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4.
왜 어떤 시간의 토막은 자취가 없는가? 이게 악곡이라면 지금은 어느 악장을 달려가는가? 이 마디의 악상은 무엇으로 적혀 있는가?
일정 시간의 구간을 두고 글을 써보면 앞부분이 제일 길어져 있다. 어떤 글을 쓰던 내 글의 서언은 좀 늘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서 악상은 바뀌어 간다. 이 일기도 처음엔 라르고로 시작되어 한동안 갔다. 3월에는 자주 일기를, 처음엔 거의 매일 쓰다시피 했다.
체력이 늘 똑같이 유지되지 않는 이유도 있겠다. 실제로 3월 중하순에는 꽃샘과 미세먼지 등이 겹치면서 내가 인후염에 걸려 목소리가 바뀌기도 했다. 증세를 가라앉히기 위해 약을 꼬박 복용하면서 시간이 더 빨리 갔다.
그리고 그동안 모리의 상태가 바뀌었다. 일단은 벚꽃이 피었다 지도록 아직은 살아있다.
한동안은 밥과 약을 먹이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리듬조차 갖는 듯해 보였고, 모리 역시 그리 침울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밤에 내가 시리즈 드라마를 보느라 거실에 나와 있노라면, 내 옆으로 다가와 쓰다듬어 달라고 요구하곤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종양이 자라나면서 침이 점점 통제가 안 되어 흘러나오고, 그런 자신의 불편한 입안을 자꾸 씹어대느라 더 자주 피가 흐르게 되었다. 이 혈액손실 때문인지 빈혈 가깝게 수치가 나와서 이번 주부터는 철분제와 항생제를 추가로 먹이기 시작했다. 피가 많이 떨어져 방석과 인형 그리고 모리 자신의 털에 촘촘히 응고된다. 방석과 인형은 매일 갈아주고 모리의 털은 수시로 물휴지에 물을 더 묻혀 닦아준다. 그리고 이제 며칠 새, 밤에 한 번씩 내 옆으로 다가오곤 하던 습관을 멈췄다. 이제 거의 종일 자기 자리인 의자 위에서만 보낸다.
모리가 고양이 진정음악 영상 속 고양이를 보고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먹이고 닦아주고, 음악을 조금씩 바꿔주며 틀어주고, 이 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다. 병원에 가면, 그동안 혈액 수치상 뭐가 더 악화되었는지 확인한다. 더욱 나빠지는 현황에 대한 점진적인 통보를 받으러 병원에 간다는 사실을 담담한 의무처럼 여기고 있지만, 다녀오면 한 번씩 기분이 처지고야 만다. 지금보다 일주 전 이주 전 한 달 전은 늘 조금은 나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 보았자 그때는 증세악화가 좀 더 지연된 나날들을 살았을 뿐이지만. 이런 느낌들을 씹다 보면, 이 흐름이 정확히 우리네 긴 인생과 같지 않나 싶어진다.
뭐든 그 한가운데 있으면 어쨌든 견디게 된다. 지금 딱 그런 동력에 의해 이번 봄을 지나고 있다. 나중에 이 일이 다 지나가고 보면, 그런 날들을 어떻게 버텼나 의아해질지도 모른다.
벌써 4월의 중순인데, 갑자기 기온이 급감해서 다시 겨울옷을 꺼내입었다. 벚꽃이 가고서 신록이 시작되기 전의 중간 꽃샘인가?
요새는 하루하루 먹는 거라도 잘 해 먹으려고 매일 요리를 하고선 그 레시피를 적어둔다. 요리 하는 순간엔 자아 통제감이 여겨져 즐겁고, 세상의 온갖 질료들과 연결되는 것 같아 잠시지만 외롭지 않다.
잘 해 먹고선 가끔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게 낙이다. 지금 읽는 것을 다 읽고 나면 올해 내에 그녀 작품을 하나쯤 더 읽을까 한다. 그녀의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느낌의 사람은 신경쇠약에 걸릴 수밖에 없다 싶다. 익숙한 느낌이다.
모리를 돌보느라 약간 사이드로 밀려나 있는 로리도 마음 쓰인다. 새벽녘에 한 번씩 울어대곤 한다. 겉으로의 징후는 없지만 어디가 아픈 거나 아닌지 걱정되고, 얘도 스무 살이니 같이 할 시간이 많은 건 아니다.
겨울 말에서 봄 사이 도서관 앞 화단에는 고양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자리 잡았다. 보통 3마리 정도가 보이고 가끔은 다섯 마리가 될 때도 있다. 여기 들르는 일도 요새 낙 중의 하나다.
4. 15.
내가 없는 시간에도 외롭지 않게끔 늘 음악을 틀어준다.
모리가 고양이 자장가 음악의 화면 고양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닥쳐서 해보니, 시한을 알 수 없는 간병은 체력전 같은 것이어서 어느덧 나는 사력을 다하여 요리들을 해 먹곤 했다.
요리에 집중하는 동안은 정신이 환기되고, 잘 해 먹는다는 느낌 자체가 나를 지탱해 준다.
이렇게 잘 해 먹던 끝에 조금 불량한 게 먹고 싶어진 이 저녁엔 생라면을 부숴 먹으며 와인을 마신다.
요리를 해 먹을 때 외에는 인간으로서의 자긍심 같은 걸 어디에서도 잘 못 느낀다. 나보다 온통 능력 있는 동시대인들에게 뒤처진 채 살아가고 있을 뿐.
대신 사람 말고 다른 것들과는 가득 포옹을 나누고 있다.
길을 걸었다.
풀이 몰라보게 푸르러지고,
초저녁달을 보았고.
지금은 망중한이다.
또다시
4. 16.
사시사철
햇빛이 남아돈다
과분하고
과분하다
한겨울조차
낮 어느 시간 옅은 커튼을 슬며시 젖히면
틈새를 놓치지 않는
햇빛은 또다시 넘쳐나고
남고
또다시
나를 남긴다
햇빛이 좋은 날이면 절로 죄책감이 든다. 내가 이 햇빛을 경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어느 플랫폼을 가나 이제 우울은 공동의 전제, 만인의 콘텐츠가 되었다. 주변을 봐도 정신과 약을 찾는 이들의 반경이 확대되었다.
요새 우울은 반려동물이다.
10대부터 이미 이후 내가 거쳐 지나온 모든 세대마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산, 다 살아버린 느낌이었다, 늘.
이 모든 게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것이 희미한 희망이다.
글이나 책을 많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딱히 이것들밖에 취할 것들이 만만하지 않기에 읽기나 쓰기로 돌아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