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정확히 마흔넷. 결국 오랜 고민 끝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젊고 똑똑한 MZ들의 틈바구니로 말이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 힘든 순간을 만날 때마다 훗날 이 결정을 후회할게 뻔하기 때문에, 입사 전에 그 이유를 미리 명백히 적어두기로 했다. 내가 안락한 집순이 생활을 버리고 다시 제 발로 회사원의 길로 걸어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고 일기장에 적혀있다).
1. 대학원 전공과 일치하는 찾기 힘든 일자리라서 놓치면 아깝다.
2. 재택이나 휴가에 유연한 곳이라 육아와 병행가능할 것 같다.
3. 저축한 돈을 자꾸 꺼내 쓰는 건 그만해야 한다.
그래 이왕 가기로 한 거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한 달 뒤면 다시 정신없는 워킹맘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첫째, 쌍꺼풀 수술
일단 20대부터 불만이었던 내 무쌍을 없애보기로 한다. 육아로 중간중간 회사를 쉬었기에 쌍수를 할 시간은 많았다. 없는 건 용기였다. 쌍수를 하고 왔는데 자려고 누웠더니 눈이 감기지 않는다는 등 희소한 뉴스 사례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에 선하나 그어진다고 뭐 얼마나 예뻐지겠냐, 얼굴에 칼대고자 하면 고칠 곳이 한 두 군데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고 보니 일단 용기는 생겼다. 자연분만으로 애 둘씩이나 나은 중년 아줌마가 되고 보니 쌍수 정도는 겁나지 않았다. 그리고 쌍수 결심의 가장 큰 촉매제는 입사 한 달전에 가졌던 둘째 어린이집 엄마들 모임이었다. 총 5명의 엄마들 중 나 빼고 모든 엄마들이 눈에 쌍꺼풀이 있는 게 아닌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나는 이들이 다 수술을 한 줄 알았다. 모임 다음 날 아침, 나도 이 흔한 쌍수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중 한 명만이 인위적으로 얻은 쌍꺼풀이고 나머지는 자연 쌍꺼풀이었더라. 그걸 몰랐던 나는 아무튼 이들 덕에 용기를 얻고 병원문을 두드렸다. 예전에 눈썹 문신을 하면서 알게 된 분에게 소개받았던 한 성형외과로 예약을 잡았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저기 최소 3군데 이상 발품을 팔며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이곳에서 수술 예약을 해버렸다. 그것도 당일 수술로. 상담만 받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면 나는 다시는 쌍꺼풀 수술 상담조차하지 않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쌍꺼풀 수술이 입사 예정 일자 3주 전에 행해졌다는 점이다. 나는 한 달이면 붓기가 다 빠지는 줄 알았다. 큰 착각이었다. 그건 병원에서 홍보하는 베스트 케이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며 그마저도 환자가 젊을 때의 이야기라는 걸 뒤늦게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입사일은 다가오는데 눈은 소시지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었고 붓기는 뒤늦게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지만 파랗고 노란 멍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겠다 싶었다. 혹시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비타민 K가 들었다는 멍크림을 사서 발랐다. 그리고 붓기 제거에 도움을 준다는 호박즙을 뒤늦게 주문해서 먹어보지만 마음의 위안만 될 뿐 실제 멍이 빠지는 것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결국 나는 '쌍꺼풀 방금 한 여자예요'의 눈을 갖고 첫 출근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처음엔 수군대겠지만 며칠만 지나도 타인에 대한 관심은 어차피 멀어질 거라며, 인간은 스스로에게만 관심 있는 존재라며 애써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데, 회사 소개를 해주는 HR직원이 설명 내내 내 눈만 쳐다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떨칠수가 없다. 어서 며칠이 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염색
마흔에 들어서면서부터 머리에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꽤 많다. 다른 건 몰라도 흰머리는 좀 가리고 싶었다. 30대 전후의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 회사가 가면 흰머리 있는 사람은 나뿐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하는 검은 머리 염색을 벌써부터 하고 싶진 않았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보니 집에서 머리를 감으면서 머리가 검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건 바로 염색 샴푸!! 효과 좋다는 염색샴푸를 사서 가이드대로 열심히 사용했다.
그런데 왠 걸, 며칠 해봤지만 효과가 전혀 없다. 게다가 이 과정이 꽤 번거롭다. 머리에 샴푸질을 하기 전에 머리에 물을 적신 후 이 염색샴푸를 머리에 골고루 바르고 5-10분 정도 가만히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머리에 물이 뚝뚝 흐르는 채로 욕조에 쪼그리고 있자니 현타가 밀려온다. 내가 누구 좋자고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그냥 때려치웠다. 흰머리 좀 가린다고 해서 내가 20대 30대가 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난 이미 얼굴에 주름이 곳곳에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명백한 40대다. 있는 그대로 당당하자.
셋째, 보톡스
이건 이미 2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맞기 시작한 시술이다. 한동안 집에만 지내면서 보톡스를 맞지 않고 있었기에 이번에 입사를 기념하여 한방 맞고 왔다. 아니, 그런데 방금 전까지 얼굴 주름도 당당하자고 말해놓고 보톡스는 맞는다고? 굳이 변을 하자면, 얼굴 전체에 맞는 게 아니고 이마에만 맞는다. 나는 쌍꺼풀도 없는 데다가 눈도 약간 돌출형이라 잠오는 눈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이마를 들어 올리며 눈을 뜨고 살았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눈 자체를 크게 뜨려고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몰랐다. 그런 걸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갑자기 슬프다..

아무튼 이마로 눈을 뜨는 습관을 가졌던 터라 유독 이마에 주름이 일찍 생긴 케이스다.
글을 쓰고 나서 보니 결국 나는 외모에만 집착하는 늙은 마흔의 회사원 같은 꼴이다. 오히려 내 부재 시에 아이들을 돌봐줄 학원을 제대로 세팅하기 위해 시간을 쓴다던가, 가족들 식단 계획을 좀 더 치밀하게 구상한다던가, 아니면 집안일에 소홀 해질 테니 자동 청소기를 좀 알아본다던가 이런 노력은 1도 없이 말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매거진의 주제에 충실하게 나를 중심으로 관련 소재만 뽑아서 글을 썼을 뿐이다....
