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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Jan 09. 2019

엄마의 반전

엄마는 간호업계의 에이스 같은 사람이었다.


대전에서 신생아/산모 간호 자격증을 취득하고 곧 ‘산모도우미 119’라는 프랜차이즈 법인을 시작했다. 세종으로 이사를 가면서 사업 권리를 지인에게 넘겼지만, 지금도 간간이 프리랜서 형태로 간호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엔 암 말기 환자분을 오랜 시간 방문 케어 했다고 한다. 난 이런 엄마의 외동딸이다. 그러니 당연히 병 간호에 있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회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절대 안정과 숙면이다. 수술 당일 밤에는 통증으로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날은 진통제 부작용이 완화되어 밤쯤 되자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따. 다. 다. 다. 다

흠칫. 이게 무슨 소리지? 통증 속에서 잠이 깼다.


빠아아아아 뿌-

어둠 속에서 눈을 번쩍 떴다. 엄마다!


따아 따아 쿠우~

엄마가 고요한 병실의 적막을 찢고 있었다.


흐린 기억으로 엄마가 코를 곤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세상에나 이건 좀 아니다. 그래, 아마도 지난 밤을 새워 피곤하니 그런 걸 거야.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싶어 기다렸다.


부부… 읍!…. 파아!!!

드드드드득!! 뿌~웃!


하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엄마의 코 고는 소리는 규칙적인 진동 수준이 아니었다. 강약 고저를 숨 막히게 넘나들며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변주로 멈추지 않고 나를 들었다 놨다.


혼자서는 몸을 움직일 수 없던 나는 쉰 목소리로 애타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는 절대로 깨지 않았다. 나는 운 좋게 잠이 들었다가도 엄마의 코 고는 소리에 고통스럽게 깨기를 반복했다. 톰 크루즈의 <엣지 오브 투머로우>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비명을 지르며 똑같은 순간에 반복해서 깨어나는 타임루프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절망적이었다. 눈물이 났다.     


새벽에 약을 주사하러 간호사님이 카트를 끌고 왔다. 그때 엄마가 잠에서 깼다. 할렐루야. 엄마는 갑자기 비몽사몽 내 이불을 덮어주고 얼굴을 닦아준다.


“엄마! 엄마가 코를 너무 골아서 내가 잘 수가 없어!”

“응응, 알았어 알았어.” (토닥토닥)


(1분 뒤)

빠아아아아앙

“엄마!!”

흡!!…

뽜아아아 앙!!

“엄마아악!!”

빠…읍…읍…… 퐈이아아아악!!


흑. 뭘 알았다는 건가! 수술 부위의 통증보다 극도의 피곤함과 잠 못 자는 괴로움이 더 컸다. 밤새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다가 동터오는 창가를 본다. 포기해. 난 극도의 심신 미약 상태였다. 더 이상의 무의미한 노력은 날 더 괴롭게 할 뿐이었다. 포기하자.     


아침 7시, 식사가 배급되는 소리에 엄마가 깼다.

“아우 잘 잤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저 뽀얀 피부를 보라. 딸내미의 폭풍 잔소리가 이어졌다. 엄마! 아 코를 왜 이렇게 골아, 내가 얼마나 밤새 힘들었는 줄 알아? 엄마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고, 깨워도 안 일어나고! 아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엉엉)


엄마는 어머 그랬냐며 해맑게 웃는다. 으악! 해맑은 건 내 콘셉트이지 엄마 콘셉트가 아니라고!

엄마는 친구들이랑 어디 놀러 가면 밤에 엄마가 하도 코를 골아 친구들이 다 결국엔 자기를 내쫓는다고 한다. 엄마는 내 이런 반응이 익숙한가 보다. 아니 힘도 좋다고 어쩌면 밤새 그렇게 파워풀하게 코를 고냐고, 피곤하지도 않냐고 물어보니 엄마는 기분 좋게 푹 잘 잤다고 한다. 세상에나 해맑다…. 이것은 내가 이길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엄마는 해피라는 반려견과 함께 단둘이 살고 있다. 평소에는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게 힘차게 밤새 코를 골면서 그냥 주무셨나 보다. 우리 가족이 세종에 놀러 갈 때도 잘 때는 방을 따로 쓰니 나도 이 정도까지 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엄마! 해피를 생각해봐. 말 못 하는 해피가 그동안 밤새 얼마나 괴로웠을지!”

순간 엄마의 해맑은 얼굴에 근심 걱정이 떠올랐다.

“어머 그런가…(심각). 나 코골이 수술받을까?”

“엥? 아니 지금 그럼 해피를 위해서는 고치겠다는 거야?!’    


2년 전이었나. 엄마가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 해피가 스테이플러 심을 하나 삼켜 지금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를 어렵게 안정시키고 전화를 끊은 뒤 속상한 마음에 나도 많이 울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엄마에게 알리지 않았다. 해피 수술 가지고도 이렇게 운 분인데, 딸이 암에 걸렸다고 하면 얼마나 슬퍼할까 싶어서였다. 한 달쯤 지나서 수술을 어느 정도 앞둔 시점에서 엄마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생각보다 쿨내 진동이었다. 내가 머쓱해질 정도였다. 그래도 걱정하는 것보다는 낫지 싶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억울하다. 아니, 암 수술받은 딸 앞에서는 밤새 해맑게 코 골았으면서! 해피를 위해서는 코 수술을 받겠다니. 코 수술을 진지하게 검색하고 있는 엄마를 보니 왠지 웃기기도 했다.


아무튼,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엄마는 밤마다 코를 골 텐데 당장 병원에서는 어쩌냐는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휴게실도 생각해보았지만, 병원 복도에 엄마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질 생각을 하니, 이건 의료사고 수준이다. 아찔했다. 결국, 그날 바로 간병을 접기로 과감한 합의를 봤다. 간병이 제일 필요한 힘든 시기는 지났으니 밤에는 어쩔 수 없지만, 간호사님의 도움을 받고 낮에는 남편이 휴가를 내고 같이 있기로 했으니 괜찮을 듯했다. 사실 엄마는 해피를 집에 혼자 두고 와서 마음이 계속 불편했나 보다. 봇물 터지듯 ‘우리’ 해피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날 위해 가겠다는 거야, 해피를 위해 가겠다는 거야….


그래, 인정한다. 난 해피에게 밀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계신 엄마의 곁에서 해피가 딸 노릇을 잘하고 있구나 싶어 해피에게 고맙기도 했다.


일단 오늘은 ‘우리’ 해피 덕에 꿀잠을 잘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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