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일까, 비상일까.

절벽에서 떨어져야 날개를 편다.

by Stella

한국에서 나는 '괜찮은 삶'을 살았다.

괜찮은 사람과 결혼했고,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괜찮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었다.


경제적인 큰 걱정도 없었다.

원하는 취미도 곧바로 시작할 수 있었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별다른 망설임 없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큰 욕심도, 큰 좌절도 없었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안온한 만족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오늘의 만족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쩐지 더 나은 내일을 갈망한다.

그 갈망은 나를 익숙한 안락함에서 떼어내여,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불확실한 길 위에 세웠다.


그렇게 나는 낯선 영국 땅에 발을 디뎠다.

비행기 창밖으로 흐릿하게 보이던 회색빛 하늘 아래에서 나는 혼자 속삭였다.

"여기서 새로운 날개를 펼쳐보자."

하지만 뜻밖에도, 그 순간부터 내 날개는 무겁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무너진 건 직업이었다.

한국에서 매달 10일이면, 휴대폰 알림이 맑은 소리로 울리곤 했다. 계좌에 찍히는 숫자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너는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야"라는 세상의 확인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맞는 매달 10일, 휴대폰은 묵묵히 침묵만 지켰고 나는 습관처럼 화면을 몇 번이나 켜보았지만 아무 알림도 뜨지 않았다. 적막만이 방 안 가득 펴졌다. (나의 한숨과 함께......)


그래도 처음 두 달은 달콤했다.

햇살이 좋은 평일 오후, 늦잠을 자고 나와 공원 벤치에 강아지와 함께 앉아 아이들의 웃음소리,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아, 이게 여유구나' 싶어 미소가 흘러나왔다.

도심 한복판 카페에 앉아 사람들 구경도하고 책도 읽으며 "지금 이 순간,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 달째가 되자, 웃음은 점점 사라졌다.

노는 것도 놀아 본 사람이 잘 논다고, 나는 '잘 노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10년 만에 찾아온 자유를 만끽하는 방법을 몰라, 시간이 갈수록 뭔가 모를 죄책감과 불안감이 노크를 했다.


아침에 눈을 떠도 나를 기다리는 곳은 없었다.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핸드폰, 다급히 찾는 목소리도, 나를 필요로 하는 손길도 없었다.

존재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건, 이렇게 잔인한 일이었다.


유학 시절에도 나는 분명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방인은 낯설지만 설레는 여행자에 가까웠다.

나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니기에 당연히 이방인이었고, 그래서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감사함, 그리고 잠시지만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묘한 우월감이 내 안에 있었다.

그 감각은 나를 더 가볍게, 더 자유롭게 했다.


하지만 이민의 이방인은 채도와 색이 달랐다.

여행자의 호기심과 학생의 설렘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책임과 생계와 현실이 자리했다.

이곳에서의 '이방인'은 즐길 대상이 아니라, 나를 조용히 옥죄는 그림자였다.


한국에 있을 땐 '위축'이라는 단어는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언어가 서툴러서, 신용도가 없어서, 집이 없어서, 법을 몰라서.....

작은 순간에도 쉽게 움츠러들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알게 됐다.

그 모든 불안의 근원은 단순히 내가 이방인이라서가 아니었다.

직업이 없고, 더 이상 수입이 없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돈을 벌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통장의 숫자가 줄어드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의 문제였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매일같이 들었다.


그 자격지심은 조용히 스며들어 남편과의 관계마저 흔들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이 평소와 같이 무심히 던진 한마디가 내 귀에는 뾰족한 가시처럼 꽂혔다.

원래부터 인테리어 장식을 사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이전과 똑같이 불평을 하는데도,

괜히 "내가 돈을 벌지 않아서 눈치를 주는 건 아닐까"하고 혼자 서러워졌다.

피해의식은 벽을 세웠고, 그 벽은 점점 두꺼워졌다.


돌이켜보면, 이민을 더 원한 건 남편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젊을 때 다시 한번 꼭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던 내 말에, 우리는 함께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런데 정작 내 마음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추락하는 삶'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원래 말보다는 행동으로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었다.

부모님께 감사할 땐 꽃이나 선물을 드렸고, 친구의 경조사에는 꼭 어울리는 무언가를 보탰다.

길을 걷다 지인들이나 동생이 좋아하는 물건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난 항상 널 생각한다"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무직자가 된 후에는, 커피 한 잔조차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다.

작은 소비 앞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늘어갔다.

물론 굶는 건 아니었다. 잠을 잘 집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예전처럼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할 때마다, 내 마음은 조금씩 굶어갔다.


그렇게 좌절과 포기만이 남을 줄 알았던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우연히 작은 가게 쇼윈도우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결핍은 나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어느새 나를 다시 세워준 선물이었다는 것을.


샤넬 백은 한때 내 욕망을 감싸주었고,

빗물에도 끄떡없는 롱샴 가방은 지금의 나를 품어준다.


지미추는 화려하게 나를 드러냈지만,

나이키는 묵묵히 내 발걸음을 지켜주었다.


디자이너 브랜드 옷이 나를 꾸며줬지만,

핸드메이드 옷은 나를 다정히 위로한다.


나는 이제 세상을 향해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봉사를 시작하면서 이곳 사람들과 마주했고, 그들의 삶에서 놀라운 지혜를 발견했다.

화려한 것 하나 없어도, 사소한 것에도 기꺼이 웃고 감사하는 마음.

햇살 좋은 날씨, 푸른 공원, 따뜻한 커피 한잔, 오래된 책, 퀴즈가 적힌 신문...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행복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잃음 속에서 얻는 법을 배워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결핍은 더 큰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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