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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내 Jun 05. 2023

7. 내가 먹고 마시는 것

시골살이 적응기 '나로 살기로 핸내' 2023년 4월 23일

시작하며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 주도 평안히 보내셨나요? 저는 안 평안한 한 주를 보냈는데요. 우선 지독하게 아팠고요. 또, 이웃에게 상한 마음을 풀어내느라 고생을 좀 했어요. 울고불고했던 한 주였답니다.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저의 별의별 모습을 다 보여주고 나니 제 행동이 훨씬 편안해졌어요. 오늘은 먹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와 치열하게 관계 맺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내가 먹고 마시는 것

꿈엔들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 5명 중 3명은 채식지향인이에요. 이 중 한 명은 육류, 해산물, 유제품, 닭알, 동물성 제품을 아예 소비하지 않는 완전 비건이에요. 비건을 실천하는 JS에게는 배울 점이 참 많아요. JS는 개인사정으로 한 달 늦은 4월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요. JS가 합류하기 전과 후로 저희의 식생활은 참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 또한 달라졌고요.   

표고버섯+개망초 김밥 / 감자+당근 볶음, 시래기 된장국 / 두릅, 야채볶음 / 쑥밥, 부추무침, 된장찌개
머위쌈, 두릅, 감자조림 / 순두부찌개 / 두릅전, 샐러리 비슷한 무엇, 청국장, 파김치 / 개망초카레, 마늘쫑, 난, 비지찌개

저는 한 번 요리할 때, 적어도 2~3끼 먹을 분량을 해두어요. 왜냐하면 요리하는 데에 들이는 품이 아깝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한 번 할 때 많이 해요. 똑같은 음식을 연달아 먹는 것도 상관없었고요. '요리는 자고로 빨리빨리!'라는 원칙에 따라 백종원 선생님의 영상을 2배속 해서 보고, 레시피를 습득한 후 대충 만들어서 적당히 맛만 나게 만들어요. 대체로 저의 요리는 기가 막히게 맛있지 않답니다. JS는 끼니마다 적당한 시간을 쏟는 만큼 기가 막히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요.


그러던 제가 JS와 함께 살게 되었어요. JS는 꿈엔들 식재료부터 바꿔놓기 시작했어요. 설탕 대신 직접 담근 사과청과 매실청을 사용하고, 부모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유기농 들기름, 간장, 고추장을 가져다 놓았어요. 된장도 직접 만들어서 가져왔고요. JS가 오기 전, 저희는 마트에서 흔한 브랜드의 고추장을 구매했어요. 다진마늘은 너무 비싸서 인터넷으로 중국산 다진마늘을 구입했어요. 양념을 구입할 때 가격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어요. JS가 오고나서 알았어요. 저희가 구입한 고추장 원재료 원산지란에는 온통 외국 지명만 적혀있다는 것을요. 아차, 고춧가루 1.3%는 국산이었네요. 그 외에는 중국산, 미국산, 호주산이었답니다. 

그렇다면 왜? 왜 시중에서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선택하지 않고, 번거롭게 직접 만들어 먹거나 혹은 한살림 같은 곳에서 사먹는가? 답을 찾아보려 인터넷을 찾다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내일 JS와 이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기로 했답니다.


찾아본 것을 적어 보자면, 우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외국산 원재료를 사용한다고 해요. 그리고 소비자의 입맛을 끌기 위해 화학조미료나 색소를 첨가하고요. 더군다나 외국산 콩은 GMO(유전자변형 농수산물)일 확률이 높다고 해요. '100% 우리쌀 혹은 태양초로 만든 고추장'이라고 적혀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중국산 고추양념에 수입 밀가루를 대부분 첨가한 것이 많다고 해요. 


서울에서 요리할 때, 꼭 연두(비건 조미료)를 넣어 요리를 마무리했어요. 연두가 없으면 미역국의 맛을 살릴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JS는 연두를 사용하지 않고도 깊은 풍미의 미역국을 끓였어요. "간장이 맛있으면 국이 맛있을 수밖에 없어요." 한 번도 간장, 고추장, 된장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 없는 저에게 깊은 고민을 가져다주었답니다. 지금도 여전히... 공부중...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나를 구성한다."

"적어도 어디서 생산되는지는 알고 먹자."


