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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Sep 27. 2019

집합 도시 '타인과 잘 지내는 방법'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전'을 다녀오다!

도시를 만드는 이들의 역동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 음성원의 '도시와 라이프' 칼럼 -


평일 저녁 시간. 조금은 늦은 퇴근을 하고 집 근처 단골 카페를 왔다. 삼삼오오 각양각색 사람들의 '집합'이 2층 카페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카페 어딘가 성능 좋은 스피커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은 사람들의 '집합'이 제각기 만들어내는 소음과 어지럽게 뒤섞인다. 잠시 나는 멍하게 앉아있다. 그리고 며칠 전 다녀온 서울 도심  '집합도시'를 떠올린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 

나는 이 곳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이를 먹고 나의 생각이 바뀌듯.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서늘한 가을의 기운이 온 사방에서 느껴지듯. 도시라는 공간도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렇게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세상 속. 아이러니하게도 변하지 않는 풍경이 있다면 그런 변화를 품은 도시들의 모습 아닐까.

도시는 비슷비슷한 수많은 물리적 '건축물'들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똑같은 모습의 아파트 건물. 회색과 흰색의 무미건조한 사무실 공간. 나름의 고민과 절실함 또는 무심함이 묻어있는 필체와 색상으로 꽉 채워진 간판들이 벽면을 어지럽게 채우고 있는 건물들. 회색의 도로 위. 다르지만 똑같은 자동차들 집합. 그런 도로 위 공간은 살기 위해 절박하게 꿈틀거리는 애벌레들의 또 다른 집합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멕시코의 주거도시화(출처:비엔날레 공식홈페이지)


사람과 건물의 다양한 '집합'들이 모여있는 도시 공간. 이곳에서 가장 역동적인 집합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 아닐까. 일상 속에서 나는 적게는 가족이라는 하나의 집합, 많게는 회사의 팀, 동기 모임, 학부모 모임, 스포츠센터 운동 모임 등등 수십 개의 '사람집합'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집합 속 내 모습은 때론 짜증스럽고 때론 고민스럽고 때론 행복하다. 이런 다양한 사람집합들을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건축물과 자연이다. 사람들, 건축물 그리고 땅, 나무, 하늘이 어지럽게 뒤섞여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는 곳. 내가 지금 숨 쉬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이다. 바로 '집합'의 도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 건물의 두 개층을 빼곡히 채운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전시관. 이 공간은 나에게 집합들의 집합공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사람들의 집합, 건축물의 집합, 자연물의 집합. 세 가지가 다시 만들어 내는 교집합들. 그리고 그것들 간의 연결과 상호작용이 다이내믹하게 일어나는 공간. 결국 이 도시 플랫폼은 나를 계속 깨어있게 만드는 거대한 자극제다.

출처:비엔날레 공식홈페이지

요즘 집합(group)으로써가 아닌 개인(solo)으로써의 시간을 더 자주 충만하게 즐기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들과의 단절은 나에게 또 다른 관계를 찾게 한다. 가끔은 디지털 세상 속을 의미 없이 돌아다니는 내 모습에 질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산, 바다, 나무... 자연과의 연결을 문득 그리워한다. 그렇게 자연 속 고독을 즐기던 나는 다시 사람들과의 연결에 갈증을 느낀다. 연결은 또 다른 연결을 낳고. 그리고 다시 반복된다. 순환. 이렇듯 새롭고 복잡한 관계들의 집합이 도시라는 플랫폼 위에 어지럽게 교차되어 있다.


'집합도시'라는 비엔날레의 주제는 '도심 속 내 일상은 과연 괜찮은 삶일까' '나는 과연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을까' '그 어울림에서 도시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등 이런저런 질문들을 낳는다. 관계와 연결성 그리고 를 둘러싼 물리적 공간과의 상호작용. 도시가 를 지배하는가. 도시를 점령하고 있가. 아니면 둘 다 서로를 점유하고 있다 착각는가. 


'집합도시 주제전' 두개의 전시는 그렇게 나를 또다시 깨우는 공간이었다.


