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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Dec 17. 2023

"글은 영감이 왔을때 쓰는게 아닙니다"

뭐가 먼저인가? 순서에 대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고찰

"영지작가, 글은 영감이 왔을때 쓰는게 아니에요."

"글을 쓰다보면 영감이 나오는거지..."


지난주. 하루 휴가를 내고 295km를 달려 도착한 순천만. 그곳에 특강을 준비하면서 몇몇 수강생들이 가져온 책에 작가서명을 하고계신 교수님(2014년 교수님이 쓰신 책을 선물받고 지금까지 그 책을 18번째 읽고 있다. 3년전 우연히 책의 저자인 교수님을 직접 찾아뵙게 되었고 그 이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인연을 끈을 이어오고 있다) 앉아계신다. 줄 맨 끝에서 마지막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고개를 꾸뻑하고 나의 '두번째 논어'를 내밀면서 인사를 드렸을때 교수님내게 가장 먼저 해주신 말씀이다.


요즘 내가 브런치글 발행이 뜸한걸 어떻게 아셨지? 처음에 그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이내 2년 전 나의 첫번째 책을 출간하고 찾아뵈었을 때 작가는 '카나리아'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한다고 짧게 보내주신 글이 떠올랐다. 카나리아는 탄광 속에서 독가스를 사람보다 먼저 냄새맡고 울기때문에 어둡고 깊은 탄광을 들어갈때 광부들에게 작고 여린 카나리아의 노래만이 그들을 지겨주는 유일한 생명줄이라고 알려져있다. 당시 나에게 세상의 문제에 대해 먼저 글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작가의 소명임을 카나리아에 빗대어 알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1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만난 내게 이제 교수님은 글을 쓰는 영감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냥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생각들이 은근쓸쩍 따라붙는다고. 그러니까 계속 글을 쓰라는 의미다. 사실 그날 강의장을 떠날때 나를 바라보며 교수님은 같은 말을 다시하셨다. 영감은 글을 쓰다보면 따라오니 글 쓰는걸 멈추지말라고.  그 순간 그 말은 분명 먼길을 달려 찾아온 이었지만 문득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처럼 들렸다.


다시 순천을 떠나 3시간을 걸려 올라오는 동안. 나는 일의 순서라는 것이 꼭 '그래야만 하는게' 있을까 생각했다. 뭐가 먼저인가? 일을 만들어가는데 내가 익숙하게 알고있는 순서가 과연 맞는것일까. 나도모르게 순서에 대한 선입견 같은걸 갖고 있진 않을까? 뭐 이런저런 생각들로 올라오는 여정이 심심하진 않았다.


그러고보니 대학원 학기중과 방학을 대하는 나의 자세에도 비슷한 선입견이 있는것 같다. 어제 대학원 2학기 기말과제 제출을 마무리하면서 나름 나만의 '공식적인' 종강을 했다. 늦은 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꽁꽁 얼어버린 고속도로를 꽝꽝 울려대는 BTS 음악과 함께 타고 내려오는 나의 기분은 더할나위 없이 즐거웠다. 당분간은 과제와 수업준비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자유로움이었다.


그랬던 내가. 오늘 아침 이 글을 쓰는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내 공부를 해야하는게 아닐까.  이게 무슨말이냐면 학기중엔 과목별로 교수님들이 요구하는 과제를 하느라 사실 내 공부를 거의 할수 없는 구조이기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파트타임 대학원생의 어쩔수 없는 운명이긴 하지만 내가 극복해야할 과제인것도 분명하다. 어쩌면 학기중은 내 공부를 위한 준비기간이 되고 방학기간이 진짜 내 공부를 위한 시간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대학원 공부를 예전 학부때처럼 너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게 아닐까. 소위 말하는 '자기주도적인' 공부필요한건 중고등학생이 아닌 대학원생인지도 모른다. 어제밤 나는 이제 방학이라서 맘껏  수 있다는 꽤나 달콤한 감상에 푹 빠져있었다. 그리고 하루가 채 지나지않아 그 꿈에서 확 깨버렸다. 학기중은 과목별 교수님들이 하라는것만 하면 되니까 오히려 내 머리를 덜 쓴다. 진짜 머리 쓰는건 이제 부터인것이.


오늘의 글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순서'에 대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고찰이라고 하고싶다. 영감이 떠올라야 글을 쓰는게 아니라 글을 쓰다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과 같이 나의 진짜 공부는 학기중이 아닌 방학때 해야한다. 언뜻 전혀 다른 이야기로 들리지만 내게는 완전히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이렇게 일이 들어지는 '순서'에 대한 내가 가진 또다른 선입견들은 앞으로 계속 나타날 것이다. 단, 내가 계속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생각하지않으면 깨닫는 것도 없다.


12월의 순천. 햇살 가득한 강의실에서 마주한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쓰는 이 글. 지금 이 순간 같은 하늘 아래 비슷한 가치를 공유한 누군가에게 우연히 읽혀지고. 그 누군가에게 또다른 영감의 소재가 될 수 있기 (조심스럽게) 기대한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아이보리색 갈대들이 흔들흔들 춤추는 순천만국제정원의 한가운데 위치한 강의장빠져나오는 길. 마당 한가운데 서서 그날따라 유난히 너그럽고 따스하게 세상을 내려다 태양을  위해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 한점없이 맑았다. 저 널찍한 하늘이 하얀색 줄노트라면 일상의 잡다한 이야기들로 가득 가득 채워줄텐데...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웃음은 사실 이번 여정을 결정한 를 향한 것이었다. 꽤나 잘한 결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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