아무거나 저렴하고 맛있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 먹던 저는 새로운 식생활 문화를 접하며 건강한 식습관을 찾아가고 있어요. 먹는 것의 소중함, 중요함을 배우고 있어요. 그리고 함께 담근 메주로부터 얻을 간장과 된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NB와 JS가 뜯어온 머위와 개망초, 쑥부쟁이를 먹으며 초록초록한 밥상에 익숙해지고 있고요. 계절이 지남에 따라 또 어떤 음식이 저의 몸과 마음을 구성하게 될지 기대가 되네요.


지독하게 아팠던 날

정체를 밝혀라

목요일 오전, 마을도서관 '책담'에 갔어요. 날이 갑자기 더워져서 걷는 것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GH와 함께라서 심심하진 않았어요. GH가 알려준 지름길은 밭의 가장자리 두둑을 밟고, 대나무 숲 사이를 지나야 하는 길이었어요.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책담에 도착해 각자 책을 읽었고, 책을 다 빌린 GH는 먼저 집으로 돌아갔어요. 저는 좀 더 머무르다가 배고파질 즈음 집으로 향했어요. 집 가는 길, 아카시아 향이 나는 나무 앞에 멈춰 섰어요.   


사실 지난주부터 아카시아향을 맡고, 꽃이 좀만 더 크면 요리해 먹겠다고 다짐했었어요. 여기서 처음 아카시아 향을 맡았을 때, 작년 봄에 제주도에서 먹은 아카시아 장아찌가 떠올랐어요. (참고로 제주도 안덕에 있는 발효채식 식당 '산토샤'를 추천합니다) 정말 맛있는 기억이었기에 추억의 맛을 다시 꺼내먹고 싶었어요. 저는 이때다 싶어, 책담에 온 김에 아카시아꽃을 따가기로 했어요. 백팩에서 주섬주섬 겉옷과 노트북 파우치를 꺼냈고, 꽃을 담을 공간을 마련했어요. 웬일로 제가 혼자 나서서 채집을 하고 왔네요. 

룰루랄라~ 설레는 마음으로 아카시아꽃 튀김 만드는 영상을 보며 집으로 향했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튀김가루를 꺼내 아카시아꽃을 튀겼답니다. 이미 점심을 먹은 룸메들을 방에서 불러내 갓 튀겨진 아카시아꽃 튀김을 맛보여 주었어요. 분명 튀기기 전에는 아카시아 향이 물씬 났는데, 튀기고 나니 향이 거의 안 났어요. 뭐가 문제일까, 고민하며 룸메들에게도 물었죠. 첫 번째 원인, 튀긴 후에 기름을 잘 안 털어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인, 원래 아카시아꽃은 줄기에 꽃이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야 하는데 아직 그 정도로 자라지 않았다. 

밥을 먹은 후, 농사 일정이 있었어요. 벤치에 앉아 설명을 듣는데 오랜만에 튀김을 먹어서 그런지 속이 니글니글했어요. 그때부터였죠... 그날의 일정은 대나무를 잘라 토마토 지지대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오후 3시 땡볕 아래에서 뚱땅뚱땅 지지대를 만들었죠. 저는 다 만들지도 못했어요. 속이 울렁거리고 날이 더워서 내일로 미루고 철수했어요. 트럭을 타고 집에 도착했을 땐,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일어나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그대로 트럭 짐칸에 누워버렸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얼른 씻고 잠들려고 했어요. 겨우 씻고 전기요 온도를 최대로 해서 누웠어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울며불며 고통을 토로했어요. 그 이후, 3~4번을 게워 낸 것 같네요. 옆집 사는 이웃이 약을 챙겨주고, 집 사람들이 저를 보살펴 주었답니다. 참 미안하고 고맙네요. 


몸이 괜찮아지고 나서 원인을 찾아보았어요. 첫 번째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으로 추측했죠. 두 번째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카시아꽃을 먹은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둘 다 아닌 것 같아요. 충격적인 사실... 이웃이 말하길, 제가 먹은 건 아카시아가 아닌 것 같대요. 아직도 그 나무의 정체를 밝혀내진 못했어요. 안 그래도 제가 아카시아꽃이 폈다고 하니 다들 너무 일찍 폈다고 놀랐는데, 저는 의심해보지도 않고 향을 맡고 아카시아라고 확신했었죠. 


아무튼... 저는 호되게 당했답니다. 넘겨짚어 먹지 않기. 배운 것, 확실히 아는 것만 먹기로 다짐했답니다. 시골에서 아플 때, 이웃의 도움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나 너무 아파서 병원 갈 여력이 없을 때, 차로 겨우 10분 걸리는 병원에 가는 것을 상상하니 막막하더라고요. 이웃들의 도움 덕에 잘 넘겼습니다.


