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난 지금, 연이틀 비가 내린다. 아파트 위로 연회색 하늘이 층계를 이루어 도회의 멋진 배경이 되어 있다. 한 차례 비는 세월을 쓸어내렸지만, 추억들은 여전히 저 층계 위에 얹혀 있다. 슈네이드에게 하늘빛 비둘기 한 마리 날렸으면......
밀린 숙제였을 것이다. 여기서의 나날 또한. 살아가는 모든 날이 그러하듯, 답안을 채 메우기도 전에 또 다른 문제지가 돋아나 계속 주어지다가 어느덧 종 치기 직전에 와 있는 것이다. 처음엔 천천히 하나씩 내려오던 막대가 막판엔 걷잡을 수 없이 한꺼번에 내려와 공간을 모조리 봉쇄해버리는 테트리스. 낯선 시간은 처음엔 하나하나 뚜렷한 얼굴로 각인되다가 나중엔 점점 익명의 다수로 중첩된다. 둘째 셋째 학기는 점점 2배, 3배속으로 흘러가 갈수록 희미한 필름이 된다.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지나갔으나 기억의 조각도는 이 다채로운 시간들 중에서도 맨 처음의 낯선 당혹의 느린 몇 날들에 더 깊이 박혀 있다. 그리고 처음 내게 웃어 보였던 얼굴들의 후광이 무엇보다 눈부시다.
시험 보기 일주일 전쯤 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작별을 앞두고 선물을 나눠주며 돌아다녔다. 선생님들에게는 마지막 수업을 마칠 때마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건네었다. 카롤린에게는 연꽃 모양의 전통 책갈피를 주었는데 그녀는 평소의 진지한 얼굴로 유심히 그것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토록 예쁜 책갈피는 처음 봐.”
또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너는 포에티크한poétique(시적인) 영혼을 가진 사람이야.”
그들 중 나는 나탈리에게 작은 소망을 털어놓았다. “돌아가면 여기에서의 이야기를 제2의 <오베르주 에스파뇰Auberge Espagnole>(영화 <스패니시 아파트먼트>의 프랑스어 제목)처럼 쓰고 싶어요.”
나는 그동안 죽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품어왔노라고 했다. 그녀는 책을 다 쓰거든 메일을 보내라면서 주소를 적어주었다. “여기에서의 삶이 너를 변화시켰으므로 이제는 쓸 수 있을 거야. 로도스섬으로 떠난다니, 그 섬에서부터 조용히 쓰기 시작하게 될 거야. 같이 수업하면서 보면 너는 사용하는 어휘들이 다른 아이들과 달랐지. 널 시적인 아이라고 생각해왔어. 네가 제2의 아멜리 노통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
나탈리와의 대화는 내게 그대로 각인되었다. 책을 내게 된다면 물론 나는 한 자 한 자 그녀에게 기쁜 편지를 쓸 것이다.
시험을 보자마자 3일 후에 이 도시를 떠나야 했으므로 남은 짐을 싸서 부쳐야 했고 방 청소도 서둘러야 했다. 프랑스 관례상, 그게 가능한 건지나 모르지만 어쨌든 나갈 때는 흔적도 없이, 오히려 처음보다 더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놓아야 한다. 침대 커버와 커튼도 모조리 세탁소로 들고 갔다. 이 도시와 작별할 시간이 너무 적게 남아서, 떠나는 의식을 치를 사이도 없이 그저 서둘러야 했다.
포에 머문 마지막 토요일 오후, 조금 걸어 슈네이드의 방에 갔다. 그 집 전체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들고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던 방, 좋아하는 핫초코를 한 잔 들고 슈네이드가 창가에서 눈을 구경하던 그 방, 그 공간이 이제는 거의 완전히 비어 있었고 침대 위에는 노트북이 마치 물구나무를 선 것 같은 모습으로 뒹굴고 있었다. 고장이 나서 그런 포즈로 두어야지만 작동된다고 했다. 슈네이드는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친구네 집으로 옮겨 이 도시에 좀 더 머문다고 했다.
