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손통과 황새 하 (공직사회의 의전)

공직사회의 의전은 시민에게 향해야 한다. 시민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

by 유해길

한 지자체의 과학관 개관 행사에서는 황새가 폐사한 일이 발생하여 사람들의 도마에 올랐다. 개관 기념 행사에서 맞춰 황새 3마리를 방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려 했다. 그래서 본 행사를 위해 황새 한 마리를 내부폭 30~40cm인 목재 재질 케이지에 가둬 두었다. 이 날은 날씨가 상당히 더웠는데 본 행사 1시간 40분 전부터 황새는 계속해서 케이지에 갇혀있었다.


국회의원, 시장, 황새복원 관계자들이 참석 후 행사가 진행되었고 행사를 열었다. 갇혀있던 황새는 케이지를 열자 얼마 움직이도 못하고 결국 사망했다. 시민단체들은 “황새들은 방사 순서를 기다리며 좁은 상자 안에서 갇혀 있다가 결국 한 마리가 탈진으로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외부 날씨에 직사광선을 받으면 내부 공기는 훨씬 뜨거웠을 것”이라고 말햇다. 해당 지자체는 타 지자체에서 이사 온 황새로 당시에도 케이지에 담겨 6시간 동안 이동한 경험이 있었고, 폐사 당일 무더운 날씨가 아닌 만큼 정확한 사인을 밝히이 위해 부검할 예정이라 했다.


땡볕 아래 1시간 40분간 케이지에 갇혀 있었던 것이 직접적인 사인인지 아닌지 알기는 어렵지만 영향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결국 해당 지자체장은 황새 폐사 사건과 관련하여 사과했다. 행사의 전 과정을 세심히 챙기지 못한 점에 대해 머리를 숙였다. 황새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을 알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황새는 죽기 전 마지막 100분 동안 이름도 모를 국회의원, 시장 등 내빈들을 기다리다 죽었다는 것이다. 과잉의전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많은 비판을 받지만 쉽게 없어지지도 않는다. 대조적으로 이와 달리 시민들에게 호평을 받은 사례도 있다.


다운로드 (6).jpg 황새의 죽음의 이유는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갇혀 있었던 것 또한 사인이 아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몇 해 전부터 경상북도 김천에서는 ‘김밥축제’를 했다. ‘김밥천국’이라는 대표적인 김밥 브랜드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줄여서 ‘김천’으로 불렀다. 도시의 이름과 같아서 김천에서는 김밥을 활용한 지역축제를 기획하게 되었다. 반응은 시작할 때부터 폭발적이었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호평을 받았다. 그랬던 김밥 축제가 다시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25년 김천 김밥축제에서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진행되던 내빈 소개, 축사, 환영사 등 형식적인 절차를 과감히 생략한다고 한다. 초청인사의 축사나 테이프 커팅 대신 공연, 체험프로그램 중심으로 구성하고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시는 축제를 찾은 주인공은 방문객이라는 기본 원칙에 근거하여 행사를 진행한다 했다. 행사는 더 성공적이었으며 과도한 의전을 위한 불필요한 행정절차나 비용은 과감하게 생략되었다.


비용은 줄었는데 오히려 만족도는 더 늘게 된 것이다. 의전의 주인공이 방문객, 즉 시민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가자 그 의미가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의 숙손통의 의전 방향은 간소화와 핵심이었다. 중앙집권적 국가의 기틀을 만들기 위한 의전조차 불필요 한 것은 하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실용적 노선은 의전이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그는 유학자로써 사람에 대한 인정도 잊지 않았다. 의전의 핵심이 질서의 확립이며 신뢰를 확보하는데 있지만 또 의전을 행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까막눈부터 학자들까지 쉽게 따라할 수 있고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예법을 정리했다.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의전의 방향을 누군가를 돋보이기 위해 과잉으로 했다면 그 본질을 잃고 뿌리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다운로드 (8).jpg 제77회 국군의날 입장장면. 이재명 대통령은 7인의 국민대표와 모범장병, 군 지휘부와 함께 입장했다. 국가의 의전 또한 시민을 향해 있어야 한다.

유학은 질서를 강조하지만 그 질서의 본 바탕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다. 의전을 숙손통은 자신이 확립한 예법을 행할 때, 행하는 사람이 어려움이 없어야 하며 행하는 사람이 그 의미를 생각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상하의 질서의 의미를 알고 국가에 대한 신뢰를 하길 바랐을 것이다. 이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신분제 사회에서조차 의전의 대상이 황제였지만 시작은 사람에 대한 배려로 시작한다. 현대인 대한민국에서 의전의 바탕은 여전히 사람에 대한 배려다. 의전의 대상이 사람에 향할지 내빈으로 향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만약 숙손통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다시 태어나서 호가호위 하는 모습과 황새 폐사의 죽음을 본다면, 294명을 1대1로 의전하는 것을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상서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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