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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Jan 30. 2019

내 인생 시즌

미국 드라마를 좋아한다. 광고인으로서 엄마로서 바쁘게 살다 보니, 규칙적으로 드라마 본방 사수라는 걸 할 수가 없었다. 국내 드라마보다는 언제든지 시간 날 때마다 볼 수 있는 미드가 편했다. 그러다 보니 미드 없이 못 사는 워킹맘이 되어버렸다.     


미드는 보통 시즌제로 운영된다. 내 인생이 미드라면 이제 마흔을 목전에 둔 시즌 2쯤에 막 접어든 것 같다. 시즌 사이마다 보통 휴방기가 있으니, 지금 암으로 인한 내 ‘인생 쉼표’도 어쩌다 보니 적절하게 제 역할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신은 대단한 작가이자 프로듀서다.    




<내 인생 시즌 1>을 리뷰해 보자면 이렇다.


주인공은 일단 열정 넘치는 캐릭터다. 닥치는 대로 많은 일을 경험하며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맨다. 이미 긴 지면을 할애해 다루었던 영화와 커피만큼은 아니지만, 한때는 인적자원관리에 푹 빠지기도 했다. 팀 빌딩이나 조직문화에 관심이 많아 그 유명한 공선표 박사님의 ‘공선표 인적자원연구소’에 어렵사리 가입한다. 그리고 2년간 전국 대학생 연합 대표를 맡아 왕성한 활동을 한다. 대학교 4학년 때 신한·조흥은행 인사통합 프로젝트에 컨설팅 인턴으로 일을 시작한다. 이어 ‘포스코 경영연구원’인 포스코경영연구원(POSRI)에 정직원으로 취직을 하게 된다. 어찌 보면 탄탄대로다! 하지만 작가는 이 주인공이 좀 더 고생하기를, 그래서 시즌이 좀 더 극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나 보다.


평탄한 대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주인공은 운명적으로 광고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한 친구가 ‘광고쟁이’라는 동아리 회원이었다.) 주인공은 그녀의 엄마가 사랑해 마지않던 포스코를 버리고, 당시에는 생소했던 미디어인 렙사라는 곳에 뜬금없이 취직한다. 이후 주인공은 광고를 업으로 삼아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온·오프라인 광고를 넘나들며 다양한 경험을 한다. 감사하게도 주인공 곁의 모든 조연급과 심지어 빌런 캐릭터마저 모두들 하나같이 매력들이 넘쳐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이 매일매일 이어진다.


시즌1 초반, 그러니까 주인공의 최소 중학교 시절부터 로맨스가 다수 등장한다. 눈이 동그랗고 피부가 하얗던 틴에이저 주인공은 나름 귀여운 구석이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주인공은 약간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진다) 기질이 있어서 남부럽지 않게 썸도 많이 타고 연애도 많이 한다. 그 폭넓은 경험 덕분에 시즌 중반에 멋진 남편을 선택할 수 있는 귀중한 통찰력을 얻게 된다. 결혼을 하고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두 아들을 낳는다. 이로써 시즌 종영까지 함께할 남편과 지태, 현태라는 주요 캐릭터가 탄생한다.


수많은 극적인 드라마가 그러하듯 주인공은 슬픈 가정사를 시작으로 이상하리만큼 많은 사건 사고를 겪는다. 작가가 주인공을 편애하는 것이 확실한 대목이다. 삶의 생채기를 굳은살로 회복하는 그 과정에서 어설펐던 주인공의 인생 내공이 다져진다. 그리고 시즌1의 장대한 피날레에 주인공은 새로운 광고대행사로의 이직을 앞두고 아주 타이밍도 묘하게, 급작스럽게 암에 걸린다. (꼭 엔딩에는 누굴 죽이려고 하더라.)


시즌 2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른다.

늘 주인공이 말하던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단순히 CSR이나 NGO 활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주인공이 사랑하는 매일의 업을 통해 그 일을 이루었으면 한다.


<매드맨>은 주인공이 상당히 애정하는 드라마이다. 자본주의가 절정이던 1960년대, 뉴욕의 한 광고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미드다. 그때만 해도 카피 한 줄, 이미지나 영상 하나로도 수많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미디어 시장이 급변하면서 일방적인 브랜드의 메시지에 더 이상 소비자들은 주목하지 않게 되었다. 기술의 발달로 제품력의 차이도 점점 더 적어지면서, 제품 자체보다는 브랜드가 주고자 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 이미 전통적인 광고대행사의 역할도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지 않은가! 이럴수록 브랜드가 말할 수 있는 고유하고 지속 가능한 의미를 찾아 전해야 한다. 그로써 고객의 행동 양식과 가치관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캠페인들이 진심으로 가능하다고 주인공은 믿는다.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캠페인을 통해서든

리더로서 보여줄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보를 통해서든

어쩌면 한 줄의 글이나 소소한 한 번의 미소를 통해서든     


시즌 2에서는 주인공의 영혼이 바라는 일에 조금 더 용기 내어 다가서며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시즌 1의 엔딩에 맞닥뜨리게 된 암이라는 병마를 주인공답게 유쾌하고 멋지게 극복하여 더 건강한 모습으로 타고난 열정을 더욱 빛내며 날아오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시즌2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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