짐을 다 꾸린 그 방에는 오로지 가득한 햇살, 기울고 있는, 우리를 배웅하는 햇살뿐이었다. 마치 포의 햇빛이 그전까지 있어본 적 없는 밀도로 갖은 다정함을 쏟아붓는 듯했다. 불과 채 두어 시간도 되지 않는 오후의 미끄럼틀에서, 나는 이날의 햇빛만큼의 밀도로 슈네이드와 이야기했다. 다른 이에게는 쉬 털어놓지 않는 내밀한 이야기들을. 그간 서로 분주했으므로 아마도 이날의 대화가 그때까지 그녀와 나눠 본 대화 중 가장 긴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친구와의 공감에는 딱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슈네이드의 빈방에 몇 개 남지 않은 물건들 중에서 내가 언제나 좋아했던 그녀의 낡은 신발의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 신비스럽다. 삶의 예기치 않은 순간, 그것도 가장 낯선 시간에 가장 다정한 영혼을 옆에 느끼게 된다는 것이.
살아온 세월이 몇 갠데, 이제야 처음으로 따듯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권태에 빠져 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낯선 이곳에서 사람들이 나와는 ‘달라’ 더 두근대었는지도 모른다. 다정한 눈빛들, 그것은 멍청한 내게 언제나 간과된 빛이었다. 진실은 만 권의 책에서 읽은들 내가 겪지 않으면 빈 것이고 천 번을 경험한들 문득 다시 깨닫는 어떤 ‘한 번’이 없다면, 언제나 닫혀 있는 창문을 두드리다 스쳐 지나는 바람처럼 아쉬운 것이다. 그러고 보면 관계, 그 아름다움에 눈뜨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그 무수한 권태, 그 걸쭉한 죽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먹었었다.
늘 멍때리는 내가 자주 잊고 지내지만 내게는 사람이 늘 따르는 편이었다. 창백하고 침침한 내면에도 불구하고 ‘따’라곤 당해 보지 않았다. 더욱이 최악의 순간에조차 무언의 구원자가 나타나곤 했다. 지난겨울 피레네의 광폭한 눈보라로부터 날 구해내 도착지점으로 되돌려준 스키의 달인처럼.
다만 살다 입어버린 모진 일들에 마음이 차가워져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모진 존재로 남기도 했다. 악덕이란 핑계를 먹이로 증식하며 옮겨 다니고 있었다. 내가 반드시 깨쳐 알아야 할 무언가가 있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어지간히 약하다는 것을. 부모도 연인도 친구도. 그래서 관계에서의 빚 청산 문제와는 별도로 다른 백신을 생성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새겨들어야 할 것은 넋두리다. 그것은 다름 아닌 넋 자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긴 넋두리. 삶의 다음 단계로 가려면 내 넋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줘야 했다. 9개월 전 나는 포에 나를 던져놓았었다. 이제 여기 스며들었던 나를 순식간에 떼어내어야 할 시간이다. 찬란한 이별이 될 것인가? 아름다운 이별을 맞으면 존재의 잔향이 소멸한 후에도 대신 부재의 황홀 하나를 품을 수 있다. 비존非存의 달콤함, 눈이 내렸었다는 얇은 기억 위를 덮는 햇빛. 나오코의 존재와 부재를 통해 미도리를 부르게 되듯, 여러 개의 이별 후에 슈네이드의 방에서 빈 공간을 가득 채운 햇살을 만난다. 내 옆의 다정했던 이들, 간과된 햇살들, 이 미도리들 옆으로 돌아간다. 행복은 용접되었다.
눈물
세상이 어항이 되는 날 어떤 눈이
우리 가련하고 아름다운 지느러미를 살펴볼 것이다
물 아지랑이 가득한 대기 속
나는 옐로 섬버린이 된다
내게 안대를 걸어준 어둠이여
빗속의 방이여
나는 요이, 땅하고
휘몰아칠 준비가 된 바람이다
언제고 변함없이 초조할 것이나
초침을 붙드느니
미래를 선제공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