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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Jul 26. 2024

눈부시게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




    학기 말이 가까워갈수록 점점 무더워졌다. 하루카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여신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녔다. 이 무렵 포의 하늘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면서 법원 앞 광장과 계단에는 그 유명한 카미용 블르camion bleu(파란 트럭) 앞에 늘 긴 행렬이 이어졌다. 이 트럭의 아이스크림은 이탈리아 것보다도 맛있고 다양했다. 6월의 목마른 우리들에게 그것은 보석 꽃다발이었다. 나는 특히 럼과 포도가 섞인 맛을 즐겼다. 이 트럭 앞에 죽 늘어선 줄 속에서는 학교 친구들의 거의 대다수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전설적인 아이스크림 트럭 뒤편의 법원은 학생들에겐 견학 장소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마리 크리스틴과 더불어 재판 홀에서 소위 참관이란 걸 했다. 그것은 고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귀한 체험이었지만 정작 판사 앞에 선 피고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친절하게 뒤를 돌아 우리를 향해 자기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관찰하기엔 미흡했던 이 견학을 마치고 뒤돌아 나오자마자 거부할 수 없는 아이스크림 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파란 트럭에서 우리는 법정이 유발한 모든 지루함을 씻어버릴 수 있었다.






파란 트럭




     시험이 다가오면서 나는 기숙사에서 자주 컴퓨터로 TV를 보았다. 특히 새로 발견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위안이 되었다. 바깥의 햇빛은 강렬했지만, 숙소는 여름이 올 때까지도 퍽 서늘하여 춥기까지 했다. 그러나 역시 멈추지 않는 기침 때문에 나는 녹색이 창궐하는 바깥공기를 면제받고 있었다. 바깥엔 꽃가루의 행렬도 여전히 성업 중이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시험을 앞두고 있던 마지막 3주가 이 도시의 날씨와 축제 캘린더에 있어 가장 빛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앙리 4세 서거 400주년 행사들까지 추가되어 더욱 그러하였다. 시험 준비 와중에도 간간이 저녁 외출을 피할 수 없었다. 앙리 4세 500주년에는 내가 세상에 없을 테니까. 

    앙리가 태어난 성에서는 ‘ㄷ' 자로 배열된 건물 벽면에 색색깔의 그림자를 전사하여 앙리 4세의 일대기를 펼쳐 보였는데 웅장한 음악들이 배경으로 깔리는가 하면 장면에 따라서는 뜰에서 현악기 솔로가 연주되기도 했다. 음악 그림자극 속에서 그림자들은 살아 움직이고 장면은 드라마틱하게 휙휙 바뀌어 역동적이었다. 맨 마지막은 장엄한 합창으로 끝났는데 이쯤 되자 효과의 강렬함에 취해서인지 나 자신 마치 한 사람의 팔루아즈paloise(포 시민)라도 된 양 감격해 있었다.    


 

    학교 식당에서 우리들은 식당 바깥 자리를 즐겼다. 햇빛 조각이 양념이 되어 쏟아져 들어간 식사를 누리곤 했다. 주로 앞둔 휴가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 이런 좋은 날씨를 한껏 즐기고자 반 대항 축구대회를 펼치기도 했는데 여기에선 씩씩하게도 에리나가 나서서 선수로 뛰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파블로라는 친구는, 아르헨티나 남자는 응당 축구를 잘할 거라는 통념을 깨주었고 의외로 대륙의 중국 친구들이 선전했다. 축구 선수 중에는 마치 이 도시의 노숙자들처럼 드레드 머리를 한 스튜어트도 있었는데 이 아일랜드계 호주인으로 말하자면 에리나의 마음속 이상형이 현실의 남자로 화한 것 같은 존재였다. 에리나는 처음 그를 발견한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흥분하며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몹시 수줍어했다. 축구 경기 때에도 에리나는 터프하게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어디까지나 스튜어트를 의식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스튜어트는 큰 키에 흡사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조니 뎁 같아 보였는데, 그는 평소 과묵한 데다 심지어 이따금씩만 발산하는 음악적 감성까지 있었다. 어느 날 중국 친구 루한이 벌인 춘절 파티 때(갖은 청요리가 끝없이 제공되었으며 파티 이후 핸드폰 지갑 등의 적지 않은 분실이 보고되었다고 한다.) 스튜어트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는데 여기 불참했던 에리나는 하루카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모른다. 사실 스튜어트가 어지간히 멋있기는 했지만 제 눈에 안경이라고 누구에게나 그러한 것은 아니어서 정작 그와 같은 반인 영아는 그의 헤어스타일이 비위생적이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쨌든 스튜어트는 임자가 있는 기혼자였다.



