달 맞고 5년 동안 ‘타목시펜’이라는 약을 매일 먹자고 했다. 뭔가 약 먹는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호르몬 억제를 위한 주사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남편도 나도 당황했다.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주사라고?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난 지극히 여성스러운 사람인데, 남자처럼 변하는 건가? 2년을 맞는 거면 그동안 사회생활 복귀는 못 하는 건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성호르몬 억제 주사 맞으면서 운동하고 관리 제대로 안 하면 폭삭 늙어요.”

교수님이 덤덤하게 내뱉었다.     

폭삭…? (동공 지진)

폭…삭… 폭삭이라니…!!     


우리 교수님 소시오패스는 아니겠지…? 갑자기 서러웠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유방암에 걸린 후에 여성으로서 내 정체성이 겪게 될 상처와 그를 극복하는 문제가 솔직히 가장 두려웠다. 보통은 암 제거 수술을 하고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기다린 뒤에 가슴 복원 수술을 하게 된다. 난 다행히 나이도 젊고 피부 상태도 좋아서 암 제거와 가슴 복원 수술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수술 후 깨어나서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나마 정체성의 큰 혼란기 없이 잘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 또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 갓 회복한 곳에 쓰라리게 소금을 비벼대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여성호르몬 억제 주사와 약 관련 상담을 받으러 다른 선생님을 찾아갔다. 내가 하게 될 졸라덱스 주사와 타목시펜 약은 폐경, 관절통, 두통, 열감, 우울증, 불면증, 골다공증, 시력 저하, 피하지방 증가 등의 부작용이 있으므로 꾸준히 운동하는 게 제일 좋다고 설명해주었다. 증상이 심해지면 약으로도 고칠 수 있으니 내원하라고 했다. 친절한 설명을 들었지만, 부작용 이름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 꽂혔다.


이 주사를 맞으면 진짜 폭삭 늙는 거냐고 진지하게 여쭤보았다. 선생님이 조용히 미소지었다. 관리만 잘하면 그렇지 않다고 했다. 교수님이 선택한 ‘폭삭’이라는 극단적인 부사에 나와 남편이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말하자, “아유 교수님이 왜 그러셨지~”하면서 다독여주었다. 조금 마음이 풀렸다. 선생님에게 받은 안내 책자를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항호르몬 요법은 호르몬 양성 암의 경우 항암 화학요법을 대체하는 단독요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졸라덱스와 타목시펜을 동시에 복용하면 항암치료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항암 2개월 할래? 졸라덱스 2년 맞을래? 하면 난 졸라덱스를 선택하겠지만…, 그냥 아무 선택도 더 안 하고 약만 먹기를 바랐는데 기운이 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어 졸라덱스 주사를 맞으러 갔다. 가는 동안 커뮤니티에 검색해보니 ‘졸라’ 아파서 졸라덱스라고 한다고 한다. 실제로 부작용이 많은 치료인 것 같았다. 꽤나 많은 부작용 호소 글들이 이어져 있었다. 그래도 나 같은 호르몬 양성 암의 경우 재발 방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오랜 시간 주사를 맞는 듯했다.     


항암 치료실에 들어가 보았다. 넓은 공간 한가득 개인 소파가 놓여 있었다. 한 명씩 소파에서 항암 주사를 맞고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이었다. 나도 저 소파에 앉아 항암 주사를 맞을 수도 있었던 거잖아. 졸라덱스에 감사하자! 라고 생각하고 용기 내어 침대에 누웠다. 걱정했던 것만큼 ‘졸라’ 아프지는 않았다.     


또 새로운 치료의 시작이구나. 이 주사도 약도 큰 부작용 없이 잘 적응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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