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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구차 Jan 02. 2024

역할과 사람은 다르다

직장에서의 역할은 나라는 사람의 일부분이지 전부가 아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면 직장에서의 페르소나, 즉 역할이 나라는 사람의 나타내는 전부인 것처럼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나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싶기도 합니다. 직장과 무관한 다른 곳에 가서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도, 취미나 사는 지역,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OO회사 과장으로 있는 ㅁㅁㅁ입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이런 현상은 신입사원부터 최고경영자까지 연차불문입니다. 몇십 년 다닌 회사를 은퇴한 분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을 생각하면 시간이 변수인가 싶다가도, 어제까지 대학생이었던 신입사원들이 회사밖에서도 사원증을 매고 명함을 뿌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헷갈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 저조차 회사원, 직장인이라는 역할이나, 회사에서 제가 맡고 있는 직무, 직책, 담당업무 등을 하다 보면, 그것이 곧 나이고 나는 그런 사람이다라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으니까요. 오히려 이러한 착각이 없는 무 자르기식 분리는 일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일할 때 꺼내야 하는 내 모습, 놀 때 꺼내야 하는 내 모습 등등 모든 것이 분리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그럼에도, 역할과 사람을 구분하지 못할 경우의 낭패, 안타까움, 아쉬움 등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특히 많이 착각하는 칭찬, 예우, 평가를 찬찬히 얘기해 보겠습니다. 역할과 사람의 구분에 대해 정리해서 쓰다 보면 저도 한 번 더 구분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바가 있길 바라면서요.


첫 번째 칭찬. 칭찬에서는 일에 대한 칭찬과 나를 동일시할수록, 칭찬이 없는 나라는 사람의 초라함은 커지는 부분을 말하고 싶습니다. 회사에서도 칭찬과 인정, 기회획득 같은 가뭄의 콩 나듯 보람찬 순간들이 있습니다.(괴롭기만 한건 아니지요) 다만, 이러한 칭찬을 역할이나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한 칭찬으로 치환하기 시작하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칭찬을 받는 족족 역시 난 괜찮은 사람이야, 난 대단해와 같은 생각이 쌓이게 되면, 그 후에는 나쁜 평가, 피드백이 오더라도 소소한 경우에는 무시해버리거나(작은 경고등이 뜨는데 무시하는 격이죠) 프로젝트나 일의 큰 실패, 어려움이 닥치면 ‘난 이제 망했어’, ‘나 어떡해’로 전환되기 십상입니다. ‘내가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맡고 있는 일이 어그러진 것이고, ‘내가’ 어떡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 회사나 동료와’ 풀 수 있는 문제인데도 문제를 근시안적으로만 보고 낙담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최악의 사고회로를 상정한 것이기는 하나, 어쨌든 좋은 칭찬도 ‘나’로 쉽게 치환하는 습관을 들이면, 나쁜 것도 ‘나’로 쉽게 치환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예우. 직급, 직책이 높아질수록 그 직책에 대한 예우를 개인에 대한 예우로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직책이나 직급이 높아지면 내규에 따라 여러 가지 복리후생이나 업무편의적인 부분들이 제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무실이나 차량, 비서/기사직이 업무를 지원해 주는 식이 보편적이지요. 이렇게 정말 본업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원들은, ‘의전’이라는 이름으로 직접담당자인 비서/기사직무뿐만 아니라 하위자들도, 혹은 타사의 관계자들도 이들의 시간을 기꺼이 아까워하며 배려하려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배려, 존중은 이 사람이 하는 업무, 직급이나 직책이 커버하는 넓은 시야나 생각을 위함인데도, 마치 그 사람 개인을 위한 것임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으나, 착각이 한번 시작되면 먼 길을 떠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더군요. 일하는 시간이 아닐 때도 지원을 요구하거나, 개인적인 용무를 해달라 종용, 지시하거나 하는 식입니다. 나는 늘(일하지 않는 나도) 대접, 의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말이야, 누군지 알아!’고 외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지금 이 순간도 뜨끔하는 사람도 있고, 어? 우리 회사 얘기네도 있으시겠지요) 회사밖을 나가면 우리가 누군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회사 안에서도 그렇게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한 수준은 회사가 이미 정하였으니까요. 그 이상은 욕심이고 착각입니다.


세 번째 평가. 평가 칭찬과 거의 유사합니다. 내가 받는 평가는 나의 일에 대한 평가이지, 나라는 사람, 개인에 대한 평가가 절대 아닙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평가를 하는 이도 일에 대한 평가를 해야지, 너는 그래서 안돼, 너는 사람이 왜 그러냐 식의 인신공격성 평가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일에 대한 평가도 너무 가혹하면 어지러울 지경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많은 시간을 쏟아 만든 자식 같고 소중한 일이 잔혹한 평가에 놓이게 되면, 내가 마치 맞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난 바보야, 난 왜 이럴까 회로에 빠지게 되죠. 이럴 때일수록 칭찬에서 얘기한 대로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이건 내가 아니라, 일에 대한 거다. 일과 나는 다르다. 일을 하는 것이 설령 나이고, 내가 만든 일일지라도, 일은 내가 아니다. 자꾸 되뇌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깨지더라도, 퇴근한 후의 나는 친구로서, 엄마로서, 모임의 일원으로서, 다른 역할에서 충분히 멋질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의 비난을 다른 역할에 끌고 가서 내 삶을 모두를 물들일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서도, 다 알지만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팀원들에게 한 여러 가지 ‘평가’들이 정말 일적인 부분에 한해서 잘 피드백이 되었나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피드백을 한 저도, 헷갈립니다. 팀장이라는 ‘역할 속에냉정 했던 건데, 나라는 ‘사람이’ 냉혈한이 된 것 마냥요. 상대방은 이미 훌훌 털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퇴근한 후에도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저는 적어도 완벽한 구분이 안된 것 같습니다. 구분하지 못한 나를 인지한 것에 만족해야겠지요.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늘 어렵습니다,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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