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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비스트 Jul 09. 2020

캐나다 원주민과  Residential Schools

문화학살


"The Scream" by Kent Monkman


7월 1일은 캐나다 데이 -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땅을 가진 캐나다의 건국을 축하하는 날이다.

캐나다 국민으로서 소속감과 그에 합당한 권리와 의무를 당연스레 느끼는 캐나다인이라면, 보통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곁들인 BBQ 파티를 하며 행복한 여름의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지독하게 긴 겨울을 잊고, 햇살 가득한 7월 첫날의 파티는 얼마나 달콤한가!


하지만, 캐나다 데이를 마냥 축복할 수 없는 이들도 캐나다 땅에 살고 있다. 바로 원주민들 - 특히나 식수오염과 척박한 주거환경에 시달리며 보호구역(reserve)에 내몰리다시피 살고 있는 이들이, BBQ파티를 하며 캐나다 데이를 쉽게 축복할 수 있을까? 주지하듯 캐나다는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쟁탈로 생겨난 나라이며,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의 땅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분리시켜 문화학살 (cultural genocide) 을 행해왔다. (이 "문화학살"이라는 표현은 2015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보고서에서도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음)


캐나다가 저지른 문화학살 중 Residential School System (기숙학교) 은 매우 잘 알려진 대표적 식민동화 정책이다. 1840년대부터 시작되어 1996년에 문을 닫은 Residential School은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와 그 공동체로부터 분리시켜 (적게는 5세의 원주민 어린이부터) 교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보낸 것인데, 기숙학교에서 아이들은 종종 학대, 체벌, 성폭력, 영양실조와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 수는 약 15만명에 달하고 기숙사에서 죽은 아이들은 약 2800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All Saints Indian Residential School: Cree Students at their desks with their teacher in a classroom" March 1945. [출처: Library and Archives Canada]


학교에서 아이들은 모국어보다 영어를 배워야 했으며, 각각의 부족전통보다 영국중심의 생활양식 - 자본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인 성역할 등- 을 익히며 그것이 우월한 것으로 교육받았다. 수업 중 모국어를 사용하면 체벌을 받았고, 개인의 종교적 자유와 상관없이 교회의식을 받아들여야 했다.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도 동원되어 강제노동을 하기도 했다. 남자 아이들은 농장에서, 여자 아이들은 가사도우미처럼 집안일을 했다. 신부나 수녀에 의한 성폭력때문에, 기숙사를 떠난 후 평생 트라우마에 고통받으며 살기도 했다.


"All Saints Indian Residential School: Students Outside the School by a Garden" [출처: Library and Archives Canada]


대부분 원주민들의 전통은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죄악시하였고, 자본주의적 성역할 (남성은 공장에서 임노동자로, 여성은 무급의 재생산노동자로) 따위는 받아들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여성들의 권리가 당시의 유럽여성보다도 훨씬 선진적이었다 (이 부분은 추후 언급하도록 하겠음). 그렇기에, 그 아이들이 겪은 문화충격과 고통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아이는 난생 처음 성당벽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 상을 보고, 신부와 수녀가 아이들을 십자가에 못박게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악몽을 꾸기도 했다.


기숙학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 따르면, 난생 처음 경험하는 무서운 체벌과 배고픔, 가족에 대한 미칠듯한 그리움으로 기숙학교를 도망친 사례들도 많았다. 도망쳤다가 길을 잃어 굶어 죽거나 추위에 죽은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성공적으로 도망쳐 가족을 만난다 하더라도, 다시 기숙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혹은, 가족과 나눌 언어와 이야기를 상실했기에, 낯선 외부인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사랑받은 경험이 없고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많은 경우 건강한 성인이 되지 못했다. 슬프게도, 그들은 높은 자살율, 실업, 가난, 약물중독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기숙학교는 아이들이 그들의 언어를 잃게하고, 다양한 부족들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 나가지지 못하게 되는 비극을 낳게했다. 문자보다 구술을 통한 역사전달에 더 익숙한 그들이, 언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모든 걸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땅을 차지하는 식민화가 아닌, 원주민의 정체성과 공동체를 기억과 역사에서 지우는 문화학살을 통한 식민화.


고로, 문화학살을 통한 식민화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이 땅에 정착한 이민자(settler)로서, 그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마땅한 것일게다.


기억하는 것이 정의 (justice)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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