1. 더불어 사는 일상 by 이은경/이엠에이 건축사사무소

출처 : 비엔날레 공식홈페이지
인구 감소 시대와 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소도시와 농어촌은 공동화로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낡고 오래된 지역은 외면받고 주변의 값싼 전답은 전원주택 단지로 바뀌고 있다. 정착 지역의 배타적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기에는 이주민들 서로 간의 결속력이 약하다. 지역으로의 이주는 공동체와 함께 집합적 거주 계획으로 지역에 정착하고 활력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개인에게는 기존 삶이 있던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적 모델이기도 하다. 오시리가름 협동조합주택, 눈뫼가름 협동조합주택, 의성고운마을 프로젝트들은 주거기반공동체와 지역공동체 형성을 위한 대안적 모델로서 지역 활성화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작품설명, EMA 건축사사무소>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이엠에이 건축사사무소. 자연 그대로의 풍경과 태양이 뿜어내는 빛을 온몸으로 빨아들이고 있는 하얀 건물.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과 나비의 날갯짓 소리까지 벽면에 펼쳐진 영상에서 들리는 듯했다. 사람과 자연과 인공의 건물이 오묘하게 공존하는 멋진 풍경 앞. 나는 한참을 영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건물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햇살을 그려본다. 버려지고 소외된 어느 농촌의 공간에 우뚝 선 모습. 굳이 도심 속 시끌벅적한 무언가가 아니어도 충만할 수 있는 관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일상이란 바로 이런  아닐까.


2. 타인과 어울리는 방법 by 제너럴 아키텍처 콜라보레이티브(GAC)

출처:비엔날레 공식홈페이지
제너럴 아키텍처 콜라보레이티브(GAC)는 2008년부터 르완다의 마소로(Masoro) 마을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규모와 복잡성은 다양하지만, 지역 공동체의 참여, 연구, 교육을 통한 협업 디자인을 추구하는 점은 공통적이다. 타인과 어울리는 방법 디자인 프로젝트는 타인, 장소, 환경, 사물, 문화, 기술 등과의 관계에서 영감을 받아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디자이너와 협력자들은 남다른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법으로 타인과 어울리는 방법 프로젝트는 “관계성”, “사물”, “과정”이라는 세 가지 결과물을 도출하였다.<작품설명, GAC>


아프리카 르완다의 마소로 마을의 '타인과 어울리는 방법(Playing well with Others)' 프로젝트는 단순한 건물 짓기가 아니다. 자기다움과 건축물을 함께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어찌하면 일상의 공간에서 타인과 잘 낼수 있는지. 그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이런 건 어떠냐고 내 앞에 툭 던져놓는.

Making with Others, Listening to Others and Celebrating with Others
함께 만들고, 타인에 귀 기울이고 그리고 함께 (삶의 희로애락을) 축하하는 것이다.
Making with others
Listening to others

"내가 사는 곳은  하루하루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곳이에요."


프로젝트 필름에는 자신들이 사는 곳에 대해 담담하게 때론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영상 속 젊은 여성은 삶의 고통과 환희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임을 무미건조하게 뱉어낸다.


함께 건물을 만들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일상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축하하는 활동. 이 모든 것들이 집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가 바로 그녀에게는 마을이고 나에게는 도시라는 공간이다. 유무형의 수많은 벽들을 가뿐하게 초월하는 진짜 '공감'. 그 순간 그런 게 느껴졌다. 도심 속 일상. 문득문득 들이닥치는 상실감에 익숙해진 나. 그녀의 담담한 내레이션은 무뎌진 나의 감성을 다시금 되살리는 듯했다.





각각의 작은 공간들로 다시 '도시'라는 큰 공간이 만들어진다. 개인은 관계와 연결을 통해 다시금 더 넓어진 집합적 관계와 연결 속에 놓인다. 우리는 도시 속에서 어떤 의미로 존재하고 있을까. 도시 공간. 집합 속 우리매 순간 다양한 의미의 북적거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오을 통해 비쳐진 도시라는 공간 속 나는 때론 피곤해지고 그러다 다시 생기를 찾기도 하고 가끔씩은 슬프다. 그렇게 내가 생생하게 '살아있음'내가 사는 공간을 통해 반사해 본다. 지금 이 순간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틈 에서도. 


결국 집합의 도시, 타인과 잘 지내는 방법은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성이 아닐까. 


도시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개념들로 형성되지만, 사람들은 각기 다양한 생각을 기준으로 도시를 점유하고 경험하고 다시 상상한다.
-토니 프레튼 아키텍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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