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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구차 Nov 07. 2024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영원할 거라는 믿음

연말연초 조직개편, 인사발령의 시즌이 왔다. 보통 조직의 효율화 등이 그 목적이라고들 하나, 이 조직개편과 인사발령에는 각 개인의 상벌적 성격이 다수, 아니 많은 비중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즌을 회사가 칼을 든 시기라고도 한다. 연말만 되면 다들 칼을 든다. 작년에 쓴 칼 잘 넣어뒀지? 하고.) 조직을 변화시키는 건 어렵고, 그 영향도를 파악하기도 어렵지만, OO이를 내보내는 것, OO이를 올리는 것과 같이 개인화, 파편화가 되면 간단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저 체스판, 장기판의 말처럼 이리저리 옮겨본 후, 다 옮겨진 말 위에 적당한 선을 그어 조직개편이라는 포장을 하고, 적당한 사유를 붙인다. 금번 조직개편은 조직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효율적 업무를 최우선으로 한.....


회사와 개인사이에는 크나큰 생각차이가 있다. 우선 회사는 조직과 개인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시스템을 바꾸고, 프로세스를 바꾸고, 일하는 문화를 개선시켜 나가는 게 중요한 걸 알지만, 너무 힘들고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귀찮다. 허나 상대적으로 고민의 시간은 있겠지만, 인사발령, 조직개편은 간단하다. 왼쪽에는 현재의 조직과 이름을, 오른쪽에는 이후의 조직과 이름을 쓰면 된다.(면직, 해직의 경우에는 심지어 왼쪽만 쓰거나 아예 안 써도 된다!) 언제든지 누구나 이 왼쪽에 이름이 적힐 수 있다는 것은, 개인 간의 정도차이가 있겠으나 불안과 두려움의 요소다. 이 개인의 불안과 두려움을 소스로, 회사는 조직과 개인을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한 푼 돈을 들이지 않고, 개인의 상벌, 조직의 효율화 모든 걸 다 챙겼으니, HR(Human Resources), ‘인간이라는 리소스’를 너무나도 잘 통제했다, 고 말이다.


이런 회사와는 무관하게 개인은 어떤 상태가 영원할 거라는, 영원했으면 하는 믿음이 있다. 대기업, 회사의 규모가 크고 업력이 긴 회사, 업 자체가 특별한 굴곡이 없는 안정된 시장일 경우에는 그래서 평화를 원하고, 스타트업처럼 신생조직, 업이 바라보는 시장이 다이내믹한 곳에서는 일이 그렇기 때문에, 내 자리, 조직, 안위의 평화를 원한다. 결국 어느 회사의 누구라도 평화를 원한다. 그저 변화가 덜 하기를. 실제 어느 정도 그 평화시기가 지속되면 이게 영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사실 생각은 없다. 그저 익숙해질 뿐) 그리고 어느 날 내 조직이, 내 상사가, 내 동료가 와장창 깨지고 와해되거나, 극단적으로는 내가 그 대상자가 되면 깨닫는다. 아, 영원한 건 없구나.


입장이 다르니 당연한 거 아니냐 하겠다. 맞다. 그래서 이 입장이 다른 모든 이해관계자가 얽히는 인사발령과 조직개편을, 그저 때가 되면 하는 정례행사가 아니라 심혈을 기울여서 여러 영향도를 고려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저 HR담당자가 켜놓은 엑셀 위에 왼쪽 이름, 오른쪽 이름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길, 조직도를 네모가 많은 그림 그리기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시즌이 되면 다들 두려워한다. 혹은 나른하면서 한편으로 조소를 띤 심정이 된다. 나만 아니면 돼. 그리고 또 이러다 말겠지. 하지만 이 시즌이 되면 또 바란다. 이러다 말지 않기를. 뭔가 내가 모르는 큰 생각이 있기를.(제발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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