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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Feb 08. 2019

안녕 지혜씽

난 ‘콜린성 두드러기’라는 만성 질환이 있다. 몸의 교감신경이 크게 자극되거나 몸의 온도 변화가 커지면 전신에 두드러기가 나는 질환이다. 몸에 열이 나면 땀을 내서 열을 식히는데, 나는 땀이 안 나고 모기가 문 것 같은 두드러기가 난다. 가렵다고 잘못 긁으면 크게 부어오른다. 심해지면 뇌압에 머리가 아프고 기도가 막힐 정도로 붓기도 한다. 숨이 막혀 꺽꺽거리며 119에 전화를 건 적도 있다. 많이 부으면 <판타스틱 4>라는 영화에 나오는 ‘씽’ 캐릭터와 비슷한 모양새가 된다. 실제로 내 주위에서 <지혜씽> 출몰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 모습에 적잖이 놀라 충격을 받기도 했다.


씽. 이분입니다.


초기에는 고쳐보려고 병원도 다니고, 이런저런 노력도 해보았는데 별 차도가 없었다. 체질이 바뀌어야지 그냥 약으로는 증상을 억누를 뿐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한다. 심하면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일도 있다지만 내 경우에는 그럭저럭 살만했다. 그러다 보니 그냥 그렇게 내 삶인가 보다 하고 10년을 넘게 지냈다.


결혼식 날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순간에 ‘지혜씽’으로 돌변할까 봐 두려웠다. 생에 한 번뿐인 특별한 날이지 않은가! 신경안정제를 좀 많이 복용했다. 다행히 두드러기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식 후 친구들이 난리를 쳤다. 너 왜 그랬냐고. 내가 축가를 들으며 춤을 췄다는 것이다. “에이 무슨 소리야 그 정도는 아니었어. 하하” 했는데 웨딩 비디오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정신줄 놓고 그루브를 타는 저 신부는 누구지? 약을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한 번은 중요한 PT를 하던 중이었다. 집중하던 광고주들이 점점 수군대기 시작했다. 심지혜 국장이 ‘지혜씽’으로 돌변했나 보다. “아, 걱정 마세요! 금방 가라앉습니다. 제가 콜린성 두드러기라는…” 아이디어를 팔아야 할 시간에 내 두드러기를 설명했다. 관련 질문까지 받아야 했다. (수주했기에 망정이지, 속상할 뻔했다.)

운동 관련해서도 딱히 좋은 기억이 없다. 한번은 헬스장에서 운동하다 보니 몸에 열이 좀 올랐나 보다. 화끈하게 지혜씽 님이 나타나셨다. 금방 가라앉겠지 싶어 모른 척하고 운동을 계속하려는데, 운동하던 사람들이 흘낏흘낏 나를 쳐다본다. 트레이너 한 분이 총대를 메고는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괜찮냐고 묻는다. 결국 운동을 시작한 지 20분도 되지 않아 강제 귀환되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후로 헬스장을 좀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운동을 적극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수영과 필라테스를 나름 오래 다녔고, 매일 요가를 하며 자전거를 타기는 하지만, 언제나 가벼운 수준이었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지만 두드러기가 올라올까 봐 땀이 날 정도로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게 늘 조심스러웠다. 회사 체육대회 날에는 신나서 뛰어다니다가 또 지혜씽이 돌연 등장해, 정작 결승을 앞두고는 조용히 혼자 화장실에서 30분을 앉아 있어야 했다.


웃고 있지만 10분 뒤 <지혜씽>으로 돌변을 하는데...




암세포는 기본적으로 열에 약하다. 체온이 1도 내려가면 면역력이 30% 떨어지고 반대로 1도 올라가면 면역력이 크게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수술 후에는 온열요법으로 암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어떻게든 체온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거대한 크기의 택배가 연이어 집에 도착했다. 열어보니 평소 존경하던 한 글로벌 광고대행사의 대표님께서 보내준 선물이었다. 암 치료에 좋다는 족욕기와 온열치료기, 온갖 효모와 생식제품, 도움이 되는 책과 정보들… 그리고 두 장 빼곡하게 채워진 편지까지. 대표님과 나는 한 번의 만남을 계기로 시작된 나의 일방적인 팬심이 전부인 관계였다. 평소 개인적으로 연락하며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기에 놀라움은 더 컸다. 편지를 읽으며 울컥 눈물이 났다. 염려해주는 대표님의 마음이 너무나 감사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끼고 살다시피 족욕기와 온열치료기를 썼다.


그러다 최근에 몸의 놀라운 변화를 하나 느꼈다. 평소와 똑같이 족욕을 하며 온열치료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사우나에 30분을 앉아 있어도 땀이 안 난다. 여차하면 그냥 두드러기가 올라온다. 그런데 오오오… 그런 나의 목에 송골송골 땀이라는 것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르륵 흐르기까지 했다.     


어머나 흘렀어 흘렀어! 대박!!

이것이 내게는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는지!

“여보 나 땀이나!”

“여보 땀 나는 거 봐!”

“여보 나 땀이 흘러!”


매일매일 남편에게 땀 자랑을 했다. 땀이 기분 좋아 씻기조차 싫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두드러기가 크게 올라온 적이 없다. 10년을 나와 함께한 만성 질환도 암과 함께 고쳐지기 시작하는 걸까? 심지어 졸라덱스와 타목시펜 치료 때문에 여성호르몬이 줄고 있는데도 땀을 빼서 그런지 피부조차 맑고 깨끗해진 기분이다.


오늘은 용기 내어 아이들 학교 근처 헬스장에 6개월 등록을 했다. 아침부터 한 시간 정도 유산소 운동을 했다. 두드러기는 올라오지 않았다. 기분 좋게 반가운 땀이 나는 정도였다. 지금껏 당연히 난 헬스장은 못 다닌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신선한 발견이었다. 물론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새로운 첫걸음이 일단은 너무나 기분 좋다.     


나는 이제 땀도 나는 여자잖아!

적극적으로 운동에 재미를 붙여볼 수도 있지 않을까?    


치앙마이 한 달 살기 프로젝트가 불발되고, 내 건설적 에너지를 어디에 쏟으면 좋을지 고민해보았다. 쉬는 거 이상으로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은 거라면 이참에 평생 갈 운동 습관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늘 관심 있던 스쿼트도 테니스도 포기하고 살았는데, 한번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뭔가 희망이 또 부풀어 오른다.


혹시 또 누가 알겠는가. 암이라는 병으로 잠시 쉬어가는 한때를 보내게 되었지만, 결국엔 전보다 더 활기가 넘치는 판타스틱 히어로급 건강한 나로 변화하게 될지도. 다시 한번 의욕 뿜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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