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책을 쓰다니, 얼마나 예쁜 생각인가!”
언젠가 마리 크리스틴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포의 햇빛은 결국 내게 책까지 쓰게 만들고야 말았다.
애로가 좀 있어서 버릴까 하다가 다시 사는 삶이다. 그리고 장 콕토가 말하였듯 글쓰기는 사랑의 행위이다. 글쓰기가, 내가 하는 사랑이 나를 일으켜 세워 다시 걷게 한다.
물론 그곳에서의 짧은 머묾이 내 나머지 삶의 몇십 개년 계획의 청사진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저 범상한 체류였으나 특별하지 않을수록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일상적인 것일수록 바꿀 수 없는 행복으로 가득해야 한다고 믿으니까.
다행히도, 비록 내 편에서 먼저 투항하진 않았으나 포의 햇빛과 피레네의 자연은 날 가만두지 않았다. 이제 나는 따뜻하면 나그네가 옷을 벗게 되는 햇빛과 바람의 우화를 믿겠다.
생애를 통틀어 달콤한 기억이다. 내 주머니 속에는 아직도 온기가 가시지 않은 햇빛의 잔열이 있다. 나는 이름 모를 꽃들을 엮듯이 만든 이 기억 한 다발을 누군가들에게 주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모든 추억이 불붙은 지푸라기가 되어 쓰러진들 맘이 놓일 것이다.
서로 이방인으로 만난 우리들은 그곳에서 잠시나마 작은 천국을 이루고 살았다. 별의별 인간군상은 어디에나 있지만, 심장에 넣을 우애 한 조각이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세상엔 아주 따뜻한 것들이 있다. 조건 없는 포옹과 미소, 사랑스러운 눈빛이 짓는 일상, 살아가는 일이란 그냥 별일 없이도 원래 다정한 것이다. 그래야 한다.
돌아왔다. 이제 삶 안에서 끝없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삶은 곧 지나가므로 시큰둥할 겨를이 없다. 삶을 버는 일에 골몰할 것이다. 나는 지금 잡다한 생각에 잠겨 맛도 모르고 마셔버린 커피잔을 무심히 기울이다 아직도 두어 모금 남아 있는 걸 봤을 때처럼 다행하고 기쁜 마음이다. 부디 모든 그대들의 나날이 아껴 마시는 방울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