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너
스웨덴 여행에서 나는 자유를 맛보았고 스스로를 풀어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나의 가슴을 유심히 보며 물었다
“아까부터 계속 긴가민가 했는데 혹시 너 지금 노브라야?”
흠, 그녀가 그 말을 할 거라 예상했지만 굳이 브라를 하지 않은 건 여행에서 누렸던 자유로움을 한국에서도 계속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그래도 되지만 한국에 와서는 다시 남의 눈치를 보는 게 당연시하는 걸 스스로 깨고 싶었다. 원래 나는 브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면서 더욱 그게 불편해졌다. 아이가 젖을 끊은 이후 나의 가슴은 볼품없이 작아졌지만 젖꼭지는 더 커지고 색도 진해졌다. 평평한 가슴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으면 좀 털털해도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는 이렇게 편하게 지내면서도 나갈 땐 어쩔 수 없이 브라를 해야만 하는 게 매번 불편했다. 하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스웨덴에서 한 번도 브라를 하지 않았고 굳이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그럴만한 사유가 아니니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게 ‘매너’가 아니라는 사유가 붙는다. 자유로이 흐르는 누군가의 시선을 한 점에 잠시 머물게 한 나의 젖꼭지는 보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으므로 이를 애초에 자행한 내가 이기적이고 예의가 없는 사람인 거다. 본인의 자유를 누리겠다고 남의 시선에 불편함을 낳았으니 말이다.
친구는 나의 노브라 얘기를 몇 번 더 꺼냈고 뒤에 온 친구에게도 이 만행을 일렀다. 결국 그녀는 나를 옷가게로 데려갔고 거기서 스포츠 브라를 하나 사서 내게 건넸다. 내가 괜찮다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녀는 더욱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안 괜찮아!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쳐다볼 텐데 창피하지도 않아? 아무리 자유롭고 싶어도 아닌 건 아닌 거야. 남은 신경 안 쓰냐? 이거라도 당장 입어. 안 입으면 같이 안 다닐 거아! “
브라를 입고 나온 나를 보며 그녀는 매우 흡족해했다. 사람들에 섞여 무난히 지내려면 개인적인 불편함 따위는 감당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은 거라고 내게 일침을 가했다.
스웨덴에 있을 때 아이를 데리고 한 카페에 들어갔다. 주문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주문대 앞에 서 있는 한 직원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딱 달라붙는 빨간 민소매 덕에 노브라인 그녀의 몸 자태가 다 드러났다.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감 넘치고 활기차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누구도 그녀의 젖꼭지에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아 보였고 일부러 시선을 돌리는 이도 없었다. 이런 자연스러운 장면이 왜 한국에서는 그려지지 않을까?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가슴을 드러내는 한 여성의 신성한 자태도 한국에서는 부끄러운 행동이다. 한 번은 내가 카페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모습을 보았던 친구가 며칠 후 그 얘기를 꺼냈다.
“야, 너 얼마 전에 그 카페에 있는 거 지나가다가 봤어. 그런데 엄청 놀랐잖아. 네 앞에 남자가 앉아있더라고, 넌 그 남자 앞에서 애 젖 먹이고 있고.. 네 남편 아니던데? “
“응, 앞 집 애 아빠야. 그 남자 애도 카페에 있었고..”
“뭐? 너 잘 모르는 남자 앞에서 애 젖을 먹인 거야 그럼? 미쳤구나.”
그래, 그가 젊은 총각이었다면 좀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나이에 엄마 젖을 빨았던 기억은 이미 없을 테고 풍만한 여자의 가슴은 그의 성적 흥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가 될 테니까. 하지만 애 아빠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한 애 엄마의 가슴을 보고 뭔가 찌릿함을 느낄까? 설령 그렇다 해도 이는 남자의 몸에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그 이상의 어떤 변태적인 의도가 서로에게 없다. 좀 멀찌감치에서 다시 보자면 여자는 배고픈 아이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있었고 유감스럽게도 이 영양분은 여자의 가슴을 통해서만 역할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걸 할 수 없는 옆의 그 남자는 본인의 아이에게 다른 방법으로 아이의 관심거리를 유도하고 있었다. 이게 이 장면의 본질이다.
한 때 밴드를 붙이고 다닐까도 생각했다가 아얘 젖꼭지를 잘라내는 성형을 할까 고민도 했다. 졸렬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 고민을 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하다.
노브라인 여성이 예의가 없는 게 아니라 남의 개인사에 무리하게 간섭하는 이가 노매너가 아닐까.
눈에 거슬리다면 편하게 생각하라. 아 저건 몸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본인의 일에 집중하라. 아, 오늘 회사에서 할 일이 뭐였더라… 이게 정상적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