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온갖 좋은 것이란 고양이를 닮았구나!
6. 25.
쓰러진 모리를 안아 올려 씻겼다.
피가 엉겨 굳은 발은, 고양이용 샴푸를 풀어 여러 번 물을 갈아주며 씻겨도 완전히 원래대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시원하게 씻겨보는 거였다.
씻기고 나서 드라이로 말려주고 브러쉬로 털을 빗겨주었다.
고양이를 빗기면 늘 그렇듯 일정량의 털들이 묻어 나왔다. 이 털들을 모아 따로 간직했다.
저번에 맏이 때도 그랬지만, 아이가 숨을 거두자마자 곧장 장례를 하러 가지 않았다.
그때도 때는 6월, 낮 2시였는데 저녁 10시 넘어서야 장례절차를 밟았었고, 이번에도 한나절 은 집에 두었다가 비슷한 시간에 그곳으로 갔다.
다시 깨끗해진 모리는 제롬이 때보다도 더 천천히 굳어졌고 눈도 부릅뜨지 않은 채여서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진 것 중 가장 향이 좋은 장미 향 향수를 뿌려두었다. 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좋은 향이 계속 감돌았다.
내 방에 좀 눕혀 두었다가 오후가 되자, 거실에 세워둔, 나무판에 내가 그린 선녀상 앞으로 옮겨주었다.
이 장소를 모리가 좋아했었다. 여기 있으면 선녀를 봉양하는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요즘 들어 유독 좋아진 날씨 중에서도 특히 지난 일요일의 공기엔 안개에 잠긴 듯 뽀얀 빛이 흘렀다. 너무도 천국 같았다. 이 공기 속, 새로 피기 시작한 주황색 나리꽃들이 보였다. 이름을 몰라서 내가 그냥 나리꽃이라 부르는.
내년에도 계절이 돌아와 이 꽃들이 보이면 모리를 떠올리게 될 거다.
천변 산책길에서 평소처럼 네 잎 클로버들을 찾으며 돌아다녔다.
여전히 모리는 이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숨을 거둔다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지 않나? 세상엔 그 무엇도 사라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에 보라색 클로버 3송이와 자연스럽게 그러데이션이 있는 풀 몇 포기를 땄다. 이 들꽃들로 꽃다발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 거실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 햇빛이 모리를 비추고 있었다. 빛이 얼굴 부분에 비스듬히 떨어져 더욱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시신이지만, 모리가 아직도 집안에 머문다는 존재감이란 상당했다. 산책하는 와중에도, 모리가 기다리고 있는 평소의 날들과 똑같이 느껴졌다. 아직은 부재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서로의 고통스럽고 피로한 날들이 단숨에 끝나 시원섭섭한 마음일 뿐.
작은 피처 병을 찾아내 아까 딴 들꽃을 꽂아 장식해 두었다.
고양이의 신전
곧 저녁이 되어 우리는 장례식장이 있는 먼 마을로 향하였다.
한 시간가량 가야 했다. 차에 태워 가는 기분 역시 평소에 동물병원에 데리고 갈 때의 기분이기도 했다. 단지 모리가 울지 않을 뿐.
장례식장까지 가는 다소 긴 시간 동안, 모리를 처음 순천으로 데리러 가던 때로부터 이후 거쳐온 모든 집의 거실들을 떠올렸다. 모리와 지낸 지난 19년간 나의 삶 역시 정신없이 흘러오고 달라진 것에 무상감이 일렁였다.
그러는 새 장례를 치를 곳에 접어들고 있었다. 거기는 그 도시에서도 후미진 곳이었고, 길에 개들이 나와 마구 돌아다니는 희한한 동네였다. 운전할 때 조심해야 했다.
처음 전화했을 때보다 일찍 도착해서, 앞 차례가 3건 정도 밀려 있었다. 정수기 가까이에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지만 이미 눈물에 젖어 있는 한 커플이 앉아 있었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김에 우선 편의점에라도 가 허기를 때우기로 했다. 1킬로쯤 가자 사방 아무것도 없는 길가에, 산속의 외딴집 느낌으로 편의점이 하나, 그 앞에 파라솔이 두 개 놓여 있었다.
날벌레들이 조금 있었다.
