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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Aug 06. 2024

마지막 레슨





    포를 떠나기 이삼일 전부터 화장실에 가 앉으면 그런 생각이 났다. 여기서 아홉 달, 같은 기간에 더러 여자들은 아이를 낳는다. 아홉 달이면 무언가를 낳을 수도 있는 기간이다.


    여기 사람들 삶의 제대로 된 구경꾼이 되어 보지도 못한 채 나는 떠난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수많은 꽃과 나무와 새들. 그것들의 학명은 단지 빛깔과 눈부심과 아름다운 합창으로만 뇌리에 남은 채, 그 이름 하나하나는 끝내 모를 것이다. 이렇게 나의 떠남은 급작스럽고 간소하다. 다만 이 도시에서 매일을 살면서 늘, 사람은 나무와 꽃과 친구와 축제만 있으면 어지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느꼈다.


    천국의 단조로움. 시간이 어떤 중심을 향하여 같은 궤도를 돌듯, 이 도시에서는 기념비적 햇살 아래 평생 아무런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비교적 굴곡이 없는 시간들을 가지고 기억의 피륙을 짰다고 해서 그저 균질적인 무늬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처음 만져 보는 이 천에는 나의 웃음과 한숨이 올올이 섞여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즈음의 페이지에는 어떤 극적인 반전은 다소 결여되어, 이런 시금털털한 이야기를 왜 굳이 적느냐고 누군가는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답할 수 있다. 나는 여기 아주 짧은 시간의 조각을 살았지만 동시에 ‘모두’와 있었다고. 나를 둘러쌌던 몇몇의 사람들은 그 시간에 역사와 대륙을 건너와 있던 인류의 대표들이다, 그렇게 믿는다.


    하루하루 나날의 느낌들이 어찌나 자연스러운 농밀함으로 휘감겨 있었던지, 몇 시간에 걸쳐 짐을 싸면서도, 우체국에서 짐을 부치면서도, 남은 짐을 메고 끌고 학교 사무실로 가면서도, 열쇠를 반납하는 순간에도 이곳을 떠난다는 느낌은 없었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때조차 마치 비아리츠나 바욘으로 여행을 떠났다 며칠 후 다시 만날 것 같기만 했다. 


이윽고 비행기가 포의 상공을 떠날 때에야 비로소, 이제는 익숙해진 저 기숙사 침대로 돌아가 다시는 누워보지도, 어두운 복도를 걸어 화장실이나 샤워실에 가지도, 더 이상 내 몫의 우편함을 갖지도 못하리라는 생각이 몰려오며 눈물이 났다. 그제야 그동안 내가 저 아래 도시에서 꿈을 꾸었고 비행기는 그 꿈에서 깨어나는 누에고치 같은 캡슐임을 깨달았다. 상공으로부터 나는 꽤 부드럽고 감동적인,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을 경험했다. 


    비사교적인 나의 경우, 사람들과의 이별보다는 장소와의 이별이 더 애틋하다. 한 마리 집 떠난 고양이처럼 이제부터 긴 향수병에 시달릴 것이다. 기억들을 재구성하는 게 어디까지 가능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여기에서의 삶을 통틀어 ‘삶의 한가운데 요람’이라 명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나의 이야기는 끝난다. 그 도시를 떠나며 적은 마지막 일기를 읽으니 왠지 모를 느낌이 북받친다. 비행기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마치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며 다른 우주로 가는 순간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특별함이 없는 삶일지라도 어느 날 내가 어떤 곳에 태어나 순식간에 꿈을 꾸고 다시 그 꿈을 작별하는 일. 나는 그렇게 그 도시에 잠시 태어났었고 얼마간 살다가 거기를 떠났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거기에 하나의 나를 두고 떠나와서는, 지금도 어딘가로 되돌아가고픈 마음이 들 때마다, 내게는 영원한 현재일 것만 같던 그곳을 떠올린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곳의 내가 뒤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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