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속에 모리가 녹아있는 것처럼

보내고 나서2.

by 래연





누군가와의 마지막 날엔 어쩌면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정수들을 나누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선물도 없이 오로지 슬프기만 하다면 우리 인간들 그리고 우리보다 더 작은 피조물들은 이 삶을 어찌 버틸 것인가?


언젠가 그 책을 다시 열어, 그 부분을 다시 읽고 음미해야겠다. 한쪽 다리를 절단한 다음 죽어가기까지의 랭보의 마지막 날들을 간호하며 함께 한 여동생의 기록을. 자신의 오빠인 동시에, 사랑 가득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한 시인의 영혼을 고스란히 느끼며 생생하게 묘사했던 그 마지막 기록을.


이별의 슬픔은 헤어진 날보다 그다음 날이 제일 심한 것도 같다.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부재를 일일이 확인하게 되는 시점이라서.


시간이 지나 희미해질 감정들일 텐데 기억조차 쓸려 사라지면 정말 안 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적어둔다. 그날과 그날에 이르기까지의 두서없는 기억들을.

모리가 입에서 피를 뚝뚝 흘려 가던 어떤 날엔 작은 이빨 두 개에 살점이 약간 묻은 채로 떨어져 나오기도 했다. 2-3주 전쯤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열흘이나 2주 전쯤부터는 먹이는 관에 주사기를 꽂고 누를 때, 사료가 잘 안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누르면 죽 들어가던 것이, 마치 딱딱한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느껴졌다. 몸이 밥이 거부하는 것인지. 많이 쓰다듬어 가며 더 천천히 천천히 넣어주어야 했다. 이제 정말 가깝구나 싶었고.






지난 2월 말 목에 구멍을 뚫은 이후, 2주마다 새로 붙이는 사료와 약 일지표는 대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채로 계속 쌓여갔고, 올봄만큼은 계절이 보통 때보다 한 겹 더 밖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병원에서 더 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서도 2주를 버텼다.

이 일지기록표의 마지막까지를 다 채운 다음 날 아침에 숨을 거두었다.

처음엔 매일 5번씩 급여하다가 중간에 병세 악화에 따라 4번으로 줄였고, 양도 조절했다.

사료를 덜 받아들이게 되자, 주사기 개수를 3개로 줄여 먹였다.

주사기 한 개는 물만 흘려 넣어주는 용이다.












지금도 모리와 함께 지낼 때 듣던 종류의 음악들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음악 속에 모리가 녹아있는 것도 같다.

신음 한 번 여간 내어 지르지 않으며 고통을 참고 버티던 모리는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고 죄를 대속하는 작은 성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날들에는, 계속 볼 수 있는 걸 확인하는 순간마다 여전히 함께 해 다행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아이의 고통이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극을 향하고 연장된다는 것에 아팠다. 나로서는 4,5월은 잘 버틴 편이었다가 6월 들어선 이 느낌이 진해졌다.


고양이들의 화장실 가리는 본능을 정말이지 엄청나서, 최후의 순간에 거의 가까울 때까지도 그 비틀거리는 걸음으로도 꼬박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곤 했다.

며칠 전쯤엔 대변을 그 자리에 싸기도 하고 전날과 전전날쯤에 어쩔 수 없이 소변을 바닥에 두어 번 지리는 걸 보고 나자, 이제 정말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줌이 번진 아랫배와 몸통을 시원하게 씻겨주지도 못해 한스러웠다.



죽기 바로 전날 밤, 내가 자러 가기 전에 쓰다듬으며 몇 마디 해준 것이 지금 와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마지막 인사가 되었으니.

아침 7시 너머, 모리는 늘 그래왔듯 다량의 피를 흘려놓고 쓰러져 있었다. 피가 아직 굳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얼마 되지 않은듯했다.


내가 자는 동안 삼색 냥이 로리는 모리가 죽는 모습을 보았을까? 혹은 집안에 감도는 죽음의 낌새를 알아차려 그랬을까? 겁에 질린 듯 침대 위에 올라가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로리는 오늘 아침에야 원래대로 나를 깨워 밥을 다시 조르게 되었다.

한 마리씩 보낼 때마다, 고양이뿐 아니라 모든 존재의 무게감이 달라진다.




양말 플렉스

6. 24.


양말들을 잔뜩 샀다.

여름용 얇은 양말과 골지가 들어간 것 두 세트를.

견과류와 함께 바이오 콜라를 마시고 있다.

지금은 이런 것들 외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영화도 보고 싶지 않다.

단순 명쾌한 슬픔 앞에서, 조금이라도 고등한 정신 작용 같은 것들이 다 귀찮고 석연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