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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Mar 14. 2024

즐거운 간격 속의 우리들




늦가을포의 정원       



나무크기만큼 자란 그림자가 

들려주는 말들을

알아들을 것만 같다     


머리를 말리는 거주민 새들

부시게 합창하며 그림자를 

찍어 올린다     


발코니에 걸터 놀던

바람둥이 햇빛이 금세 떠났다 

다른 창문들과 커튼들을 희롱하러     


괜찮다

땅에까지 질질 끌리는

그의 망토를 저당 잡았으니   

 

어김없이 그는 올 것이다

잔열 남은 그의 옷 덮고

오수에 빠진다     



교실들이 있던 건물들의 배치, 'ㄷ'자 형태의 교정




    “마담 쇼꼴라!”(초콜릿 부인!) 

    산발한 줄리엣 비노슈 같은 모습의 마리 크리스틴이 교실에 들어오다가, 초콜릿을 먹고 있던 내게 다가오며 호들갑스럽고도 다정하게 외쳤다. 나는 초콜릿을 늘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녔다. 어쨌든 나의 일상이라는 것이 늘 골치 아픈 프랑스어를 마주 대하는 것이었으므로 수업 중간마다 에너지를 보충해야 했다. 



    11월 포의 정원은 추색이 절정에 달했다. 볕이 좋을 때는 이게 가을이냐 싶게 화창했지만 나뭇잎들만큼은 환상적으로 물들어 ‘ㄷ'자로 배치된 건물들의 한 가운데에 하염없이 내리고 몰려가며 우리 주변을 수놓았다. 2층 멀티미디어실 수업 때 문득 무슨 소리가 나서 밖을 보면 나무 가지치기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발표 이후의 모든 수업들은 하행 길처럼 편안했다. 단지 수업 내용 중 아무래도 좀 적응되지 않는 것은 ‘프랑스 개그’ 동영상이었다. 선생님들로서는 이런 개그를 보여주는 목적이 따로 있다. 개그에 근접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가장 밀착된 상태임을 입증한다. 이 개그 감상은 그 학기의 모든 문법들이 쓸고 지나간 다음 해변에서 조개 줍기하듯 여흥거리처럼 제공되는데 나는 오히려 그게 스트레스였다. 프랑스 개그는 주로 ‘블라그blague'라 불린다. 우리가 주로 보았던 것은 원맨쇼 형식의 소위 'sketch'(스케치, 촌극)라는 것이었는데 당시 대세였던 플로랑스 포레스티와 가드 엘말레의 명연기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개그 언어란 도무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헤드폰을 꽂은 지 채 1분도 안 되어 동영상에 킥킥거렸지만 나는 맥락 파악이 힘들어 점점 표정이 심각해져 갔다. 







    또 하나의 은근한 근심거리는 체류증이었다. 보르도의 OFFI에 서류 보낸 지가 한참 되는데도 이에 대한 응답이 도착하고 있지를 않았다. 미츠요도 나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어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혹시 서류 온 거 없는지 내게 묻곤 했다. 중간에 웬 편지가 하나 오긴 했는데 반가운 기별은 아니었고 대체 뭘 요구하는 건지조차가 불분명한 내용이 ‘삼가...하오니...하여 주신다면 미리 감사드리오며’ 하는 식의 잔뜩 격식 차린 문체로 적혀 있었다. 이 문체를 싹 다 걷어내고 해독해보면 그냥, 이런저런 요건이 구비되어야 하는데 당신에게서 현재까지 받은 서류는 이것과 저것임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싱거운 인간들! 


    하여간 답신은 목이 빠지게 기다릴 때는 약 올리듯 오지 않다가 아예 포기해버린 순간에 기습적으로 도착했다. 중간에 파업이 끼어 잔뜩 늦어진 바람에, 9월 말 서류에 대한 응답을 12월 중간이 되어서야 받았다. 프랑스는 파업이 빈번하고 일상적이다. 일상에 필요한 업무들을 언제 다 수행하고 살아가는지 모를 만큼. 그러나 한 번 할 때 대규모여서 ‘파업의 나라’로 각인되었을 뿐 정작 프랑스의 파업 순위는 세계전체 9위로 의외로 낮았다. 하여간 삶을 개선시키려는 프랑스인들의 노력은 외국인인 나의 불편으로 곧장 이어진 셈이었다.



    그런데 미츠요는 서류 문제 외에도, 다른 고민을 안고 있었다. 기를 쓰고 시험 치르더니 다소 버거운 반에 가 고생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 복도에서 내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형, 너 수업은 어때? 내 생각에,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뒤처지는 것 같아.”라고 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했다. “네가 실제로 못하는 게 아니라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거야.”라고. 이게 단지 위로 차원의 이야기만은 아니어서 실제로 표현 방식의 차이 탓에 수업 현장에서 동양 아이들은 종종 위축된다. 이런 대화에 이르기까지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적응하려 애썼고, 그러고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나 자신을 수없이 다독였던 것이다.



