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삼자, 첫째 딸의 관점으로
이때까지 집안사람들의 이혼을 바라보면서 우려했던 건
우리 가족의 해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혼이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 배우고 있지만,
그럼에도 엄마와 아빠가 갈라지는 상상은 하기가 싫네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 가족을 조금 들여다볼까 합니다.
비록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신 상태는 아니지만,
첫째 딸이 생각하는 그들의 불화를 곱씹어볼게요.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날은 한차례의 지진이 다녀간 것 같아요.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다치죠.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집이 갈라지고, 감정이 무너지고
저와 동생은 겉으로 보이지 않게 다칩니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서로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죠.
서로 보듬어주지 않으면 분명 힘들게 뻔하지만,
날카롭게 세워진 감정이 공격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습니다.
상대를 위하고, 온전히 이해하며 포용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그게 정녕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고요.
부부관계라면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서로를 인지하면서 살았었을 겁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나아갔지만,
그 시간이 너무 깊어져서 서로가 서로를 본인이라고 생각하죠.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않고, 본인의 감정을 내세웁니다.
서로가 서로라고 믿기 때문에요.
엄마와 아빠의 나이 차이는 6입니다.
그 나이 차이로부터 비롯된 다른 세계관은 이해와 관용, 포용이 아닌
공격과 정복의 대상이 되었으니, 서로 부딪히는 지각판처럼
우리 집에도 여러 차례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방 한구석에 쪼그려서 익명 사이트에 도움을 구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들의 싸움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몰랐으니까요.
이혼과 가정의 개념을 다시 배우고 있는 지금도 그 답을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주관을 손에 쥐고 써 내린다면 저는 그렇게 적을 겁니다.
"선택은 하되, 깔끔하게 베어주세요"라고요.
깔끔한 절단면에 베인 상처는 그렇지 않은 절단면보다 치료가 쉬울 겁니다.
엉망진창으로 깨진 유리파편에 베인다면 너무 아파서 울고 싶을 테니까요.
그러니 아직은 그 선택을 하지 말아 주세요.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입에 담으면
첫째 딸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 글로 적으니까 되게 심각해 보이는데
제 불안이 약 98% 정도 첨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강도 9의 지진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강도 3, 4 수준의 지진이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옵니다.
제가 조금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조금 더 어른이 되었을 때,
현명한 판단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