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날씨는 따뜻해졌고 이와 더불어 예기치 못한 복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꽃가루의 형태로 나를 덮쳤다.
발단은 단순했다. 아주 화창한 어느 날, 4월인데도 내가 소매 없는 옷을 입고 있어 알렉스는 나 보고 해변에 다녀왔냐고 했다. 마리 크리스틴은 이 좋은 햇빛을 누려야 한다며 잔디밭에서 수업을 이어나가자고 했다. 우리는 나무 밑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서부터였다, 끝없는 기침이 시작된 것은. 그 후 시도 때도 없이 억제할 수 없는 발작적 기침이 이어져 수업 중에 교실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약사는 ‘코클뤼슈coqueluche’란 병으로 추측했다. 사전을 찾아보니 ‘백일해’였다. 이 기침은 정도는 약해졌을망정 귀국 때까지 계속되다가 귀국 후 동네에서 이비인후과 약 한 번 조제 받고서 딱 멈추었다.
마지막 학기는 특히, 우리나라와는 수종도 다르고 다양할뿐더러 그 높이와 뻗어난 가지의 규모도 남다른 나무와 꽃들 덕에 상상할 수 없이 풍부한 꽃가루의 행렬 속에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귀국할 때가 가까워간다는 들뜬 마음, 앙리 4세 기념 축제 분위기, 이 모든 게 겹쳐지면서 공부에 의욕이 사라져 갔음은 당연하다.
마리 크리스틴의 사회 문화 과목은 2주마다 주제가 바뀌어 갔다. 우리는 차례로 앙리 4세, 육류 소비와 식생활, 바이오식품 등을 다루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주제는 맨 마지막에 다룬 ‘행복이란 무엇인가?’(케스 크 세, 르 보뇌르?Qu'est-ce que c'est,le bonheur?)였다. 그즈음 낭트에서는 이 주제로 당대 석학과 인문학자들이 모여 대대적인 포럼을 열었는데, 선생님은 그중 두 사람이 벌인 한 시간도 넘는 토론 배틀 영상을 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또한, 행복 혹은 이와 관련되는 수많은 어휘들, 곧 지복, 만족, 니르바나, 평온, 충만 등 몇십 개는 되는 단어들의 정의와 차이를 정리한 프린트물을 나눠 주고는 이 가운데 마음에 드는 단어를 각자 세 개씩 골라 왜 좋아하는지 설명해 보게도 했다. 수업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릴리가 뇌까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니 뭐니 해도 오르가슴이 제일인 거야.” 실제 그 단어는 프린트된 자료에 있었지만 수업 중 아무도 그 단어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런가 하면 숙제로, 각자 자기 나라 사람 다섯 명에게서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순간과 행복의 조건에 대한 답을 받아 오게끔 했다. 나는 이 질문을 ‘좋아서 하는 밴드’의 팬클럽 사이트에 올려서 수많은 댓글을 받았는데 결과는 흥미로웠다. 그중엔 ‘커피와 함께하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정의하기 방대한 행복이란 개념조차도 감각의 옷을 입혀 놓으면 오히려 또렷해지나 싶었다.
행복의 조건이라.... 우리는 방사능조차도 원래 있어왔던 삶의 조건들 중 하나로 느껴질지 모르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곧 다른 이슈들이, 어차피 치명적인 결과로 다가오기 전까지는 실감 나지 않을 방사능 수치쯤은 쉽게 덮어버릴 수도 있다. 이 이슈들 또한 잠시 떠돌다가 망각의 휴지통으로 향할 것이다.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방사능보다 더 무서운 방관, 무신경, 망각. 모두가 무언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무뎌졌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의 조건을 굳이 하나쯤 꼽으라면 나는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들겠다. 지금 인류는 너무 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방어막을 생활화하다 보니 느끼는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느낄 줄 안다면 많이 아플 수도 있지만, 느끼지 못하여 공허로이 무사한 것보다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