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7.
엊저녁엔 음악극 <노인과 바다>를 보고 나서 걷던 중에 웬 케이크 하우스가 보였다. 마침 오늘이 내 음력 생일이라 케이크를 하나 더 먹을 요량으로 생크림 케이크를 사 들고 돌아왔다.
돌아와 여느 저녁처럼 드라마 <괴물>을 보기 시작하기 직전에 늘 쓰던 작은 수저 하나가 사라져 있음을 발견했다. 일반 티스푼보다는 크고 무게감이 있는 도시락용 수저였다. 고양이 사료를 갤 때 늘 써오던 것이었다.
괴상하게도, 집안에서 사라진 물건인데 나올 기세가 아니다. 무의식중에 다른 물건들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으리란 추측이다.
오늘 홈플러스 가서 새것을 찾아보기로 한다.
뭔가 홀린 듯한 느낌에, 드라마 내용에 몰입되지 않았다. 중간에는 저번에 켜지 못한 초를 케이크에 켰으나, 수저에 대한 영 떨떠름한 느낌이 가시지를 앉아 케이크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어 한입만 먹고 말았다.
작은 수저 하나가 없어진 느낌이란 마치 등에 근질근질한 잔가시를 부어 넣은 것 같았다.
<괴물>에는 묘한 짜증이 올라온다. 극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극의 면면이 보여주는 사람들의 행태에서. 어쩌면 그렇게 모든 인물이 다 하나씩의 비밀을 은폐하고 서로에게 모른 척을 하는지, 의뭉스러움의 끝판왕들 같다. 깊은 억압에 근거하여 각자의 내면에 갇힌 중대 사실들. 각자가 끌어안고 자폭하는 세계들. 시골, 충청도, 보수성, 이런 코드들이 싫었다. 갇힌 구조가 사람들을 희생자로 내몰고 삶아 죽이는 그 느낌. 이 사회의 답답함을 보여주기에는 썩 잘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수저가 사라진 덕분에 오늘은 비슷한 수저를 또 하나 사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써놓고 보면 삶의 은유 같지 않은 문장이 없다.
지하철을 타려다 날씨가 너무 좋아 걸어서 갔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하루를 놓고 보면 쾌적함과 짓궂음이 공존하는 묘한 날씨였다. 결과, 적응하지 못하는 힘줄들이 아프고, 중간에 낀 마음은 스산하다.
통만 달라졌을 뿐 내용물은 완전히 같은 수저를 샀다.
그런데 사료를 개어 먹이던 바로 그 수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데 대해 처음에는 상실감이 일었고, 하루를 자고 나서는 더욱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잘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 셈이다보니.
어쩌면 마음의 준비를 앞당겨 시켜준 일이 아닐까 하는.
지난주까지는 모리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은 활력으로 몇 달이라도 더 살 듯이 보였지만, 이번 주에 와선 사정이 달라졌다. 주초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입안을 씹어 피를 많이 흘리고 움직임이 적어졌다. 조혈제를 관으로 매일같이 넣어주지만, 출혈량에 비하면 역부족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여러 다른 징후들. 모리는 그사이 한 번 토해 놓았고 소변까지 방석에 지려놓은 상태였다. 고양이가 소변을... 정말 마음의 준비를 바싹 해야 할 때가 다가온 듯하다.
달은 나날이 여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