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영국으로 이민을 오면, 눈앞에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질 줄 알았다.
엔틱 한 멋진 카페, 그림 같은 동네.
이웃과 차를 마시며 웃고, 미래의 아이는 좋은 교육을 받고...
나는 자연스럽게 영어가 술술 나오는 여유로운 삶을 살 줄 알았다.
그렇다. 상상은 늘 거창했다.
그리고 나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의 주인공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영국에 온 지 두 달째.
이웃과 나눈 대화는 고작, "How are you?"
그 뒤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있었고, 그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오래된 마을이라면 몰라도, 우리 동네는 달랐다.
맞벌이 신혼부부가 모여 사는 새 타운.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결국 나는, 작은 동네 안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는 걸 느꼈다.
한국에선 휴대폰 버튼 하나로 친구가 불쑥 나타났고, 가족은 언제든 달려왔다.
하지만 여기선... 인정하기 싫지만, 내 친구는 남편 딱 한 명뿐이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그 순간 깨달았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걸.
하지만 첫 번째 옵션인 취직은 불가능했다.
초반 2년 동안은 일 년에 두 번은 회사 때문에 한국에 가야 했으니 정식 일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일단,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자.
동네에 있는 필라테스를 등록하고, 봉사활동을 검색했다.
예전에 뉴욕에서 알았던 사실.
커뮤니티의 봉사활동은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오랜 검색 끝에 발견한 곳에 British Heart Foundation.
헌 옷, 책, 가구, 그릇들을 기부받아 판매하고, 수익금으로 환자들을 돕는 자선단체.
겉보기엔 단순한 중고가게. 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모이고 관계를 맺는, 동네의 심장이었다.
모든 지역마다 우리 가게는 있었고 생각보다 꽤 크게 이 나라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영국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려면, 그들의 방식으로 들어가야 한다. 방법은 둘 뿐이다.
돈을 쓰거나, 도움 같은 선의를 베푸는 것. 그렇다면 나는 봉사를 하겠다.'
그들은 내가 정착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나는 달랐다.
내가 뭔가 얻으려면, 먼저 내어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사람들을 만나고 영어가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내가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하루에도 수 십 명이 기부를 하고, 또 수십 명이 물건을 사 간다.
그 선순환의 고리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익숙한 손님이 들어왔다.
금발의 중년 여성, 세련된 차림, 늘 여유 있는 미소를 짓는 단골.
그녀의 이름은 Sue였다.
그날도 Sue는 값비싼 지갑, 가방, 여행가방, 신발 등을 기부했다.
나는 참다못해 물었다.
"실례지만.. 왜 이런 값비싼 물건들을 리셀 사이트에 팔지 않고 여기에 기부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Sue는 잠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아본 듯한 표정이었다.
"Well.... "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싼 물건엔 그만한 가치가 있지. 어떤 건 누군가의 세심한 손길이 들어가 있고, 최상급 재료로 만들어진 가방이나 지갑도 있어.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선뜻 살 수 없는 가격이 매겨지곤 하지.
그런데 영국에서는 부자도 많지만, 끼니조차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노부부, 형편이 어려운 가족들, 충분히 지원받지 못하는 아이들.....
그런 사람들은 좋은 물건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
내가 기부를 하게 되면, 누군가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좋은 물건을 써볼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어차피 내가 리셀을 해도 또 새 물건을 사게 될 테니,
그보다는 이렇게 기부하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덧붙였다.
"이게 네 질문에 대한 답이 됐을까?"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얼굴은 고요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을 울렸다.
나는 문득 내 모습을 떠올렸다.
혹여나 명품을 사면, 언젠가 팔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박스조차 버리지 못하고
서랍 깊숙이 보관해두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는 나도 그 박스를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내어놓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우리 가게 물건의 대부분은 1~5 파운드.
아무리 좋은 물건도 10파운드를 넘기지 않는다.
처음엔 물건을 깎아 달라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3파운드도 못 내고 깎아 달라니... 양심도 없나??
이 물건이 밖에 나가면 얼마인지는 알고 그러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1파운드가 그들에겐 얼마나 소중한 돈인지.
그럼에도 사람들은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물건 팔아줘서 고마워!!"
"오늘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야! 이것 봐, 너무 근사하지??"
어떤 이는 신나게 춤을 추며,
어떤 이는 나에게 자랑을 5분 이상 늘어놓았다.
그 모든 순간이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행복이었다.
내가 감히 그들의 행복한 순간을 판단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었다.
그리고.... 그날.
가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조용히 몇 가지 물건을 기부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중에서 한 점의 그림이 내 눈길을 끌었다.
어느 한 아름다운 마을의 전경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와, 이 그림 정말 아름답네요, "
남자는 한참 그림을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제 아내가 가장 좋아하던 그림이에요."
남자는 한참 그림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아내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흘렀어요, 아내의 물건들과 우리 둘의 물건을
이곳에 기부를 하러 오면 마음이 편해져요.
내가 아내를 기억하는 방법이랄까요? 그래서 난 조금씩 이렇게 물건들을 기부합니다."
라고 하며 우리 가게 로고가 그려진 배지를 나에게 보이며 웃었다.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나는 그저 물건을 분류하고, 가격을 매기고, 손님을 응대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남자에게 우리 가게는, 아내와 이어지는 다리였다.
그날 이후, 나는 이 가게를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일이 너무 소중해졌다.
나는 처음엔 봉사는 '주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안다.
이곳에서 나는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고,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걸.
오늘도 나는 가게에 출근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