거기서 도시락, 컵라면, 비스킷, 음료 등을 사서, 파라솔에 앉아 먹었다. 인적 없는 도로에 면한 편의점이 비현실적이어서인지 어딘가 저승 기운이 감돌았다.
강제로 갖게 되는 이 한적한 시간이 이상하게 좋기도 했다.
모리 영정
돌아와 보니 이번엔 대기실이 다른 고객들로 바뀌어 있었다. 많이 서러운 울음을 훌쩍이는.
모리를 데리고 추모실로 갔다.
화면엔 모리 사진이 떠 있었다. 장례 사양을 체크했다.
곧 모리는 옮겨졌다 잠시 후 수의에 감싸져 관에 담겨 왔다.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상태로 앞선 차례들이 끝나길 좀 더 기다려야 했다.
11시쯤이 되었을까? 모리 차례가 되어 직원분이 모리를 데리러 왔다.
바퀴 달린 기구에 실려 가는 모리에게 손을 뻗어 마지막으로 귀를 만져보았다. 갑자기 유난히도 귀를 만지고 싶었다. 모리 귓불의 감촉을 내 손끝에 간직했다.
이제 몇 달간 지긋지긋하게 모리를 괴롭히던 암세포도 같이 활활 타 없어질 거라 생각하니, 왠지 시원했다. 이상하게도 비통함이 줄어드는 듯도 했다.
화장이 끝나면 직원이 그릇을 들고나와 잔해를 보여준다. 또 이걸로 스톤을 만들기까지는 몇 십 분이 더 소요된다. 스톤의 개수나 크기는 아이들의 뼈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대기실 벽에는 두 면 가득, 반려인들이 붙인 메모지가 빼곡했다.
우리 테이블 위에는 반려동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쓸 수 있게끔 하트 모양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벽면의 메모지들을 살펴보았다. 자기 동물을 그려놓은 흔적이 많았다.
"이거는 되게 사실주의적이네."
"이것도 되게 느낌 있게 그렸네!"
와중에 그림 품평이 이어졌다.
"어디 홍대 근처에 이런 장례식장이라도 있으면 아주 난리도 아니겠어. 갤러리가 되겠어."
남자 친구가 말했다. 이 말에 나는, 홍대 근처 분식점의 메모지 낙서들을 떠올렸다.
어느새 스톤이 완성되어 왔다. 모리의 것은 유독 희끔한 진줏빛이 감도는 것이 여러 개였다.
뼈의 밀도 차이라고 했다. 작년에 간 제롬이보다 모리 뼈가 더 튼튼했던 것 같다.
오는 길, 오묘한 반달이 구름 사이로 숨었다 나타났다 했다.
집에 올 때까지도 삼베 주머니 사이로 느껴지는 스톤의 온기는 식지 않은 채였다.
돌아오니 다음 날 새벽 한 시가 되어 있었다.
오래전 세상을 뜬, 모리의 엄마 별이의 유골 스톤을 꺼내어, 새로 산 크리스털 함에 넣고 그 위에 모리의 돌들을 얹어 주었다. 엄마의 돌들은 모리 것보다 크다.
그렇게 모자를 합장했다. 둘은 같이 있게 되었다.
와인 한 잔을 따라 마시며 하루를 달래다, 생각난 듯 시집을 주문했다. 이 시집은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것임에도 종이책으로 더는 나오지 않아서 중고 사이트에 가보니 있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산책할 때 나는 습관처럼 시간을 보고 있었다. 모리 저녁 먹일 시간인데 하며, 요 몇 달 동안 저녁 산책 돌아오는 길마다 재촉하곤 했었던 것이다. 이 습관의 자동 재생에 기분이 울렁였다.
또한 분홍으로 물드는 하늘을 배경으로, 이어폰을 통해서는 어느 부드럽고 따듯하고 편안해지는 음악이 들려오자 또 눈물이 났다.
모리를 닮은 리듬.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이란 고양이를 닮았구나, 하면서.
밤에는 이튿날 복부초음파를 하러 가야 해서 일찌감치 수면 보조제와 항불안제, 아스피린, 마그네슘 등을 몽땅 때려 먹고 잠이 들었다.
내가 이런 하루 이틀을 보내는 동안, 남자 친구는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지우개 도장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