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머리맡 작은 스피커가 말한다.
“수술 들어가실 시간입니다.”
이동용 침대가 병실에 도착했다. 올라타 누웠다. 이불을 단단히 덮었다. 드르륵 요란한 바퀴 소리를 내며 수술실로 이동했다. 엄마와 남편이 급하게 따라나선다. 걱정은 되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복잡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본다. 어디 드라마에서 한 번쯤은 본듯한 장면이었다. 뭔가 특별한 말을 하고 싶은데, 떠오르는 게 없었다.
“평소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딱히 할 말이 없네?” 하고 웃었다.
“걱정하지 마. 잘 다녀올게. 이따 만나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유쾌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보호자 금지 구역 앞에서 문이 닫혔다. 어제 검사 결과 이후로 마음이 꽤 편해졌지만, 막상 수술 직전이 되니 긴장되었다. 뉴스에서 보았던 의료과실 사망사고가 떠오른다. 나도 모를 일이다. ‘나는 당연히 괜찮다’라는 확신이란 건 없다. 필사적으로 좋은 생각을 찾아 허우적거렸다. 눈을 뜨니 천장을 가득 메운 꽃과 하늘 사진이 보였다. 비록 사진이지만 이 순간에는 위안이 된다. ‘아예 천장을 다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해서 모션을 줘보면 어떨까?’ 부드러운 바람에 살랑이는 꽃과 흐르는 구름을 상상하니 마음이 더 편해진다. ‘수술 직전에 본 이미지는 각인 효과가 남다를 텐데. 아예 여길 광고 매체화해보는 건 어떨까? 비윤리적인가? 좋은 메시지를 줄 수도 있잖아!’ 전국 병원의 수술 대기실 천장을 매체화하여 틈새시장을 개발해 대박을 터트리는 상상을 해봤다. 잘하고 있다!
마취과 선생님이 와서 신원을 확인하고 전신마취를 준비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굵은 호흡기를 넣는 과정에서 목이 손상되고 치아가 부러질 수 있으니 흔들리는 치아가 없는지 확인하겠다며 장갑을 꼈다. 손을 내 입에 넣어 치아를 하나하나 만져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가 생각났다. 숙희(김태리 분)가 히데코(김민희 분)의 치아를 확인하는 그 장면의 분위기가 정말 섹시했다는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났다. 마취과 선생님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 입과 코에 호흡기를 씌웠다. ‘영화와 실제는 진짜 다르구나. 하긴 마취 선생님이 김태리고 내가 김민희였어도 지금 이 병실 상황이 섹시할…….’
pm 8:30
회복실이었다. 수술이 끝났나 보다. 온몸이 아팠다. 토할 것 같았다. 토악질을 하니 선생님이 어깨에 패드를 대주었다. 고개를 돌리고 그냥 토하란다. 누운 채로 몇 번을 토했다. 바로 닦아주면 좋겠는데, 더할 거라 생각하는지 그냥 둔다. 말하고 싶은데 목에서 쉰 소리만 났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시끄러웠다. 지금 이 방에 10명이 있는지 30명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어지럽고 울렁거릴 뿐이다. 만취해서 집에 가다가 트럭에 치이면 이런 기분일까.
pm 9:10
병실에 왔나 보다. 외과수술 3인방 선생님께서 남편을 불러 예상보다 수술이 힘들어서 시간이 길어졌지만 잘 마쳤다는 말을 전하고 갔다.
“환자분 숨 쉬세요. 자면 안 돼요. 숨 쉬세요!”
수술 후 4시간은 자기 호흡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 전신마취 시간 동안 기계가 호흡을 대신에 해줬기 때문에 마취 후 충분히 폐를 늘려 직접 호흡하지 못하면 폐렴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산소포화도가 100 미만으로 떨어지면 심정지를 알리듯 삐삐삐- 크게 경고음이 울린다. 마취 기운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울렁거림이 제일 힘들었다. 병실에서도 토를 했다. 진통제 부작용으로 심해지는 것 같다고 진통제를 껐다. 수술 부위가 뜨겁고 아팠다. 진통제를 끈 뒤로 울렁거림이 잦아드니 좀 살만했다. 그래도 통증은 참을 만했다. (난 출산보다 입덧이 더 힘들었던 사람이다.) 쏟아지는 잠과 싸우며 남은 시간을 이를 악물고 호흡하며 버텼다. 눈알이 휙휙 뒤로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삐삐삐-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릴 때마다 눈을 번쩍 부릅뜨며 숨을 쉬었다. 나중에 남편은 내가 웃기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난 생사를 오가는 중이었다.)
4시간이 지났다. 소변 줄을 제거했다. 방광도 제 기능을 혼자 하는지 확인해야 하므로 화장실에 시원하게 다녀와야 잠을 허락할 수 있다고 한다. 엄마의 부축을 받아 비명을 지르고 엉엉 울며 화장실에 다녀왔다. 간호사 선생님이 어떤 기계를 내 배에 슥슥 문지르더니 놉! 시원하지가 않단다. 삐릭삐릭 30%가 남았단다. 내 소변이 시원했는지 아닌지를 저 기계가 컨펌한다니 조금 웃겼다. 세 번의 재시도 끝에 시원한 컨펌을 받았다.
마취 기운이 풀리면서 통증이 극에 달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칼로 베는 듯 몸이 아프다. 탈수증상으로 목이 끝없이 말랐다. 스치기만 해도 아픈 주사와 배액관이 주렁주렁 몸에 꽂혀 있어 뭐 하나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입만 살아 있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싶었다. 밤새도록 엄마는 입만 살아 있는 딸을 위해 물을 먹여주고, 진통제를 더 넣어주고, 간호사를 불러주고, 물수건을 얹어주고, 침대 머리와 다리를 높였다가 낮췄다가 베개를 괴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고생하셨다. 수술 당일은 그렇게 화끈하게 밤을 보냈다.
힘든 산을 또 넘었다. 암 병변의 최종 기수와 이후 항암과 방사, 항호르몬제 등의 치료 계획은 이제 약 2주 뒤 알게 된다. 그때까지 제일 중요한 건 우선 수술 후 약해진 체력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