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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ug 14. 2019

유쾌함과 아이스 카페라떼

슈퍼스타 존 버거맨의 펀팩토리 in M컨템퍼러리

유쾌함과 아이스 카페라떼

인생이 유쾌하기만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아침부터 이런저런 일로 내 마음 한바탕 감정의 파도를 탔다. 그걸 알아채기라도 한 걸까. 하얀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이 유난히  눈이 부시다. 뜨거운 여름날 미술관으로 오랜만의 외출이다.


M컨템퍼러리. 역삼동 르메르디앙 호텔 1층. 어수선한 내 감정만큼 전시장 입구도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다. 찌는 듯한 더위를 잠시 피해 건물로 들어와 쉬고 있는 커플. 나이 지긋한 어르신.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엄마와 아이. 전시장 입구 건너편 널찍한 레스토랑 안. 테이블마다 두세 명씩 둘러앉은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적당한 소음으로 기분 좋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 '살아있음'이 좋았던 걸까. 조금은 가라앉은 마음속 감정을 달래고 싶어 나는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스 카페라떼 한잔을 시켰다. 쌉싸름한 커피 원두와 부드러운 우유의 '이중적'인 맛이 목구멍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간다. 드디어 전시를 볼 준비가 된 듯하다.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 'Fun Factory'. 참 신기하다. 그걸 마주하는 내 마음과 상반된 전시회 테마라니.

재밌는 공장이라. 뭘 그리 재밌는 걸 만들어 내길래? 오늘따라 유난히 심술궂은 마음이 앞선다. 심지어 공장 맵까지 입구에 떡하니 걸어놨다. '존 버거맨의 펀팩토리 가이드맵'. Zone 1부터 Zone10까지 doodle(그림) 원화, 작업 영상, 미디어 아트, 낙서 체험, 작가의 다큐멘터리 영상까지 무척 다양하고 생동감 있게 구성된 듯했다.


존 버거맨(Jone Burgerman). 1979년생의 영국 출신 팝아티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원래 영국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하고 거기서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본인 작품의 매너리즘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2010년 뉴욕행을 마음먹는다. 거주지를 아예 뉴욕으로 옮기고 새로운 사람들과 변화를 찾아 나선 것이다. 흠... 실천하는 예술가랄까. 그의 이런 노력은 과연 좋은 결실로 이어졌을까? 궁금했다.


Zone 1에서 Zone10까지 이어지는 그의 다양한 작품들. 그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익살스러운 느낌의 까만 두 눈동자가 그의 작품 전부를 상징하는 걸까. 그가 만들어낸 다양한 표정의 캐릭터와 그것들이 녹아든 작품들. 오늘 내가 본 230여 점의 작품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감정의 이중성'이다.  생뚱맞아 보이지만 가장 근접한 표현이다.


사진으로 보는 존 버거라 작가는 무척 유쾌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캐릭터들은 유쾌함이 전부가 아닌 듯했다. 오히려 '혼란'(Confused), '침울'(Glum), '인생은 한 번뿐'(Yolo), '걱정꾼'(Worrier)... 이런 반대의 감정들이 내 가슴에는 더 많이 와 닿았다. 왜 그랬을까?

혼란


인생의 유쾌함이 도대체 뭘까. 진정한 유쾌함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 우리가 느끼는 걱정과 우울감, 그리고 혼란에 대한 경험이 선행되지 않은 '유쾌함'. 그걸 과연 진짜라고 불러도 될까. 전시회 내내 이런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내가 본 존 버거맨. 그에게 '유쾌함'은 그의 우울함을 가려주는 든든한 방패처럼 느껴졌다.


Zone10. 전시회 마지막 코너인 그의 다큐멘터리에서 막연했던 그 느낌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영상 속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왕따'로 소개한다. 유대인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오롯이 유대인들의 문화에 속하지 못했던 소년. 그렇다고 또 다른 사람들의 그룹에도 속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평범한 아이들과는 무척 달랐다고 말하는 그는 자칭 '이방인'이었다.

영상 속 어린 존 버거맨


또한 그의 할아버지는 홀로코스트(독일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의 이야기를 애써 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하고 유쾌한 가족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인터뷰에서 존 버거맨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평범하지 않은 '왕따'가 살아남은 법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함으로 무장하는 것이었다'. 존 버거맨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커다랗고 까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맑게 웃는 작가 자신을 닮았다.

뼛속까지 유쾌해 보이는 예술가의 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아픈 유대인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족사. 평범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존 버거맨, 그의 작품 속 다양한 표정과 감정의 캐릭터들. 그것은 인생의 즐거움과 유쾌함일까 아니면 그 뒤에 숨겨진 아픔일까. 결국 우리가 가진 '감정의 이중성'과 그 '다양성'에 대해 그는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특히, 네온 아트를 통해 표현한 '익살', '슬픔', '장난기' 어린 '표정 캐릭터'들은 무표정함으로 가장한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과연 나는 얼마나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표현하며 살고 있을까. 

억지로 웃고, 억지로 즐거운 ''하는 순간이 더 많은 게 일상에서의 진짜 모습 아닐까.


사실 나는 '무표정'이 가장 어려운 사람이다. 일부러 무표정한 얼굴을 하면 무표정보다는 무료함?처럼 보이는 것 같다. 얼굴에 감정을 담지 않는 것이 어려운 나에게. 차라리 애써 웃는 것이 더 쉬운 일이지 않았을까. 그러다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표정이 나오기도 하고.


가끔은 애매한 상황에서 억지웃음을 짓는 내 모습이 조금은 슬프게 느껴진다. '웃픈'  모습. 나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일상에서 '유쾌함'이란 방패는 확실히 유용하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어떨 땐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싶을 때도 있기에...

울먹이는 토끼


존 버거맨. 그의 기분 좋은 유쾌함. 그 감춰진 감정들. 오늘 그것들이 유독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진 이유를 이제 깨닫는다.


사실 인생에 유쾌함있는게 아니어서...그래서  살만 한  아닐까. 일상을 보다 생동감 있게 만드는 감정의 다양성. 커피와 우유가 얼음 덩어리들과 마구 뒤섞인 '아이스 카페라떼' 같은 뭐 그런 거. 나는 더 많이 표현하고 싶다!? 아니 나는 더 많이 표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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