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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만 잘하는 사람은 매력 없습니다.

by 피넛버터 Nov 26. 2024


영어를 '잘'하는 것은 1순위가 아니다.


"나는 이것도 할 줄 알고 저것도 할 줄 알아, 근데 영어도 할 수 있어"


가 되었을 때 영어가 의미가 있다.


"나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근데 영어는 할 수 있어"


가 되면, 큰 매력이 없다.


몇 년 전, 내가 통역 아르바이트를 위해 매일 방문하는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고객사는 전 세계인이 알만한, 누구나 선망하는 미국의 핸드폰/노트북 제조 회사다. A사라고 칭하자. 내가 담당하던 프로젝트에 투입된 A사의 엔지니어 중 한국인이 한 명 있었다.


그런데 그의 영어는 늘 해석하기 어려웠다. 그가 쓴 영어 문장을 읽으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절반을 넘지 못했다. 말을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으며 문장의 동사 자리에 동사도 없다. 문장이 너무 장황하고 긴 것은 기본이고, 문법에 맞지 않는 구조라서 이메일을 받으면 번역기에 넣어 돌리고, 원문과 한글 번역본을 비교해 가며 뜻을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 물론 내가 아직 그 업계의 용어에 익숙지 않아서 문장의 의미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그의 영어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외국계 회사'를 가려면 영어를 기갈나게 잘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 환상은 소위 외국계 회사라는 곳에 단 일주일만 다녀봐도 금방 깨진다. 외국계 회사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자기 전문 분야가 있어야 하는 게 디폴트이고, 여기에 부가적으로 영어도 조금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일 뿐이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외국계 회사 직원들의 영어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매니저급이나 관리 분야라면 엔지니어들 보다는 영어가 좀 더 나은 경우가 많다. 한국 지사건 다른 국가건 상황은 비슷하다.




다시 그 A사의 한국인 엔지니어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는 어떻게 A사의 책임 엔지니어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 엉망인 영어로 피 튀기는 글로벌 회사에서 오랜 기간 책임 있는 직책을 맡고 있을까?


정답은 영어가 아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다. 영어는 그저 자기 업무 범위에 대해서 상대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내 생각과 지식을 표현할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문법이 틀려도 되고 어순이 한국식이어도 괜찮다. 내 전문 지식과 업무 영역을 내가 확고히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난 15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여러 한국계/외국계의 IT 회사를 경험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개발자, 엔지니어, PM 등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중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기업은 오직 영어만 잘하는 어설픈 전문가를 찾지 않는다. 언어만 잘해서 먹고살겠다면 전문 통번역가나 영어강사 또는 언어학자가 되어야 한다. 부족한 영어라도 자기 업무에 탁월해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본인의 스페셜티가 1순위고 영어는 그다음이거나 더 어설퍼도 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영어가 초등 때 잘해두어야 할 가장 1순위의 덕목인 것처럼 말한다. 우리나라 아이들 모두 영어강사로 키울 건가?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찾아내, 관련된 경험을 하고 관련 책을 읽고,

처음 시작한 것을 끝까지 해내는 연습을 하고,

지식의 전달 매개체인 글을 읽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연습을 하는 것


이런 '코어 스킬'에 대한 연습이 영어 교육보다 훨씬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코어 스킬을 연습을 하는 학원은 없다 (=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부모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스킬인, 영어와 수학에 목을 매는 것 같다.


그럼 이런 중요한 덕목의 연습은 어디서 가능한가? 학교와 가정이다. 학교는 내가 단순히 생각하는 코어 스킬들뿐 아니라 오히려 더 전인적이고 도덕적이며 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 양성을 목표로 할 것이다. 당연하다. 대한민국 공교육의 목표와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해 각 분야의 교육 전문가인 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머리를 맞대었을까? 하지만, 시간적 (진도 일정) 그리고 물리적(한 반 20명 이상의 학생 수) 한계로 인해 모든 학생을 한 방향으로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가정이다.


가정의 부모들은 각자 일이 바쁘거나 아니면 본인도 자신의 부모로부터 인성과 인생 가치에 대한 이렇다 할 뚜렷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집이 대부분이다. 두 아이의 부모인 나도 마찬가지다. 회사 다녀와 아이 둘 먹이고 씻기고 잠깐 공부 이야기하고 나면 그냥 하루 끝난다. 그리고 아직 공부나 미래에 대한 의지라고는 없는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당근과 채찍을 같이 써가며 매일을 리드하는게 참 어려움을 매번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부모는 아이의 가치관과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강한 사람이다. 학교를 마치고 나서 잠들기 전까지의 일과가 초등 때는 거의 부모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주말 시간도 초등 전후라면, 그리고 심지어 사춘기 이후라도 (사이가 좋다면) 충분히 부모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부모들이, 영어만 잘하는 아이보다는 영어도 잘하는 아이로 키웠으면 좋겠다.

물론 아이가 어학에 소질이 있어서 외국어 배우는 것을 아주 잘하고 좋아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근데, 아이는 이과 성향인데 영어는 기본적으로 잘해야 입시 관문을 통과할 수 있으니, 싫다는 아이에게 주 5일 영어 학원과 숙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면, 조금은 느슨하게 놔줬으면 한다.


영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는 꼭 배워야 한다 (나는 영어를 어릴 때부터 제대로 배워서, 제발 좀 평생 써먹자고 전파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우선순위를 조정하자는 말이다.




정리.


영어만 잘하는 것은 매력이 없다. 자기 전문 분야를 잘하는 게 영어 스킬보다 100배는 가치를 인정받는다.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아나가고,

책을 읽어 자기 것으로 만들고,

포기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


그걸 집에서 아이가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부모가 찾아 주는 것이 훨씬 훨씬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어는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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