     3학기 말은 이런저런 행사들이 뒤엉켜 앞뒤도 짚어지지 않을 만큼 정신없었다. 우리 담임 테오는 마지막 두 주 정도 지병인 허리 통증이 도져 아예 출근을 하지 못 했다. 그래서 원래는 그녀가 진행하기로 했던,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가며 좋은 와인 고르는 법을 익히는 와인 강의라던가 쥐랑송에 있는 와인 저장고 견학 등을 단발머리 마리 폴린이 대신했다. 테오도라는 맨 마지막 수업에만 나타나 우리와 인사를 나누었다. 마지막 포옹을 나눌 때 미츠요는 나를 얼싸안았다. “시현, 넌 내게 늘 친절했어.” 

    그런가 하면 떠나기 며칠 전엔 프랑스 전역에서 일제히 ‘음악 축제’가 벌어졌다. 피레네 대로가 시끌시끌하도록 온 도로와 골목에서 다양한 음악이 연주되었고 사람들은 아무 데나 끼리끼리 어울려 맘껏 마시고 돌아다녔다. 불야성이었다. 이 도시에서의 마지막 축제였다.     



    드디어 시험. 첫날은 일단 순조로웠다. 마리 크리스틴과 함께 사회 문화 구술시험을 치렀다. 선생님은 시험 후 나의 어휘력 등을 칭찬했다. 그래서 퍽 높은 점수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으나 몇 개월 후에 점수를 받고 보니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오히려 점수가 빡빡하리라고 예상했던 카롤린과의 문학 구술 점수가 더 좋았다. 왠지 짐작 가는 면이 있었다. 이 시험은 15분 정도 혼자 논리를 전개한 다음 나머지 10분가량 선생님과 토론을 벌이는 구성인데, 바로 이 토론에서는 내가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해 선생님이 자기 생각을 준비된 듯 논리 정연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이에 감탄한 나머지 너무 쉽게 그 의견에 동의해 버렸는데 아무래도 이게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구술시험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자기 의견을 끝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다. 


    둘째 날로 말하면, 앞으로 이런 날은 두 번 다시 갖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시험을 망친 것은 아니지만 피로의 극한에 매달려 가까스로 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그 전날, 지병인 불면증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혼미한 상태에서 오전 오후 무려 6시간의 지구전을 꾸역꾸역 때우다 보니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예술사는 예상이 많이 빗나갔다. 마네나 세잔의 주요 그림 관련 문제는 나오지도 않았고, 나폴레옹 3세 때 파리를 정비한 사람을 묻는 질문에는 ‘오스만’의 철자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e'를 더 추가했는가 하면, 모네 그림 <일출>의 제목은 모조리 정관사 ‘르le’를 넣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둘째 시간 독해는 슈네이드 옆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치렀다. 기다란 지문의 주제는 ‘사람 상호 간에 존재하는 심리적 자기磁氣반경의 크기’에 관한 거였다. 


    점심시간을 빌려 최대한 잠을 보충하려고 책상에 엎어져 꼼짝 않고 있었다. 오후의 작문 주제는 평이했다. ‘대학 교육이 인생에서 성공하는데 필수적인가?’라는 문제였다. 맨 뒤에는 단어 수를 세어 적도록 되어 있었다. 마지막 시간 청취 과목은 녹음 상태가 통 좋지 않아 직직거리는 소리가 났고 방송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 얼떨떨한 상태에서 절반은 창작하는 기분으로 빈칸을 채웠다. 

    이날 저녁에는 안도의 포도주를 한두 잔 마셨다. 시험의 결과는 몇 달 후 우편으로 받았다. ‘아드미즈Admise’(통과)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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