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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Jan 01. 2021

Adieu, 2020!

다사다난했던 2020년을 보내며 쓰는 회고.

그저 앞만 보고 묵묵히 걸어와 몰랐는데, 회고를 위해 돌이켜보니 참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또다시 2021년을 앞만 보고 걸어가다 보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큰 사건들 위주로 기록해두는 나의 2020년.




1. 이사

상경한지도 2년이 훌쩍 넘다 보니, 처음 부랴부랴 구했던 월세집 계약이 만료되었다. 너무 열악했던 환경. 방 하나에 살림살이들을 욱여넣고 먹고 자던 때. 햇빛은 아주 짧게 들어 늘 습하고 추웠던 집이었다. 밖으로 난 창은 환기엔 도움이 되었지만 겨울철 화장실에 들어갈 때 얼마나 추웠던지. 그런 아쉬움들을 한데 모아 기필코 이 요소들을 해결한 집으로 가겠다며 기를 썼던 결과,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난생처음 내 이름으로 받은 대출. 방 두 개에 작은 거실이 있는 투룸 전세. 2020년 1월 15일에 이사해 벌써 근 1년 정도 살았는데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미리미리 모아두었던 돈이 쓰임을 찾아 참 다행이었고, 마침 그 당시 경제적으로 어떤 방법들을 쓸 수 있는지 알려준 사람도 있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필요한 것들이 필요한 순간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2. 이직

신기하게도 2020년 초에는 이동이 많았다. 이사도 그랬고, 이직도 그랬다. 내가 원하는 성장을 이전 회사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더불어 디자이너 동료가 있는 회사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2년을 꽉 채워 근무한 스타트업을 그만뒀다. 1월 2일부터 근무했던 회사라 2년째가 되니 연차 15개가 생겨서, 그걸 소진하느라 1월은 푹 쉬면서 이직을 준비하는데 몰두했다. 지금 보면 참 부족한 것이 많은 준비였지만 어찌저찌 나의 자리 하나 찾아 가장 원했던 회사로 이직을 성공했다.


새로운 회사에서 나의 포지션은 완전히 달라져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작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는지도 새삼 체감하게 되어서 약간의 조바심도 났다. 제너럴리스트 디자이너도 좋지만 내가 가장 원하고 좋아하는 프로덕트 디자인에 대해서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걸 함께 해주는 동료(나는 선배라 칭하고 싶지만)분들과도 마음이 잘 맞아 행복했다.


몇 차례 조직개편이 있고 달라진 부분들도 많지만 새로운 디자이너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이직이었던 것 같다.



3. 여행

코로나가 터지면서 4월 이후로는 거의 여행을 못 갔지만, 짧게나마 다녀온 것들이 다이어리에서 눈에 띄어 남겨본다. 조잘조잘 떠들던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여행계를 만든지도 1년이 넘어가는데 2020년에는 글램핑에 도전했다. 문제는 2월에 가게 되었던 터라, 밤에 엄청나게 추웠다는 것. 그래도 그때 먹은 바지락 술찜이 아직 잊히지 않는 걸 보면 행복했던 기억임에는 틀림없다.


3월에는 나 홀로 첫 국내여행을 떠났다. 새 회사의 출근일을 확정하고 어디라도 다녀오고 싶었고, 바다가 보고 싶었던 터라 강릉으로 훌쩍 떠났다. 2박 3일의 일정. 푸른 파도 소리가 들리는 솔밭에서 책을 읽었던 게 기억에 남고, 너무 친절하셨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과 처음 먹어봤던 장칼국수도 생각난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기 전 카페에 앉아 여행 기간 동안 산 엽서와 일정을 정리하는데 그 순간이 너무 평화로웠다. 


7월에는 엄마와 함께 부산에 잠깐 다녀왔다. 당일치기로 바람도 쐬고, 수국 가득 핀 풍경 속에서 모녀간의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엄마와 함께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한번 떠나고 싶다.



4. 피아노

한동안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또 사람의 일들로 지쳐 쉬고 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누워서 당근 마켓을 보고 있다가 집 근처 피아노 레슨을 하신다는 교습소를 찾아갔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여태 많은 것을 배웠고, 배우고 있다. 그냥 피아노를 타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설명해주셔서 피아노를 친다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구나를 느끼며 지냈다.


2월 중순에 처음 선생님과 만나 레슨을 시작하고 6월에는 콩쿨을 준비해서 나갔는데 예상치도 않게 최우수상이라는 큰 상까지 받아 얼떨떨했다. 아직 욕심이 많은 탓인지 스스로의 소리에 대해 확신이 들지는 않지만 계속 꾸준히 연습하고 배우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며 걸어가는 중이다.


아, 그리고 이번 선생님의 상담과 도움으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물론 준비가 필요한 단계라 2021년에는 배움과 입시에 몰두할 계획이고, 결과는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지금 하지 않으면 또 나중에 시작하게 될 것 같아서, 영영 포기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전공을 결심했는데 이 선택이 또 어떤 미래를 보여줄지는 모를 일이다.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지 않고 일단 묵묵히 나아가 보기로.



5. 운동

헬스는 예전부터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운동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직을 하면서 출퇴근 거리가 길어지니 시간제로 운영되는 요가원에 시간을 맞추는 게 어려워졌고, 상대적으로 시간 제약이 덜한 헬스를 시작했다. 완전 초보자였던 터라 PT를 등록해서 배우며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다. 처음엔 엄청난 근육통을 동반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어떻게 쓰는지, 또 근육이 어떻게 붙어있는지 느껴지니 운동하는 게 즐거워졌다. 몇 개월이 지나고는 무게를 조금씩 올려서 진행했는데 처음 시작할 때 나무 빈 봉을 들고 데드리프트를 했던 게 떠올라 뿌듯하기도 했다. 겸사겸사 살도 빠져서 6개월 동안 느리게 약 5kg 정도 감량하고 더 건강하고 가벼운 생활을 하는 중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문을 닫아 못 간 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얼른 상황이 나아져서 꾸준한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연말이라 그런가 약간 부산스럽고 우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회고를 하며 보니 정신없이 흘러간 상반기에 비해 안정적이고 느린 일상이었던 하반기의 영향이 있었던 듯하다. 너무 하는 것 없이 일상을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돌이켜보니 코로나 상황에서도 2020년 잘 살아왔구나 싶고, 또 몇 가지 삶의 방향도 정해가며 나아가는 것 같아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늘 그래 왔듯이 앞으로 또 나아갈 것을 믿으며, Adieu, 2020! 코로나 없는 2021을 바라며.




표지사진: Photo by Denise Kar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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