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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이에게

임지민 개인전 《새처럼 훨훨 날아가》

by Dodoseeker


슬픔을 공부하는 이에게


그렇게 기세가 좋던 무더위가 한 풀 꺾이고, 아침 저녁으로 기분 좋은 상쾌한 한기와 적당히 따사로운 햇볕이 반가운 요즘이다. 성큼 다가온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마음이 기쁜 연유는 여름이 무척 길게만 느껴졌기에 그럴 것이고, 그렇게 인내를 가지고 견뎌왔던 시간들의 잔상들을 문득 회상하게 되기 때문일테다. 그러나 이 반가움 한편으로는 곧바로 이 빛나는 계절의 단명短命에 대한 아쉬움이 벌써부터 밀려온다.


어째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미련없이 피고 지는 어느 꽃처럼 눈부시게 찬란한 동시에 슬픈 마음이 들 정도로 금새 단명해버리고 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순간들을 몹시 사랑해 마지 않는다. 바람에 벚꽃이 오소소 떨어지는 그 몇 초의 시간, 바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잠시 며칠 짬을 내어 훌쩍 여행을 떠나기로한 순간의 그 설레는 마음, 첫 데이트에서 어색하게 처음 그의 손을 잡았을 때의 그 섬광같은 온기, 오래전 지나가 버린 유년의 어느 빛나는 웃음 가득했던 순간 같은 것들... 쏜살 같은 시간 속에서 오로지 변하지 않는 것은, ’붙잡아 두고 싶다, 간절하게 지금 여기에, 지금 이 순간 속에 영원히 붙잡아 두고 싶다.‘하는 부질없는 바람 뿐. 그 염원과 바람은 깊은 슬픔과 회한이 되어 오래도록 나의 곁에 쓸쓸히 머물 뿐이다.


나는 지민의 작업에서 그러한 회한과 슬픔과 그리움을 공부하는 사람의 담담한 표정의 얼굴을 발견한다. 1218장의 목탄 드로잉 한 장 한 장에 슬픔의 여러 얼굴들을 새겨나갔다는 그녀는 오히려 그러한 슬픔들을 직면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 졌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결국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만 하는 아름다운 순간들과의 이별에 무뎌졌다는 의미가 결코 아닐것이다. 그녀는 그러한 슬픔들을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그 찬란한 순간들에 대한 사랑을 더 오래, 성숙하게 이어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슬픔을 감당함으로써 그 순간들은 쉬이 시들지 않고 그녀의 그림 속에서 끝내 영원히 아름답다.


전시는 10월 4일 까지. oaoa갤러리

@jiminim29

@oaoa_gallery


임지민 개인전

《새처럼 훨훨 날아가》

Jimin Lim

«Fly Away Like a Bird»

2025.09.03 - 10.04

오에이오에이 oaoa

서울 강남구 삼성로63길 32-11

수-토 11:00-18:00

www.oaoa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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