(추후에 알게 된 사실. 제가 먹은 건 고추나무 꽃이였어요. 먹어도 되는 꽃인데 저는 왜...)


아이스크림 사먹으러 가는 길

아프고 난 다음 날, BN에게 제가 아팠던 상황을 공유했어요.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했죠.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 위해서는 20분가량 걸어야 하는 현실. BN이 오토바이를 태워다주겠다고 했어요. 어쩌면 저는 아이스크림보다 오토바이에 더 혹했던 것 같아요. 집안에서 뒹굴거리기만 했더니 답답했나 봐요. 원래는 가까운 슈퍼에 가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큰 마트가 있는 시내까지 가게 됐어요. BN집에 들러 반납할 책을 들고 도서관에도 다녀왔어요. 면사무소도 들렀고요. 오토바이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아주 상쾌하더군요. 하나로마트 옆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요. 마치 한강 둔치에 앉아있는 것 같았어요. 아이스크림을 먹고 룸메들에게 줄 맥주와 과자를 무겁게 짊어지고 돌아왔답니다. 덕분에 아팠던 기억도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네요.


이장님과 이렇게 관계 맺었네요

이곳에 와서 유일하게 한 사람, 대화할 때 반복적으로 마음이 상했던 상대가 있었어요. 대화하는 방식이 저와는 달랐기에 낯설었어요. 더군다나 마을 이장님이자 한 달 전까지는 협동조합 이사장님, 자자공에서는 저희에게 농사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같은 분이시죠. 이런 분과 제가 밤산책을 하며 울고불고 마음 상했던 것들을 다 털어놓았답니다... 아빠뻘 되는 중장년 남성과 이렇게 관계 맺게 될 줄이야. 마치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관계 맺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상한 마음을 나누기 이전까지 많은 준비가 필요했어요. 내가 상대의 어떤 포인트에 마음이 상했는지 인지해야 했고, 상대의 특성에 대해 파악해야 했어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JS와 대화를 한 직후, 이장님께 문자를 남겼어요. "저녁 먹고 산책할 수 있을까요? 같이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요." 어떡해... 만나기 전까지 아주 긴장이 되어 할 말을 메모장에 적어놓고 갔답니다. 룸메들의 응원을 받고 이장님을 만나러 갔죠. 


자, 우선 분위기를 풀 겸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얘기하는 동안도 긴장이 풀리지 않더군요. 머뭇거리다가 결국 얘기했답니다. 구체적으로 기록하긴 어렵지만 어쨌거나 말하고 생각하고, 또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서 발생했던 이슈라고 생각해요. 이장님은 제 마음을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대화를 나누며 이장님의 생각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제가 오해했던 부분을 풀 수 있었어요. 왜인지 모르게 대화 도중에 눈물이 좔좔 흘렀어요... 상황은 잘 마무리되었고 약간은 어색한 채로 헤어졌답니다. 


분명 눈물 뚝 그치고 헤어졌는데 거실에 모여있는 룸메들을 보자마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어요. 방에 들어가 거의 오열을 했어요. 상한 마음과 미운 마음이 제 안에 꽤나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아요. 안타까움과 부끄러움, 미안함과 후련함,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억울함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마구 솟구쳤어요. 아휴, 하필 또 방 안에서 울고 있는데 얼굴 내비치러 꿈엔들에 이장님이 잠깐 들렀어요. 목소리 듣는데 또 눈물이 광광 났네요. 


다행히도 룸메들이 저를 거실로 이끌어내어 함께 대화를 나눠주었어요. 위로와 공감으로 저를 보듬어 주었죠. 덕분에 울고 웃고 재밌었네요. 룸메들 각자가 방에서 울고 있을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이야기 나누며 많이 웃었어요. 사람은 정말 가지각색이네요. 


이장님과 밤산책을 한 번 다녀온 후로 정말 많이 편해졌답니다. 이전에는 편협한 마음으로 이장님을 바라봤다면, 이젠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저에게 대화할 용기를 복돋아준 이웃들 모두 고맙네요. 


마무리하며

이번 주는 이곳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많이 커진 한 주였네요. 싸우지 말고, 싸우더라도 잘 풀고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면 좋겠네요. 다들 평안한 밤 되시길 바라며, 돌아오는 주도 잘 살아내길 응원하겠습니다.


이 주의 사진

우리가 함께 사는 꿈엔들
논 두둑 만들기
다함께 모여 삽질하고 줄 맞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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