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손통과 황새 상 (공직사회의 의전)

의전은 조직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by 유해길

숙손통은 한나라 초기 유학자이다. 그는 진나라에서 벼슬 했고 진시황이 죽자 고향인 초나라로 갔다. 초에서 항우를 섬겼으나 천하의 판세가 유방에게 기울자 다시 유방의 휘하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유학자로써 두 번이나 변절했던 그를 비난했다. 실용적인 성격이었던 한나라의 초대 황제 유방은 능력만 있다면 출신은 개의치 않았다. 변절도 개의치 않았다. 죽음이 일상적이었던 난세에 배신은 늘상 있는 일이었다. 유방에게는 능력만 있다면 출신이던 충성이던 관계 없었다.

다운로드.jpg 주군을 6번 바꾼 숙손통. 그는 처세술의 달인이다.

그렇다면 유방을 사로잡은 숙손통의 능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유학과 예법이었다. 숙손통은 유학자로써 예법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예법은 문자와 주석으로만 존재하는 형식적 예법이 아니었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규율할 수 있는 실천적인 사회적 예절이자 질서였다. 숙손통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명분을 중시했지만 또 현실감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법을 만드는데 있어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지 않았다. 그저 난세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맞게 재구성했다. 역사가 사마천은 「사기」에서 숙손통에 대해 ‘시대의 요구에 맞춰 급한 일부터 순서대로 처리하고 그에 맞게 예법을 정비했다.’ 라고 평했다. 사회적 예의와 질서가 가진 힘은 안정적인 사회를 구성함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현재에도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중앙집권적인 왕정 시대에는 더욱 중요했을 것이다. 당시에 상황을 이야기 해보자면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유방은 30대 중반까지 무직에 한량이었다.


외상으로 술을 마시고 여자꽁무니만 쫓아다니던 사람이었다. 그와 친했던 번쾌, 조참, 하후영, 관영은 각각 개장수, 옥리, 마부, 관영은 옷장수였다. 유방도 그랬지만 다들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다. 글도 모르는 자도 많았으니 다들 사회적 예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랬던 유방은 난세에 천하를 평정하여 6년 만에 황제가 되었다. 개장수, 마부, 옥리, 옷장수 였던 측근들은 각각 대장군, 장관, 재상 등 국가 최고위직에 오르게 된 것이다. 난세를 평정하고 천자가 된 유방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미천한 자리에서 시작했지만 그는 만인지상에 있는 하늘의 아들이다.


마땅히 존귀한 대접을 받아야 하고 모든 생활과 예법은 그 격에 맞추어야 했다. 하지만 격에 맞는 예법은 멀고 어렵기만 했다. 황제가 되기 전 그는 예법에 중요성을 전혀 몰랐다. 그는 품성이 자유롭고 소탈했고 실용적인 성격이었기에 예법은 그저 불편하고 번잡스럽다 생각했다. 그의 성격과 관련하여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황제가 되기 전 그의 참모인 소하는 유방에게 한신을 천거했다. 소하는 한신을 일컬어 나라에 둘도 없는 선비(국사무쌍)이라 하며, 대장군으로 임명하라고 했다. 이때도 유방은 대장군을 임명하는데 어린아이랑 병정놀이 하듯 ‘칼하나만 주고 대장군 하라고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모습을 본 소하는 ‘인재를 못 알아보면 나라 망한다. 똑바로 준비해라’고 한 소리 들었을 정도였다.


다운로드 (1).jpg 한신의 대장군 임명 (중국 드라마 초한지의 한 장면) 의전을 통해 권위와 정통성이 확보된다.


이에 유방은 소하의 말대로 단을 세우고 대장군을 임명하는 예를 갖추었다. 황제였던 유방이 그럴진데 그와 함께 동고동락한 대부분의 공신들의 궁중 예법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촌놈’ 출신들에게 몇 백 년간 이어져온 왕실의 복잡한 예법은 거추장스럽고 이해도 어려웠다. 예법 자체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개념’자체가 없었다. 유방과 수하들은 입은 옷만 비단이었고 신분만 황제고 고위 관료였지 행실거지는 시정잡배였다. 난세를 지나온 ‘테토남’들 답게 황제가 있는 자리에서 말싸움을 하다가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주먹으로 서로 때리는 것은 예사며 칼을 뽑아 대궐의 기둥을 찍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유방의 성격이 아무리 자유분방해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사태의 심각성과 개선의 필요는 인식은 했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제 유방은 측근들에게 사람 좋은 ‘동네 형’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는 왕조를 위해 ‘황제’의 대접을 받아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천하는 다시 난세가 될터였다. 하지만 사선(死線)을 수 없이 함께 넘었던 형제들을 하루아침에 두부 칼 자르듯 군신의 관계로 정리할 수도 없었다. 숙손통은 그런 시기에 유방에게 중용된 것이다. 숙손통은 황제의 권위를 세우되, 까막눈도 흉내낼 수 있는 예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새로운 예법을 만들었다. 형식적이고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라 간단하지만 필요한 질서를 바로 잡았다. 질서의 힘은 강하고 명징했다.


사소한 변화였지만 분명히 권위가 올랐고 공식성이 부여되었고 한나라는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다. 중화민족의 역사와 전통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조회를 열고 의전을 거행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제와 같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이었지만 확연히 달라졌다. 유방이 “이제야 내가 진짜 황제가 된 것 같다”고 했다며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숙손통이 가진 예법의 힘이 쓰이는 순간이다.


숙손통 의뢰도 사진.jpg 의례도 사진. 의례를 갖춘 사람들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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