    이 무렵 우리 반 친구들은 누구 하나 밉지 않게 서로 즐거운 간격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슈네이드 만큼이나 맘에 드는 또 하나의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아이오와에서 온 조쉬였다. 마리 크리스틴이 번번이 그랑 조쉬(키카 커서)라 부르던 이 친구는 키네Kiné(운동 재활치료사)공부를 하고 있었고 드럼을 잘 쳤다. 여기에서도 드럼을 연습할 수 있는 악기가게를 찾아놓았으며 ‘쇼케이스’에도 자주 들락거렸다. 매주 화요일이면 여기서 여러 뮤지션들과 어울려 잼을 할 수 있는데 그는 항상 우리들에게 자기가 연주하는 날을 알려 주곤 했다. 


    슈네이드는 어느 저녁 거기 갈 건데 나더러 생각 있으면 오라고 했다. 여기에는 페티코트를 넣은 드레스로 잔뜩 차려입은 에리나도 동행했다. ‘쇼케이스’에서 슈네이드는 단짝 릴리와 함께였고 우리들은 즐거이 잔을 비웠다. 술이 들어가자 슈네이드의 목소리는 갑자기 하이톤으로 바뀌었다.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꺼내 내게 한 잔 사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나라에 가면 먹여주고 재워주기로 했다. 슈네이드는 신나서 외쳤다. “세 프로미!C'est promis!”(약속한 거야!)





포의 시내 거리




    그 날은 조쉬, 슈네이드 외에 니코, 킴 등 반 친구들이 여럿 와 있었고 다른 반 아이들도 많았다. 시카고에서 온 3인조 밴드가 지미 핸드릭스 헌정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평소엔 워낙 놀 거리가 없는 동네다 보니 이만하면 괜찮은 이벤트였다. 이윽고 지미 핸드릭스와 똑같이 차려입은 흑인 뮤지션이 무대에 나타나자 특히 미대륙에서 온 친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연주와 노래, 사소한 제스처 하나까지 완벽한 지미 핸드릭스 코스프레였다. 이 경이로운 3인조는 느닷없이 미국 국가 앞 소절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미국 아이들은 갑자기 향수를 자극받았는지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자세를 하고는 흥분하여 자기네 국가를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조쉬는 그 전날의 취기를 어색해했다. “아 미안했어, 어제는 우리들이 너무나 흥분한 바람에... 너무 오버한 것 같은데 실례가 되지 않았을까 몰라, 우리 지미가 너무 완벽하게 하는 바람에... 뭐 실수한 것 없었어?” 


    이렇듯 외국 아이들은 의외로 예의가 바르고 남을 의식하곤 했다. 그 전날은 미안해할 것도 사과할 것도 없이 그저 즐거운 여흥 자리였는데도 말이다. 하기는 같은 반 코리나 또한 수업시간에 잠시 어쩌다 팔만 스쳐도 “Oh, Pardon"(에고, 미안해)이라고 했던 걸 보면 이들은 자기 의견을 말할 때는 눈치 봄 없이 곧장 이야기하는 반면, 남에게 끼쳐질지 모르는 소위 민폐라는 면에는 우리보다 훨씬 에티켓이 깍듯한 것 같다.





쇼케이스에서 드럼 치는 조쉬




    그런데 이 21살배기 젊은이 조쉬는 생긴 게 미국적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정겨웠다. 키가 불쑥 크고 눈조차 부리부리하여 사실 처음에는 그를 무서워하고 피하기도 했었다. 그는 동양문화를 전혀 몰라서 우리가 주식으로 무얼 먹는지조차 궁금해했다. 가끔은 멋쩍은 듯 꼭 우리나라 사람처럼 ‘헤헤’하고 웃곤 했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짧은 감탄문을 즐겨 썼다. 종종 "오 몽 디으!"(아이구 맙소사!)라고 한다던가, 누군가 뭔가 근사한 것을 해 보였을 때는 "켈 탈랑!"(저런 재능이라니!)이라고 한다던가. 또 ‘잭’이라는 괴짜가 자전거를 타고 복도를 누비는 모습을 보고는 “일 레 푸!"(쟤, 미쳤어)라고 뇌까리기도 했다. 또 내가 긴 분반고사를 꼼꼼히 쓰고 나왔을 때는 “조금의 의심의 여지라곤 없이 너는 상급반으로 가게 될 거야.”라고 했는데 이게 그가 사용했던, 개중 긴 문장이었다. 말투만큼이나 차림새 또한 간결해서 그를 떠올리면 늘 청바지에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가 하면 상냥한 미국 소녀 코리나도 기회 될 때마다 내게 공동의 화젯거리를 찾아 말을 걸곤 했다. 영화 <밀라레파>를 봤냐든가, 문선명을 아냐든가 등이었다. 코리나는 퍽 순진해서, 스스로가 부끄러워하는 내용을 말할 때면 정작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지레 혼자, 실시간으로, 마치 크로마토그래피가 번지듯 귀까지 빨개지곤 했다. 그녀는 대체로 진지해서,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나날이 확장되는 바로 이즈음의 나날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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